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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서 본 대중의 힘

2011-10-12


도시는 건물과 도로, 시설물, 무수히 많은 사물들 사이에서 여러 사람들이 뒤섞인 채 사건이 벌어지고, 역사가 생성되는 삶의 공간이다. 이러한 도시의 한 가운데 자리한 광장은 도시민의 응축된 삶의 역사가 드러나는 물리적 장소이며, 상징적 공간이기에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지니는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보듬어 왔다. 2007년 세종로에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한국의 상징적 가로에서 잘 가꾸어진 시민 광장으로 거듭나며 새로운 서울의 등장을 알렸다.

글, 사진 | 진희경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최동은(dechoi@jungle.co.kr)


광화문 광장, 시민중심의 도시문화광장을 꿈꾸다
광화문 광장은 기능과 효능 중심의 ‘하드시티’인 서울을 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되는 ‘소프트시티’로 재창조하기 위한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디자인 서울의 4가지 비전인 자연과 환경, 역사와 문화, 기술과 산업, 인간과 건강이라는 컨셉은 광화문 광장의 마스터플랜을 이루는 기본 개념이었다.

마스터플랜에 따른 공간구성을 살펴보면, 지상공간은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역사의 장’과 ‘미래의 장’인데 여기에는 여러 문화적, 역사적 설치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상 공간은 경계석으로 차도와 구분되며 경계석 안쪽에는 둘레를 따라 역사의 물길이 흐른다. 지하공간은 스마트 컨텐츠를 이용한 시민참여 공간으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러한 마스터 플랜을 기반으로 실제 광장에서 과거로부터 미래까지의 시간 축을 따라가 보자. ‘역사의 장’은 세종대왕 동상이 설치된 곳으로, 이곳은 북악산과 경복궁이 어우러진 전경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광화문 좌. 우에 해태상이 배치되어 있다.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는 육조거리의 상징물과 조선시대의 과학 발명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으며, 광장 중앙에는 대규모 행사가 가능하고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비워두기’ 공간이 있다. 동상 기단에 있는 지하로 통하는 문에 들어서면 ‘세종 이야기와 충무공 이야기’ 전시관이 나온다. 이 곳에서는 시민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지상의 또 다른 상징공간인 ‘미래의 장’은 해치마당에서 시작된다. 해치마당은 지하공간과 지상광장을 이어주며, 서울시의 마스코트인 해치에 대한 내용물이 전시되어 있다. 미래의 장 한 가운데에서는 다시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과 그 주변에 설치된 분수와 벤치를 볼 수 있다.


