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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나 너 우리의 초상

2018-11-01

이재욱의 <It’s not your fault>는 사회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우리 모두에게 바치는 사진이다. 나른하고 무기력한 개인에 주목한 그의 일관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엔 위로가 필요한 주변인들, 그리고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Behind the Mythology #4, Digital C-print, 2015

 

잠시 나와 내 주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사진이 있다. 이재욱 작가의 <It’s not your fault> 시리즈다. 개인의 고통과 고민을 이야기한 전작부터 개인-사회로 관점을 넓힌 이번 시리즈, 그리고 개인-국가의 상관관계를 다룬 현재 진행 중인 작업까지, 그의 시선은 일관성 있게‘너’, ‘나’, 우리 개개인을 향해 있다. 작가의 시선이 머문 곳은  공허함이 어린 조용한 풍경이거나, 그런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든 장미꽃을 든 채 담배를 피거나, 파란 비닐봉지를 팔에 걸고 씁쓸한 표정을 짓거나,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도로 한복판에 힘없이 서 있기도 한다. 이처럼 나른하고 외로워 보이는 개인들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재욱은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로 선정되어 약 7개월의 멘토링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완성시킨  작품 <It’s not your fault>를 9월 9일까지 KT&G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그동안 독일에서 활동해온 작가는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 큰 기대감을 보였다. 

 

Behind the Mythology #2, Digital C-print, 2015

 

개념적 다큐멘터리가 의미하는 것

독일, 그리스, 터키, 그리고 한국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위태롭고 불합리한 사회의 궤적을 따라간다. 작가는 거주하던 독일 북부지역에서 이민용 가방을 짊어진 난민들을 자주 목격했다. 수많은 난민들이 어디서 왔는지 의문이 생긴 그는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올라오는 난민들의 이동 방향을 역으로 쫓아갔다. 한국에서도 그는 정치이념과 사회 갈등 같은 불안한 현상들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 궤적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장면은 의외로 저널리즘 사진처럼 드라마틱한 사건 현장이 아니다. 비판적인 시각이 투영된 사진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의 불안은 장면 기저에만 깔려있을 뿐, 그저 담담하게 바라본 일상 풍경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이의 쓸쓸한 모습만이 사진에 등장한다. 그 장면은 고요하고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재욱 작가에 의하면 이 작업은 본질적으로 ‘개인’을 향해 있다. 그는 국가와 사회에 위기가 닥치면 결국 그 무게는 가장 약자인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국제 금융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 상황, 난민 사태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등이 그 예다. 작가는 그러한 위기 속에 놓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들었다. 사건의 흐름이나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과 달리, 이재욱의 사진은 누군가의 순간을 은유적으로 잡아낸다. 불행해 보이는 사진 속 사람들은 결국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해석된 인물들인 셈이다. 그런 그의 사진을 ‘개념적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로 명명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와 개인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관점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Baklava #3, digital c-print, 2016


철저한 사전준비

작업 현장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소니 A7R II 카메라와 삼각대가 장비의 전부였다. 조명을 설치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별다른 장치 없이 작업을 진행했음에도 그의 사진이 높은 완성도를 보이는 이유는, 머릿속으로 이미 완성된 그림을 그려놓고 그 이미지를 실현하는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꼼꼼히 구글 스트리트뷰를 확인하고 물색해 놓은 장소에 가서 답사를 하고, 또 적당한 시간대의 빛 세기, 프레임과 구도 등을 세심하게 체크했다. 그러나 미리 구상한 위치에서 원하는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 모델을 섭외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연스러운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무작정 기다림을 택한 적도 많다.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반나절을 기다려도 며칠 동안 허탕만 치는 경우도 수두룩했다고 한다. 이재욱의 사진을 보고 연출사진인지 아닌지 물었을 때 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형식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Baklava #11, digital c-print, 2016

 

위로의 심벌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씁쓸하고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 힘없이 축 처진 어깨와 푹 숙인 머리를 보면 내면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경 속 사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반면, 이미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전혀 어둡지 않다. 피사체와 공간에서 ‘반전’이 존재하는데, 바로 이 점이 이재욱의 사진을 주목하게 하는 요소다. 작가는 온화한 빛, 부드러운 색감, 조형적인 구도, 사진의 미적인 요소를 최대한 이미지에 담아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본래 사진을 대할 때 미감을 중시하는 작가적 성향이고, 또 하나는 이 작업을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다. 그의 작품 속 고독해 보이는 개인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심벌이자 우리의 모습을 투영시킬 수 있는 은유적 대상이다. 온전치 못한 사회 안에서 상처받는 대상이 내가 될 수도, 혹은 내 주변인들이 될 수도 있다. 이재욱은 이 사진을 통해 위로가 필요한 불특정 다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이재욱 개인에 초점을 맞춰 시대와 사회의 단면을 낭만주의적 구도로 포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으며, 제10회 KT&G SKOPF 올해의 최종작가로 선정되어 첫 개인전 <It’s not your fault>(2018.8.9~9.9)를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연다.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교 사진미술 석사를 졸업했다.

 

에디터_ 박윤채

디자인_ 전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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