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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여성성과 강인함 사이에서

2019-01-30

패션계 원더우먼들을 통해 본 여성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4차산업혁명 시대 테크를 포섭해 3D 인쇄 패션을 개척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여성 패션디자이너 이리스 반 헤르펜의 2018년 ‘자연 유희(Ludi Naturae) 컬렉션’ Photo: Jean Baptiste Mondino. Iris van Herpen / Jean Baptiste Mondino / Gemeentemuseum Den Haag Collaborating artist Peter Gentenaar / Dress made in collaboration with TU Delft

 

 

20세기 초 ‘프랑스 패션계의 피카소’란 별명으로 불리던 거장 패션디자이너 폴 포아레(Paul Poiret)가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을 가리켜 ‘그 어린 여재봉사’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프랑스 오뜨쿠튀르(haute couture)의 창시자 포아레는 코코를 여자라고 업신여겼기 때문이었을까? 실은 그가 한낱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코코 샤넬이 자신의 아성에 도전할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임을 일찍부터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포아레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종전 직후 1919년 파리로 귀향했다. 파리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자신의 아르데코풍 스타일은 온데간데없고, 숙녀들은 이제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모던한 슈트 정장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갑갑한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단순,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여성적 맵시를 한껏 뽐내주는 샤넬의 시크니처 패션이 파리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본 포아레는 결국 자신의 고급 양장점을 폐점하고 만다. 세상은 변화하고 패션은 사회와 사고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엘사 스키아파렐리, 1932년 Photo: George Hoyningen-Huene

 

코코 샤넬, 1935년 Photo: Man Ray. Man Ray Trust / ADAGP / Pictoright Amsterdam 2018/ Gemeentemuseum Den Haag

 

 

양장점 여재봉사에서 독립적 크리에이티브로
유럽의 역사 속에서 옷을 짓는 재단술, 코르셋 제조, 자수공방 사업은 프랑스 혁명기 길드 체제가 폐기되기 전까지 길드 조직에 속해 있는 남자 장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접근금지의 직업세계였다. 본래 전통사회 속에서 아녀자들은 여성복에 들어가는 천을 꿰매고 내의와 아동용 옷을 짓거나 가운에 정교한 장식물을 꿰매 넣는 작업을 했다. 19세기 말 급격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이동과 도시화로 바느질 기술을 갖고 있던 여자 재봉사들은 도시 재봉 작업실에 취직해 일하며 ‘쿠튀리에(couturier)’로 불리기 시작했고, 몇몇 야망에 찬 파리의 ‘쿠튀리에’들은 양장점을 개업해 자기 사업을 운영했다.

 


벨기에 하셀트 패션미술관에서 전시하는 ‘팜므 파탈: 패션계의 강한 여성들’전의 장면 중에서 Courtesy: Modemuseum Hasselt

 

 

프라다는 2013년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패션이란 직물과 실루엣을 통해 매일 우리 자신을 가다듬어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20세기가 열리면서 패션은 일상과 여성을 몸을 연결해준 매개가 됐다.

 

옷은 더 이상 우리의 몸을 가두고 인위적으로 옥조이는 감옥이 아니었다. 샤넬을 필두로 잔느 랑방(Jeanne Lanvin)과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별안간 파리를 신여성 패션의 선도적 도시로 만들었다. 1913년 그 유명한 밀라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II(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아케이드 거리에 프라다 패션 하우스를 탄생시킨 할아버지 마리오 프라다도 여자 자손이 가문의 사업을 이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춘추 파리 오뜨쿠튀르 패션쇼에 참가하기 위해 디올(Dior) 디자인을 착용하고 쇼장에 도착하는 패션 인플루언서 겸 비즈니스 우먼 키아라 페라니(Chiara Ferragni)의 모습 Photo: Edward Berthelot / Getty Images / Gemeentemuseum Den Haag

 

 

비정형의 ’어글리’ 미학은 패션의 영감
1960~70년대의 히피주의 반문화운동과 페미니즘의 등장을 타고 미술계에서는 여성들의 반란이 터졌다. 페미니즘 미술사학자인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1971년에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는가?〉라는 책을 내고, 남성 미술가만을 위대한 예술가로 인정하는 서양미술계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했다. 그 같은 미술계 담론은 패션계에도 영향을 끼치며 여성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첨단 패션 디자인의 핵심축은 파리에서 다소 벗어나 런던, 밀라노, 도쿄 등 첨단 대도시로 옮겨갔다. 예컨대, 메리 퀀트(Mary Quant),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소냐 리키엘(Sonia Rykiel), 바바라 훌라니키(Barbara Hulanicki),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같은 여성 디자이너들은 도회의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과 자기 인생과 사업을 스스로 주도하는 강한 ‘비즈니스 우먼’으로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여성 패션을 재정의했다.

