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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단성사와 한국영화상영 100주년’ In 서울역사박물관

2019-03-15

‘단성사와 한국영화상영 100주년’ 전시장 전경©Design Jungle

 

 

한국 영화상영 100주년을 맞이하며, 종로 3가 사거리 한자리에서 현대사를 함께한 극장 단성사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야기한다. 지난 2월 26일부터 열린 이번 ‘단성사와 한국영화상영 100주년’ 전시는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수없이 탄생시킨 단성사의 역사와 한국 영화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3월 26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는 단성사와 한국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날짜와 연대별로 보여준다.

 

1950년대 영화포스터 가로변 설치 풍경 사진, 중앙극장, 동양극장, 수도극장, 국도극장, 평화극장, 문화극장, 성남극장 등 당시 극장의 상영영화 포스터가 설치돼 있는 풍경으로 그 중 단성사의 <노틀담 꼽추> 포스터가 있다.

 

 

한국 영화 역사를 연 극장

1907년 7월 17일, 경성의 실업가 지명근, 박태일, 주수영 등이 발기해 종로구 수은동(현재 종로구 묘동 56번지)에 단성사를 열었다. 당시에는 영화관이 아닌 창이나 무용 공연 등이 열린 공연장이었다.

 

이후 광무대(光武臺)의 운영자이던 박승필이 1918년 6월 대관 형식으로 운영권을 인수해 실질적인 주인이 되면서 단성사는 최초의 상설영화관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제작자이자 흥행가 박승필이 운영한 1918년부터 1932년까지 단성사는 초기 한국 영화의 산실로 전성기를 이뤘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다. 의리적 구토는 신극좌 김도산 일행이 만들고 단성사의 사장이었던 박승필이 제작한 인쇄극으로, 주인공 송산이 가문에 위기를 일으키는 계모일파를 물리치고 평화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오늘날 ‘영화의 날’은 위 작품이 단성사에서 개봉된 10월 27일을 기념해 제정됐다.

 

의리적 구토의 흥행을 계기로 박승필은 조선영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 1923년 단성사 내에 영화 제작부를 만들어 서너 편의 무성영화를 제작했다. 1924년에는 온전히 조선인들의 힘으로 제작한 최초의 영화 <장화홍련전>이 단성사에서 개봉, 10일간 성황리에 상영된 뒤 순회 흥행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전시장 내부

 

예전 영화관 매표소를 재현해놨다.

 

 

단성사가 명실상부 최고의 상설 영화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조선키네마프로덕션 소속 나운규가 감독·출연한 <아리랑> 이후다. 아리랑은 개봉 첫날부터 유례없는 인기를 끌었고, 관객이 몰려 종로 거리에 길게 줄을 서기 일쑤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흥행의 중심이던 단성사는 1932년 박승필 사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9년 6월 일본인 이시바시 료스케가 인수해 ‘대륙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광복 후 1946년 1월에 단성사라는 이름을 다시 찾았다.

 

광복 이후 단성사

광복 이후에는 민족의 수난과 항일 투쟁, 독립을 향한 갈망, 향토 재건 등 애국심을 고취한 일련의 광복영화가 쏟아졌다. 단성사에서 1948년에 상영된 <독립전야>도 그러했다. 한국 영화의 부흥이 막 이뤄지던 찰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잠시 주춤했고, 1950년대 중반 영화인들이 현장에 복귀하면서 한국 영화는 비로소 중흥기에 돌입하게 된다.

 

신상옥·김기영·유현목 등이 감독에 입문했으며 김소동·홍성기·이강천·김성민 등이 가세해 작품의 질도 높아졌다. 당시에는 사극과 멜로드라마가 흥행을 이끌었다. 이때 단성사에서 상영된 작품으로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56)와 <다정도 병이련가>(1957)등이 있다.

 

전시장 전경

 

1950년대 영화 잡지가 전시돼 있다

 

 

최고 흥행작의 산실 단성사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단성사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1980년대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이 모여 있는 종로 3가 지역에 관객이 몰리는 이른바 ‘종로 시대’로 불린다. 거의 30년간 단성사 상영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인식됐었는데, <겨울여자>(1977),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같은 히트작이 잇달아 단성사에서 개봉됐다.

 

특히 겨울여자는 1977년 9월 27일부터 1978년 4월 7일까지 무려 133일 동안 장기 상영됐다. 또한 1993년 4월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194일이라는 개봉관 최장 상영에 관객 10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면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1950년대 상영한 영화 포스터들

 

 

단성사의 마지막

1990년대 이후 다수의 상영관과 전시·상업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늘어나면서 단성사는 위기를 맞았다. 2001년 9월 단성사 건물은 철거됐고, 2005년 지상 9층, 지하 4층 규모의 복합 상영관으로 재건축됐다. 경영의 어려움 속에 ‘씨너스 단성사’로 영화 상영은 이어 갔지만, 2012년 단성사 건물이 경매에 나오면서 상영을 멈췄다.

 

이렇게 영화관 단성사는 사라지게 됐다. 100년간 한국 영화와 함께 흥행의 역사를 써온 단성사 건물 앞에는 ‘단성사 터 역사 전시장’만이 남아 있다. 설립 초기에는 한국 영화의 산실이었고, 한국 영화 중흥기에 종로 시대를 열었으며, 2012년 문을 닫을 때까지 한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한 극장 단성사.

 

이번 전시 ‘단성사와 한국영화상영 100주년’에서는 1920년대부터 2012년까지 영화 흥행의 중심이던 단성사와 당시 극장에서 상영한 작품들의 사진, 신문, 포스터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의 역사를 통해 한국 영화 100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다.

 

에디터_장규형(ghjang@jungle.co.kr)

촬영협조_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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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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