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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사막의 품에 안긴 자유인, 조지아 오키프

2018-11-12

“그림이란 그리는 대상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막에서 아름다운 상아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 역시 집으로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드넓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또 그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이야기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세상의 광활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


 
Georgia O'Keeffe, 1918 ⓒ Alfred Stieglitz

 


영혼의 고향이자 예술의 무대인 산타페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조지아 오키프. 오늘날 그녀만의 양식이 존재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광활한 사막이었다. 1917년 기차여행 중 미국 뉴멕시코를 지나다 생경한 사막 풍경에 매료돼 주요 활동지역인 뉴욕을 떠나 1929년부터 매년 여름을 뉴멕시코 산타페에서 보냈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을 연대별로 살펴보면 뉴멕시코에서 그린 그림과 뉴욕에서 그린 그림의 주제가 확연히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키프에게 해발 2,135m 고지대에 자리한 산타페의 대자연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조지아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애비큐(Abiquiu)'의 집과 '고스트 랜치(Ghost Ranch)' 목장에 장식하고, 자기 작품에 즐겨 묘사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뉴 멕시코의 특이한 바위들과 햇빛에 말끔히 육탈(肉脫)된 동물의 뼈, 해골, 뿔 등은 그녀가 특히 사랑한 재료였다. 문명이 닿지 않은 사막은 그야말로 극한 조건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생태계 본능만이 존재한다. 그 곳의 흔적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오키프는 메마른 사막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생명의 빛과 강인함에 주목했다. 뉴멕시코 산타페는 그녀의 영혼의 고향이자 예술의 무대였다.  

 


 
 Georgia O'Keeffe. Ram's Head and White Hollyrock Hill, 1935 ⓒ Brooklyn Museum

 


Georgia O'Keeffe. Mule's Skull with Pink Poinsettia, 1936. Oil on canvas, 40 1/8 x 30 in. Georgia O'Keeffe Museum. Gift of The Burnett Foundation. © Georgia O'Keeffe Museum. [1997.6.14]

 


누구의 연인이 아닌 화가 조지아 오키프
그간 조지아 오키프를 논할 때 그녀의 작품보다는 개인사가 크게 다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연한 기회에 작품을 전시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는 하지만 우연치고는 오해할 부분이 많았다. 당시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치(Alfred Stieglitz)가 경영하던 '291화랑' 정면에 그녀의 그림이 전시됐다. 게다가 그 곳은 뉴욕중심가에서 미국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곳이다. 스티글리츠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시골 미술 교사에서 촉망받는 신예 화가로 단숨에 수직 상승했다. 그들은 23살의 나이차, 유부남과 미혼녀, 거장과 신예라는 당시로서는 용납하기 힘든 조건 속에 사랑을 나눴다. 이내 화가로서의 조지아 오키프가 아닌 영향력있는 유부남 사진가를 꾀어낸 발칙한 욕망녀로 손가락질 받는다. 6년 동안 불륜관계를 이어가다 스티글리츠가 본처와 이혼한 뒤 오키프와 결혼했지만 세간의 끔찍한 평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을 유독 관능적인 시선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꽃을 크게 확대해 그린 그림을 두고 '꽃의 암술이 여성의 음핵의 변형일 뿐이며 작가의 성적 욕구 불만의 무의식적 표현'이라는 비평에서부터 거실에 걸린 오키프의 그림을 성교육 교재로 삼았다는 아버지의 일화까지 전해질 정도이다. 이 같은 평에 그녀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왜 풍경화에서 사물들을 실제보다 작게 그리느냐고 묻지는 않으면서, 나에게는 꽃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는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꽃은 너무 작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조지아 오키프는 그녀가 느끼는 꽃을 크게 그려서 사람들이 놀라 한참 동안 바라보게 만들었다.    

 


Georgia O'Keeffe. Untitled (Purple Petunia), 1925. Oil on canvas board, 7 1/4 x 7 1/4 inches. Georgia O'Keeffe Museum. Gift of The Burnett Foundation. © Georgia O'Keeffe Museum. [1997.6.21]

 


20세기 추상환상주의 미술
1946년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였던 스티글리츠와 사별하고 오키프는 뉴멕시코로 완전히 이주해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광활한 사막을 벗삼아 작품활동에 매진했다. 꽃과 식물에 집중했던 초기 그림들에 비해 그녀의 작품 세계는 더욱 깊고 풍부해졌다. 오랜 시간 되풀이해서 그렸던 꽃, 동물의 뼈, 산타페 사막 풍경, 집주변 고스트 랜치가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 오늘날 오키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유려한 윤곽에 색은 분명하되 물감은 엷게 쓴다. 단순한 원근법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오키프만의 방식으로 강약을 조절했다. 풍경화인 듯 추상화인 듯 모호한 경계가 그녀의 인생과 닮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를 상품성 있는 스타작가로 키운 사람은 스티글리츠였지만, 정작 그가 죽고 난 후에야 그녀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스티글리츠가 죽은 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여성 미술가 최초로 단독 회고전을 열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는 뉴멕시코 샌타페에 여성 화가 중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는다. 2014년 뉴욕 소더비 미술품 경매에서 그녀의 작품 <독말풀(JIMSON WEED/WHITE FLOWER NO. 1)>이 무려 4,440만 달러(약 500억 원)에 낙찰되어 여성 미술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Georgia O'Keeffe Museum at Santa Fe, New Mexico ⓒ Junghyun Kim 

 


Georgia O'Keeffe. Gerald's Tree I, 1937. Oil on canvas, 40 x 30 1/8 in. Georgia O'Keeffe Museum. Gift of The Burnett Foundation. © Georgia O'Keeffe Museum. [1997.6.35]

 


Georgia O'Keeffe. My Front Yard, Summer, 1941. Oil on canvas, 20 1/16 x 30 1/8 inches. Georgia O'Keeffe Museum. Gift of The Georgia O'Keeffe Foundation. © Georgia O'Keeffe Museum. [2006.5.173]

 


이렇게 그녀를 수식하는 말에는 늘 '여성'이 뒤따른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술사는 철저히 남성 위주로 서술돼 왔고, 그동안의 작가들도 대부분 유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65세가 될 때까지 유럽땅을 밞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예술사조의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추상과 구상이 교차하는 자신만의 추상환상주의적 이미지를 개발할 수 있었다. 

 

조지아 오키프가 죽은 뒤 유언에 따라 장례식이나 추모식 없이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의 뮤즈 뉴멕시코 산타페에 한줌의 흙으로 뿌려졌다. 그리고 지금, 한적한 금광촌이었던 산타페는 오키프의 흔적을 찾아 온 작가들이 모여 예술의 도시로 변화했다. 


“당신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순간 만큼은 그 꽃이 당신의 우주이지요. 나는 그런 감동의 세계를 누군가에게 선사하고 싶습니다.” 조지아 오키프가 남긴 말처럼 누군가 감동스러운 우주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창작의 땅 산타페로 안내한다. 

 

글_ 이소영 워싱턴 통신원(evesy02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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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워시 #조지아오키프 #산타페 

이소영 통신원
워싱턴 D.C.에 거주하며 여러 매체에 인문, 문화, 예술 칼럼을 쓰고 있다. 실재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쉽고 재미있는 소식으로 디자인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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