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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모두의 디자인'을 실천한 스타벅스 사이닝 스토어

2018-12-21

누군가 당신의 입과 귀를 막고 하루만 살아보라고 한다면? 하루 동안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충분히 도전 가능한 미션 같겠지만 당장 나가서 커피 한 잔 사는 일 조차 쉽지 않다. 늘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녀야 함은 물론이고, 주문한 커피가 완성돼도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다.

 

미국 수화 매장 1호, 워싱턴 D.C.
청각장애인의 불편을 고려한 스타벅스 수화 전용 매장이 지난 10월, 워싱턴 D.C.에 문을 열었다. 다른 매장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지만, 그 방식은 조금 다르다. 사이닝 스토어(signing store)라 불리는 이 매장은 25명 직원 모두 미국식 수화 ASL(American Sign Language)를 구사한다. 완성된 커피는 전광판 알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최초, 전 세계에서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이어 두 번째 사이닝 스토어다.

 


 




 


ⓒ starbucks.com

 

 

청각장애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매장 곳곳에 녹아있다. 건축가 한셀 바우만(Hansel Bauman)이 연구한 청각장애 공간 프로젝트(Deafspace Project)를 바탕으로 내부 컬러, 음향, 빛, 근접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설계했다. 눈부심을 최소화한 창, 시원함을 강조한 개방적인 실내 구조는 청각 장애인들의 원활한 대화를 위한 디자인이다. 

  

 

ⓒ starbucks.com

 

 

사이닝 스토어 직원들이 착용하는 녹색 앞치마도 여느 매장과는 다르다. 스타벅스를 발음기호대로 적은 수화 표기를 수놓았고, 왼쪽 가슴에는 수화 가능 여부를 알리는 'I sign' 핀을 달았다. 수화에 서툰 청각장애인, 또는 비장애인은 양방향 키보드에 메뉴를 적어 주문할 수 있다.  

 

스타벅스 최고경영자를 지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그의 저서 〈온워드(Onward)〉에서 “스타벅스는 단지 커피 한 잔을 파는 곳이 아니라 고객과 감성적인 소통을 통해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스타벅스는 실제로 여느 커피 전문점과 달리 고객과의 소통을 이유로 진동벨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이 때문에 그동안 청각장애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는데, 사이닝 스토어는 대형 전광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 starbucks.com

 

 

스타벅스는 각 주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의 머그컵을 팔고 있어 50가지 머그컵을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워싱턴 D.C. 사이닝 스토어 지점은 청각 장애를 가진 아티스트 제나 플로이드(Jena Floyd)가 디자인한 컵을 팔고 있다. 청각 장애인들의 이용 편의만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창구 역할도 한다. 스타벅스는 앞으로 장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예술작품을 공개하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 starbucks.com
 
 

 

실제로 매장 정면에 자리 잡은 벽화는 청각 장애를 가진 아티스트이자 청각 장애인 사립 학교인 갈루뎃 대학(Gallaudet University) 부교수인 이차오 왕(Yiqiao Wang)이 그린 그림이다. 손을 크게 확대해 화려한 색감으로 채움으로써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도구이자 세상을 보는 눈임을 표현했다. 

 

미국 최초의 스타벅스 사이닝 스토어가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서비스 받는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주체적인 고객으로 인식한다. 게다가 수준 높은 신인 아티스트 작품을 만나는 것은 물론, 매주 새로운 수화를 배워보는 재미는 덤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 
워싱턴 D.C. 사이닝 스토어를 계기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재조명되고 있다.  


비장애인에게는 계단을 오르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는 행동이 당연하지만 장애인에게는 그 작은 일조차 불편할 수 있다. 그 불편을 줄이고자 고안한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제품, 서비스, 환경 등을 디자인할 때 다양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유니버설 디자인센터(Center for Universal Design)의 소장이자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가 처음으로 개념을 정립했다. 

 

대표적으로 온수와 냉수 수도꼭지를 하나로 합친 수도꼭지, 레버형 문고리, 비상구나 화장실을 안내할 때 사용하는 픽토그램, 높이를 낮춘 우편함, 턱을 없앤 문지방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이 일상생활에서 필요에 의해 발견한 자그마한 아이디어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유니버설 디자인 
미국 앨라바마 주에 살고 있는 드류 앤 롱(Drew Ann Long)에게는 퇴행성 질환 중 하나인 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캐롤라인이 있다. 휠체어와 쇼핑카트를 동시에 끌고 다니며 장을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엄마는 기존 쇼핑카트에 좌석을 합친 특수 카트를 개발해낸다. 이 카트는 딸의 이름을 딴 ‘캐롤라인 카트(Caroline's Cart)’로 불린다. 보호자와 마주 볼 수 있는 구조 덕분에 장애가족이나 노인이 타더라도 충분히 보살피면서 쇼핑을 할 수 있다. 113kg의 무게까지 견딜 수 있어 이용 대상도 포괄적이다. 

 

 

Drew Ann Long and her daughter Caroline ⓒ facebook.com/CarolinesCart
 

ⓒ facebook.com/CarolinesCart

 

 

캐롤라인 카트가 개발된 이후 미국 유통업체인 타켓(Target)과 홈디포(Home Depot)가 미국 내 모든 매장에 이 카트를 설치했고, 월마트(Walmart), 코스트코(Costco) 일부 매장도 캐롤라인 카트를 들였다. 몸이 불편한 어린 딸과 함께 편하게 쇼핑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미국 유통업체 쇼핑카트 시장을 흔들었다.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오늘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본래의 개념에 걸맞게 의식 있는 미국 기업들의 과감한 행보가 눈에 띈다. 앞으로 사이닝 스토어 2호점, 3호점의 탄생도 머지않아 보인다.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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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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