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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공간에게 바치는 시

2018-11-01

듀오 아티스트 마한칭&유모나는 사진과 설치를 결합한 장소특정적 작업을 한다. 중국과 한국으로 각자 국적도 다르고, 다루는 매체도 상이한 두 작가를 끈끈하게 묶어준 것은 ‘공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다. 이들이 ‘듀오(duo)’로서 함께 재해석한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OCI미술관에서 열린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전시

 

사진을 다루는 마한칭과 오브제를 만들고 설치하는 유모나. 두 사람은 4년째 함께 활동하고 있다. ‘공간’, 보다 자세하게는 ‘시간의 흔적을 축적하고 있는 공간’에 주목하여 평면과 입체가 어우러진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해왔다. 중국과 한국, 국적을 초월한 만남이니만큼 이들은 영국, 베이징, 한국 등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이 행보에 주목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OCI미술관이다. ‘OCI Young Creatives’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여는 이곳에서 지금 마한칭&유모나의 전시 <Sediment, Patina, Displacement>(9.6~10.13)가 열린다. 그 이후에는 작업 과정의 부산물과 미처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 등 두사람의 아카이브를 공개하는 특별한 전시가 쇼앤텔 갤러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Pillar, east side, Silver gelatin print, 90x80cm, 2018

 

시간이 쌓인 공간들
마한칭&유모나 두 사람의 만남은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시작되었다. 각자 다른 전공이었지만 공통적으로 ‘공간과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 철학자 구스통 바슐라르의 책 <공간의 시학>의 ‘현상학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공간’을 모티브로 하는 비슷한 작업의 결을 가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이들의 첫 협업은 물체나 건물에 항상 공존하는 그림자를 이미지로 하여 사진 커팅, 콜라주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한 <Shadow with Object>(2015)이다. 작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그들은 함께 리서치 트립을 떠나곤 했는데, 특히 옛 도시와 현대 도시가 공존하는 곳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영국 에든버러(Edinburgh)나 옛 중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대만이 그런 곳이었다. 어느 샌가 둘의 작업에는 공간에 함축된 시간성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하게 된다.


마한칭의 사진을 보고 유모나는 “찰나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시 같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흑백필름을 이용하여 풍부한 계조로 담아낸 자연과 건축사진엔 당시의 빛, 습도, 온도, 바람의 세기까지 잔잔히 유영하는 듯하다. 또한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까지 철저하게 진행하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이 더욱 작업의 완성도를 높인다. 거기에 종이, 테이프, 유리 등 평범한 사물로 건축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유모나의 작업이 더해지면 평면이 입체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마한칭은 유모나의 설치작업을 “추상적인 기호들 다루는 놀라운 감각과 미니멀한 미학을 보여준다.”고 표현한다.

 

Relic, space in negative, Silver gelatin print, 28x35cm, 2018

 

평면작업이 입체가 되는 순간
듀오로서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지 결과물이 궁금해진다. 두 작가가 입체와 평면이라는 작업 방식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마한칭은 시간이 축적된 자연이나 건축을 미니멀하게 포착하고, 유모나는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유모나는 설치될  공간과 대화하고 사유한 것을 오브제와 구조로 만들어나간다. 특히 두 사람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생기는 벽면의 미세한 스크래치처럼 무심히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 주목해 사진과 설치로 드러낸다. 물론 두 매체가 하나가 되기까지 꼼꼼하게 사전작업을 진행한다. 무수히 많은 드로잉과 이미지를 공유하고 3D프린트, 모형 제작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특정 공간에 설치를 하는 ‘장소특정적’ 작업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평범한 화이트 큐브가 아닌 오랜 시간을 머금은 이색적인 전시 공간을 선호한다. 재밌는 점이 있다면, 이전 에 전시를 했던 중국의 레드 게이트 레지던시(Red Gate Residency)와 OCI미술관 모두 본래 누군가의 거주공간이었다가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재탄생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거주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사람의 인터페이스에 맞춰진 특이한 미술공간. 시간의 켜를 표현하고자 하는 마한칭&유모나의 주제와 딱 맞아떨어지는 곳들이다.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전시에서 OCI미술관의 공간과 어우러지는 설치를 보여주었다.


터에서 장소로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전시는 전작을 아우르며 ‘터에서 장소로 되어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있는 그대로 존재했던 터가 시간을 입고 기억을 축적해 하나의 ‘장소’가 된다는 그들의 개념이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셈이다. 이번에는 감추어져 있던 공간의 특징과 시간성을 드러내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땅과 물의 이미지부터, 유적지의 파편들, 16~17세기 옛 건축 표면의 흔적, 그리고 근대 이후의 건축 파사드까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과정을 스토리텔링하듯 보여준다. 타이틀 ‘퇴적층, 표면의 녹, 이동’은 전시를 구성하는 세 가지 섹션이다. 


한편, 전시장의 독특한 구조도 인상적이다. 마한칭&유모나가 사용하는 2층 공간은 바닥이 뚫린 부분이 있어 1층과 연결되고, 또 계단의 구조가 3층 천장과 연결되어 있어 세 층을 아우르는 ‘사이장소’로서 존재한다. 이러한 특수한 공간 구조를 십분 활용한 작업들이 돋보인다. 뚫린 공간은 물결을 상징하는 비닐로 덮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벽에는 물 표면을 담은 사진을 디스플레이하여 태초의 자연을 연상시키도록 했다. 또, 인공적인 건축을 다룬 사진을 철제 구조물과 함께 구성하는 등 변화무쌍한 이미지와 설치의 변주를 보여준다. 설령 관람객들이 작가가 느꼈던 시간의 켜와 감정의 선까지 모두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작업은 인터랙티브하게 공간을 경험하고 재인식하는 순간을 선사한다. 두 작가가 공간과 대화하며 전시를 구성하였듯이 말이다. 


마한칭&유모나 현재 베이징과 런던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는 조각가와 사진작가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듀오다. ‘공간’에 대한 관심을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풀어낸다. 마한칭은 영국 왕립 예술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석사를, 유모나는 영국 왕립예술대학교 조소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블룸버그 뉴 컨템포러리 수상 및 전시,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 전시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에디터_ 박윤채

디자인_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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