광장과 홍보 전시관 사이


현장에서 본 광화문 광장이라는 공간은 마스터플랜을 통해 상상한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지상의 ‘비워두기’ 공간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출입이 통제되다 보니, 시민들은 잔디밭 양쪽으로 거닐면서 북한산과 광화문의 자연경관을 비스듬히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로의 역사를 보여주는 ‘육조의 거리’ 는 6개의 원기둥 모형물로 대치되었다. 육조 거리를 6개의 원기둥으로 재현한 결과는 일종의 상징적 추상화를 거친 예술 작품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스토리에 과잉 집착한 과거의 자의적인 형상화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사실 아무런 동감을 얻지 못하는 전통에 대한 자의적 해석의 형상화나 재현은 건축이나 예술에서 비일비재 한 일이다. 이 원기둥에 대한 해석과 감상 역시 대중의 몫이다. 이렇게 광화문 광장 한 가운데 서있자니, 마치 차도와 사이에 만들어진 ’홍보전용 갤러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시가 구상하는 디자인 서울의 비전은 영국의 찰스 랜드리가 주장하는 ‘창조도시’, 즉 문화의 창의적인 활용을 통한 도시혁신과 비슷하다. 서울시 역시 디자인 서울을 계획할 때 그의 조언을 참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찰스 랜드리가 주장한 문화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은 과거와의 창조적 연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문화자원을 훼손하는 것은 기억과 역사를 지우는 것이며, 또한 역사를 모조물로 대체하는 것도 문화적 토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안타깝게도 ‘창조적 문화도시’를 지향하며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광장 건설을 위해 발굴된 문화 자원을 땅 속에 묻어 버리고 역사적 상징물을 근대적 재료로 만든 모형물과 모조물로 대치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문화체험공간인 ‘해치마당’은 서울시를 홍보하고 광화문광장과 연계된 주변의 문화행사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며, ‘세종이야기와 충무공 이야기’관은 영상미디어와 최첨단 체험관이 갖춰진 현대적인 학습관이다. 이러한 학습프로그램을 접하다 보면 광화문광장이 시민을 위한 소통과 휴식, 표현의 장이 아닌 기념비적 광장이며 시의 홍보전시를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이 역사와 문화의 시민 광장이라 강조한다. 문화는 그 개념 자체가 역동적 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점에 가장 큰 특성이 있다. 이러한 문화의 개념은 이탈리아 사상가인 그람시의 해석에서 잘 나타난다. 그에 의하면 문화는 계급의 이해와 가치관에 의해 어디서나 변화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그는 특히 현대 사회의 문화 창조는 위로부터 시작되지만, 문화의 완성은 그것을 사용하고 지속시키는 대중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대중은 그들의 생각과 행위로 그 결과물을 지속하거나 변화시킬지를 선택하며 이러한 자유로운 참여 속에서 문화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변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문화는 여러 계층 간의 이해와 표현으로 섞이고 변화하는 ‘잡종’, ‘잡종성’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광화문 광장이 특정한 행정력을 위한 홍보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공간은 대중의 생각과 행위가 섞이고 변화하는, 즉 수용주체에 의한 변형의 가능성을 지닌 창조의 공간이며, 문화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대중, 문화광장을 체험하다
그람시가 말한 문화의 잡종적 성격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환경이 부과하는 문화를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스스로의 ‘세계관’으로 비판적․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의식이 살아있을 때에만 변화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자유로운 이용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광장을 봐 보자.

광화문 광장에는 대중의 자유로운 사용을 가로막는 많은 제약이 있다. 즉 이 광장은 시민을 위해 자유롭게 열려진 곳이 아니다. 광장을 사용하려면 <광화문 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에 따라야 하는데, 이에 따르면 서울시장과 경찰청의 허가가 필수적이다. 광장 사용에 경찰청의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것은 광장이 대사관 주변 100m 내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규정에 의해 광장 내에서의 1인 시위는 가능하지만 단체 시위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광장은 시민의 자율적인 의사를 주장할 장소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개인은 자신의 행사를 위해 의자나 탁자와 같은 물건을 설치할 수 없는데 비해, 국가행사나 지방자치의 행사시에는 기자재 설치가 허용된다. 일례로 광복 66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시립교향악단의 기념음악회가 열리는 날, 광장 안은 행사용 물건으로 가득했다. 광화문 광장은 행정부나 서울시의 행사를 치루기 위해 관리되는 곳으로 보였다.


‘좋은 공공장소 만들기‘ 지침서를 발간한 PPS(Projects for Public Spaces)에 따르면, 좋은 공공장소는 시민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좋은 공공장소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과 의자가 있고, 가까이에서 만질 수 있는 물과 먹을거리가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이 넘치는 장소다.

PPS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광화문 광장은 좋은 공공장소가 아닌 듯하다. 광화문 광장은 단지 광장이라는 이름만을 갖춘 곳이고,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설계되고 관리되는 기관인 것이다. 광장 내부에는 금지 표시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각 시설물에도 유난히 많은 관리자들이 시설물 사용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빈번히 마주치는 경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니, 무의식적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전벨트도 매고, 속도 규정도 잘 지키면서 운전을 하다가도 경찰차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처럼 말이다.

지난 9월,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광장 안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동안 관리되고 통제되던 중앙의 잔디밭이 개방되자, 광장은 잔디밭을 자유로이 거닐며 북한산과 경복궁의 경관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광화문 광장의 광장으로서 부족한 면이 확연히 드러나는 듯 했다. 구경에 지친 사람들은 그늘과 쉴 곳을 찾아 헤매다가 맨바닥이나 시설물, 조형물에 걸터앉아 있었다. 관리자들도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지쳤는지 통제하기를 포기한 듯했다.


