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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공공에 대한 또 다른 생각

2018-11-06

‘공공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사명감 때문인지, 그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익숙한 만큼 거리감도 느껴졌었다. 하지만 ‘공공에 대한 생각’이라면 어떨까.

 

디자인이 지닌 공공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디자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13년 ‘뉴웨이브: 가구와 신진 디자이너’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전시 ‘뉴웨이브 Ⅱ: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New Wave Ⅱ: Design and Engaging Communities)’이다. 지난 전시가 주거 환경 및 공간에 대해 탐색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디자인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공존하며 함께 공동체를 구현해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디자인 스튜디오, 사회적 기업, 소규모 상점 등으로 이루어진 7팀의 참여 작가들은 가구, 제품, 공간, 서체, 출판 등을 매개로 공공의 공간을 창출하거나 다양한 관계성을 구축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연결하고, 이러한 작업들은 변화된 문화와 디자인, 그것이 스민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는 이를 통해 공동체와 공공성의 확장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가라지가게, 〈가라지가게 작업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목공소를 떠오르게 하는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선반에는 비교적 다루기 쉬워 보이는 얇은 목재들과 목공 작업에 필요한 부품들이 놓여있고, 전시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작은 방안에는 나무를 다루기 위한 기계들도 놓여있다. 

 

‘가라지가게’라는 간판도 달려있다. 바로 ‘빼빼가구’를 만드는 공방이자 가게인 가라지가게(Garagegage)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이다. 하지만 진짜 공방이기도 하다. 이곳의 나무와 공구들은 실제 빼빼가구를 제작할 때 쓰이는 것들로, 진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기간 동안 관람자들이 가구나 소품을 만들어 보는 워크숍을 통해 직접 사용도 된다. 

 

빼빼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빼뺴가구는 얇아서 약해 보이지만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내구성이 좋으며 제작 공정을 단순화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남은 자투리로는 소품을 만들고 가구는 재활용도 가능하다. 이 공간에서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소통과 공유를 말하고자 한다. 

 


공공공간의 전시 전경 

 

 

지하 전시장에는 사회 문제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공유하며 지역 사회와 공생하는 사회적 기업 공공공간(Zero Space Inc.)의 디자인이 전시돼 있다. 친환경 소재 원단을 활용하고 의류 생산에서 버려지는 원단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부터, 서울 도심의 봉제 제작자들과의 상생을 보여주는 관계 지도까지, 문제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고자 그들이 실천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다. 

 


플랏엠의 전시 전경 

 

 

원목과 합판으로 만들어진 가구는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flat.m)의 작품이다. 어떤 공간에서든 호환이 가능한 현대적 방식의 장은 빌트인을 선호하는 변화된 우리의 생활양식과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전통적 방식으로 제작된 장도 함께 전시돼 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설계하며 기존에 있는 가구나 구조를 활용해 유연하면서 기본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플랏엠은 공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온 장(欌)을 통해 변화된 주거 환경을 보여준다. 

 


씨오엠, 〈커스텀-메이드〉, 2018, 합판, 왁스 마감, 가변설치 

 

 

2층 전시장에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씨오엠(COM)의 가구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간 디자인한 것 중 일부를 재제작해 모은 설치 작품 〈커스텀-메이드(CUSTOM-MADE)〉다. 각각 다른 장소, 다른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가구들에서는 도시 풍경과 상징적 건축물의 형상이 보이기도하고, 의뢰인들과의 대화, 클라이언트의 특징, 디자인의 순간이 담겨있기도 하다. 

 


문승지, 〈Brothers Collection〉, 2018, 스틸, 백색 분체 도장, 단채널 영상, 사운드, 가변크기

 

 

심플하면서도 귀여운 의자와 테이블은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의 작업 〈Brothers Collection〉이다. 문승지 디자이너는 가구 제작 과정의 폐기물과 환경에 대해 고민을 사용자와 공유한다. 한 장의 합판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양을 최소화하는 디자인 네 개의 의자 〈Four Brothers Chair〉 시리즈를 발전시킨 공간 설치 작업으로, 가구의 제작 도면과 구조를 시각화한 영상과 아트월은 한 장의 합판/철판 만으로 하나의 공간을 완벽하게 연출할 수 있는 작업의 콘셉트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양장점, 〈Glyphs〉, 2018, 종이에 인디고 출력, 각 10x14cm(3,286장), 가변설치

 

 

3층 전시장에서는 서체, 출판 등 더 넓은 디자인 분야도 만날 수 있다.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양장점(yang-jang)은 볼펜의 건조한 점성을 시각화한 〈펜바탕 레귤러〉의 문자를 선보인다. 공간에는 3,286개의 글자가 펼쳐져 있고, 가운데 벽면에는 소설가 이상우가 중복되지 않는 한 글자씩을 선택해 만든 86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이 붙어있다. 뒤편에서는 〈타이핑 아카이브〉를 통해 직접 서체를 타이핑해보면서 디자이너 및 타 사용자들과의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다. 타이핑한 글자는 하나하나 모니터에 등장하고, 문장은 다른 사용자들의 문장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다. 여러 책에 등장하는 펜바탕 레귤러체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6699프레스의 낭독 영상 〈6699〉과 디자인 스튜디오 플랏엠의 〈논-픽션 홈〉 프로젝트의 가구와 함께 연출된 아카이브 공간 〈지금까지의 책들〉

 

 

어두운 공간 속 몇 권의 책과 영상작품은 그래픽 스튜디오 겸 독립출판사 6699프레스(6699press)의 작품이다. 탈북 청소년, 성 소수자, 여성 디자이너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출판물의 형식으로 엮어온 6699프레스는 그간 출간한 책의 문장들을 저자들이 다시 읽고 서로 듣는 낭독 영상 〈6699〉와 연계 제작된 소책자 〈낭독집: 1-10〉, 지금까지 발행한 10권의 책들을 선보인다. 이들이 제시하는 보고, 듣고, 읽는 행위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타인의 이야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 우리의 삶도, 디자인의 모습도 달라진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변화된 우리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한편, 지금까지 디자인이 ‘공공’을 말할 때 떠올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디자인은 무엇인지,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전시는 2019년 2월 20일까지.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금호미술관(www.kumho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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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에대한생각 #뉴웨이브 #사회적디자인 #소통 #공유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이야기,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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