 


그리스 출신 패션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가 선보인 2018년 여름 컬렉션 Photo: Petrovsky & Ramone,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Mary Katrantzou

 

 

강한 여성 콘셉트와 함께 그동안 패션계에서 관습화돼 있던 여성적 ‘아름다움’의 개념도 더 넓어졌다. 예를 들어, 레이 가와쿠보(Kawakubo Rei, 꼼 데 가르쏭), 사라 버튼(Sarah Burton, 알렉산더 맥퀸), 그리고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셀린느)로 이어지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강한 여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패션쇼장 캣워크를 여성의 권력 신장이나 정치적 선언을 표현하는 무대로 활용했다. 가와쿠보는 1970년대 한 파리 패션쇼에서 자신의 패션 하우스의 이름인 콤 데 가르쏭의 의미 그대로 ‘남자애들 같은’ 작품으로 패션쇼장을 강타하며 현대 패션사에 기억됐다. 여성운동이 잠잠해지고 난 1970~80년대 펑크 록 서브컬처에서 영감받은 뉴웨이브 패션을 선도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변함없는 정치적 주장과 환경보호 메시지를 앞세운 패션 사업가인 동시에 정치 운동가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2018년 추동 컬렉션 Photo: Petrovsky & Ramone,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Vivienne Westwood

 

디올(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의 2017년 춘추 오뜨쿠튀르와 기성복 컬렉션 Photo: Petrovsky & Ramone,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Dior

 

 

1980년대 패션 사회운동가 캐서린 햄넷(katharine Hamnett)은 특히 한 조각의 티셔츠를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격상시킨 패션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사에 기억된다. 1984년 캐서린 햄넷은 “58%는 퍼싱을 원치 않습니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당시 영국 수상이던 마가렛 대처 수상을 만났다. 때는 1980년대 냉전기, 미국이 서독에 퍼싱 Ⅱ 준중거리 유도미사일을 배치할 것이라는 군사적 결정에 대한 국제적 여론의 반대 운동이 거셌다. 캐서린 햄넷을 다우닝 10가 총리실에 초대한 대처 총리는 햄넷이 입고 있던 시위 티셔츠에는 비록 무관심했지만, 적어도 사진으로 남아있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은 20세기 패션사의 전설적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할 말은 하자! 패션이란 내면 속 변신(transformation) 욕망을 표현하는 것
‘여성의 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디자이너는 역시 여성’이라는 진술은 여성 패션 디자이너들이 내세우는 결정적 설득 포인트다. 과거 팜므 파탈 여성 디자이너들 예컨대, 잔느 파캉(Jeanne Paquin), 잔느 랑방,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마담 그레스(Madame Grès), 일명 알릭스 바튼(Alix Barton),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매력을 부각시킨 패션 창조를 전략으로 삼았다. 그 같은 전통은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의 여성성과 편안함을 한데 구현한 랩드레스의 탄생으로 이어져 패션 혁신의 한 획을 그었다.

 


“가죽은 그만”을 외친 스텔라 매카트니의 2017년 봄철 컬렉션 광고, Photo: Petrovsky & Ramone,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Stella McCartney

 

지방시의 현 아트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선보인 2018년 춘추 기성복 컬렉션 중 Photo: Petrovsky & Ramone,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Givenchy

 

 

최근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 패션의 진수는 클레어 웨이트 켈러(Clare Waight Keller, 지방시), 퐁 렝(Fong Leng), 샤일라 드 브리스(Sheila de Vries), 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 등의 계보로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유망주 패션 디자이너 이리스 반 헤르펜은 이미 3D 인쇄된 패션 디자인의 선구자로 자리 잡아 여성은 테크과 친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남성이 주도하던 패션 사진계에도 여성 사진가들이 진출하고 있는데, 예컨대 페트로브스키와 라몬(Petrovsky & Ramone)은 친환경 패션의 강력한 옹호자인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와 협력하며 컨템퍼러리 감각의 패션 사진을 개척하고 있다.

 


이리스 반 헤르펜 〈체화된 황무지(Wilderness Embodied)〉 2013년 추동 오뜨쿠뒤르 컬렉션 Petrovsky & Ramone (photo), Maarten Spruyt (art direction) for Gemeentemuseum Den Haag. Courtesy Iris van Herpen

 

 

올해로 일흔 살을 맞은 패션모델 에블린 홀(Eveline Hall)은 한 모델 에이전시에서 발탁되어 65살에의 나이로 패션 포토 모델로 데뷔했다. 쟝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를 비롯한 오뜨쿠튀르 디자이너 쇼 캣워크를 활보하고 전설적인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와 협력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그녀는 나이와 노화라는 대중적 인식과 사회적 통념을 재편한다. 그러기까지 여성 패션계는 먼 길을 걸어왔다. 그 여정을 살펴보는 전시회 ‘팜므 파탈: 패션계의
강한 여성들(Wonder Women: Strong Women in Fashion)’전은 벨기에 하셀트 패션미술관(Modemuseum Hasselt)에서 2018년 11월 17일부터 2019년 3월 24일까지 열린다.

 

글_ 박진아(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 jina@jinapa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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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미술사가·디자인평론가로 현 월간미술 오스트리아 통신원, 미술·디자인·문화 분야 기고가·서적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94~1997년 뉴스위크 한국어판, 1997년 월간 디자인의 객원기자로 시작해 2013년까지 정기 기고했다. 1998~2000년 미국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이탈리아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일한 후 2000년부터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미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기고 및 번역 일을 하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Jinapark.ne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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