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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몽환적인 이미지, 피에르앤쥘의 작품세계

2019-01-10

십수 년 전 처음 마주했던 피에르앤쥘(Pierre et Gilles)의 작품은 강한 비주얼로 뇌리에 박혔다. 과장된 표현, 몽환적인 연출과 키치적인 분위기는 그 자체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고,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피에르앤쥘’ 전시 포스터. 씨엘과 빅뱅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사진제공: K현대미술관)

 

 

때론 자극적인, 때론 신비로운 이미지로 충격과 환희, 희열,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피에르앤쥘의 작품세계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전시가 K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14년 만에 열리는 한국 전시로, 세 배 이상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피에르앤쥘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로, 인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초기작, 배경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8~90년대 작품, 배경이 확장되고 다양한 도상들이 등장하는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 피에르앤쥘의 명확한 세계관과 철학이 반영된 최근작 등, 1977년부터 2018년까지의 작품 211점이 전시된다. 

 

‘피에르앤쥘’  전시전경(사진제공: K현대미술관)

 

‘피에르앤쥘’  전시전경(사진제공: K현대미술관)

 

 

프랑스 아티스트 듀오 피에르앤쥘은 1970년대부터 사진과 그림을 접목한 기법을 통해 사진 매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사진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 선보여왔다. 1976년에 만나 연인이 되고 동거를 시작한 이들은 일하는 사이로 발전하며 1977년 공동작업으로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이브 생 로랑, 이기 팝 등을 촬영한 〈찡그린 얼굴〉 첫 시리즈를 발표한 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들은 사진과 페인팅으로 작품을 제작하는데, 스튜디오에서 배경을 직접 제작, 연출하고, 피에르가 사진을 찍은 후, 쥘이 페인팅을 한다. 2006년부터는 기술의 발전으로 캔버스에 사진 인화 작업이 가능해졌는데,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캔버스에 인쇄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보정 없이 완성되는 그들의 작업은 더욱 세게 관람객을 끌어당긴다. 그들의 작업은 특별한 프레임을 제작하고 작품을 프레임에 넣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작품이 담기는 액자는 작품의 이미지를 완화하거나 더욱 확장시키며, 평면성을 극복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피에르앤쥘의 작품에는 기독교의 성인, 신화 속 인물, 역사적 인물, 신격화된 인간 등 다양한 인물과 에로티시즘, 게이 문화, 종교적 혹은 반종교적 아이콘 등 여러 도상들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인물로 분장한 유명 가수나 배우, 유명 캐릭터로 꾸민 작가 주변의 인물도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채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여러 인물과 특별한 연출을 통해 지각의 경계를 흐려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는 피에르앤쥘의 작업 방식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일상, 꿈, 환상을 혼합한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들은 허구적인 이미지로 완성된다. 

 

‘피에르앤쥘’ 전시전경(사진제공: K현대미술관)

 

 

피에르앤쥘은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작품은 환상적인 분위기로 표현됐지만, 그들이 겪었던 실제 세상은 작품 속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며, 소외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한 많은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불안, 욕구, 질투, 절망, 환희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적 주제인 사랑과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룬 피에르앤쥘의 작품세계는 인종, 성별, 사회, 신화, 영화, 팝 문화를 아우르며 7~80년대 프랑스 시각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시는 2017년 벨기에 브뤼셀 익셀 박물관에서 열린 피에르앤쥘의 전시 ‘Clair-obscur’의 오프닝 스케치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영상에서는 해당 전시의 기획자이자 현재 프랑스 퐁피두 아트센터 디렉터인 소피 듀플레의 피에르앤쥘의 예술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도심을 배경으로 종교적인 도상이 등장한 작품이다. 

 

 

사랑과 더불어 죽음을 가장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기 시작한 작품들,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함께 작은 공간 속에서 설치작품의 형식으로 전시된 작품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역사적 측면을 배제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여성으로서 표현한 작품, 성경 속 창세기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질투와 폭력 등의 인간 본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전시된다. 

 

씨엘(CL)과 빅뱅의 탑(T.O.P)을 모델로 한 작품도 최초로 공개된다. 피에르와 쥘은 K-POP에도 관심이 많았다. 씨엘을 모델로 한 〈마법의 심장(Coeur Magique)〉의 제작은 씨엘이 피에르앤쥘에게 먼저 연락을 해 이루어졌다. 피에르앤쥘은 작품에서 씨엘을 강한 래퍼의 이미지와 상반되게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했다. 탑이 모델인 〈마음의 상처(Broken Heart)〉의 촬영은 씨엘의 작품 촬영과 같은 날 이루어졌다. 어두운 면을 표현하기 위해 담배를 무는 것은 T.O.P이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피에르앤쥘’  전시전경(사진제공: K현대미술관)

 

각각의 특징이 있는 프레임 역시 작품의 일부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 아티스트 엘자 에스누를 모델로 한 작품 〈미스터리한 사랑〉은 그녀의 2016년도 음반 ‘Tout en haut’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작품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음반이 많이 팔리는 가수이자 영화배우 실비 바르탕이 모델이 된 작품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피에르앤쥘의 수많은 작품에 모델이 됐던 에바 이오네스코의 아들 루카스를 주인공으로 자유와 혼합, 관용을 표현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같은 건물에 있지만 독립돼 있는 이들의 스튜디오가 재현되기도 한다. 피에르가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 스튜디오에는 사진 촬영을 위한 배경, 모델이 올라가는 단상, 촬영에서 사용된 소품 등이 진열돼 있으며, 쥘이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회화 스튜디오에는 그가 실제로 사용하는 오리지널 팔레트가 놓여있다. 

 

피에르가 원근감을 표현하고 색감을 온전하게 구현하기 위해 레이어를 여러 겹으로 제작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쥘이 아이디어 구상 단계부터 철저히 회화적 표현 영역을 계획하는 등의 작품 제작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방대한 양의 작품은 하나하나 모두 인상 깊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쇼킹했던 느낌은 그대로이고, 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미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 그들 작품에 대한 독해가 간단하진 않지만 그것은 관람객의 몫이라 하니, 이들의 의도를 품고 있는 모델과 배경, 소품 하나하나를 열쇠 삼아 각자의 생각대로 찬찬히 그 의미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시는 3월 17일까지다.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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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회화 #프랑스아티스트듀오 #피에르앤쥘 

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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