지하 공간에 마련된 문화전시는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전시된 자료 눌러보기, 붓글씨 체험 및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광장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주입식 교육 현실에서 벗어나 제한적이나마 직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열심히 체험에 참여하는 쪽은 아이가 아닌 부모들이었다. 아이들은 놀이 본성을 좇아 물이 장난치며 솟아오르는 분수대로 모여 들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긴다. 웃음 찬 비명소리가 교차하며 아이들은 옷이 젖는 것도 잊고 즐겁게 물놀이에 몰두하였다. 그 사이로 외국인들도 보였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는 것 같더니, 곧바로 친구들과 사진 포즈까지 취하며 환히 웃고 있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스마트 컨텐츠를 이용한 따라하기 학습용 프로그램보다는 분수대 물놀이처럼 흠뻑 젖으며 이해할 수는 없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한 늘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하는 잔디밭으로 들어가 펄러덕 대며 깔개를 깔고 앉는 할아버지와 소녀의 모습에서, 한국 가정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광장, 잔디밭, 깔개의 상식이 어우러진 건강한 광장문화가 보였다.

그렇게 광장은 열리는 중이다
광화문 광장은 개장 이후 여러 측면에서 비판 또는 옹호되기도 했다. 시대착오적인 권위를 내세운 국가 상징의 공간이라는 비판, 역사적인 문화자원을 지우는 건설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비명,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는 수동적인 문화프로그램으로 가득 찼다는 비평부터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기 편한 장소이며, 국가적 규모의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지는 장소로서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까지.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광장을 누리며 이해하기도 전에 광장에 대한 편협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광장은 그람시가 말한 대로 자신들만의 문화적 방식으로 공간을 이용하고 즐기며 삶의 활력소를 얻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변형하고, 해석하면서 새로운 일상의 공간을 그 위에 덧붙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광장은 도시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심에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시간이 투영되고 축적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광장을 만들고, 이용하고 즐기며 도시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 속에서 공간에 대한 각 집단의 어긋난 기대는 일상의 상식, 대중의 상식으로 조율될 것이면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람시는 대중의 상식은 복잡한 사회적 혼돈 속에서도 통일성과 논리성으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하는 건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떠도는 비판과 옹호에 아랑곳없이 대중의 상식은 앞으로 어떤 시설물이나 공공 공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즐기고 변형하면서 그 공간의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어쩌면 도시는 이 향유의 방식, 스스로 해석하는 힘들이 모여 그 활력을 이어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중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방식, 조금이라도 그들의 공간을 활력 있게 만들고자 하는 그 잡종적 힘을 전문가, 그들을 고용하고 자본을 제공하는 정부나 디자인 결정자들이 조금 더 진지하고 배려하며 관찰한다면 이 도시의 디자인은 변증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이제 한국의 디자인도 진정성을 지닌 디자인, 배려의 마음으로 시민에게 다가가 그들의 문화적 에너지와 삶의 약동을 같이 분출할 디자인을 좀 해야 되지 않을까. 디자인도 결국 물질과 형상으로 분출된 삶에 대한 사랑이니 말이다.



*참고문헌
「그람시 ․ 문화 ․ 인류학」, 케이트 크리언, 김우영 옮김, 도서출판 길, 2004
「광장」프랑코 만쿠조 외, 장택수 외 옮김, 도서출판 생각의 나무, 2009
「노는 만큼 성공이 보인다」, 김정운, 21세기 북스, 2005
「도시의 모습」 스피로 코스토프, 양윤재 옮김, 공간사, 2009
「문화정치. 문화전쟁」 돈 미첼 , 류제헌 외 옮김, 살림, 2011
「좋은 장소를 만드는 법」,Projects for Public Spaces 편저, 김봉원 옮김, 태림출판사, 2008
「권력과 공간화: 서울광화문광장의 공간 분석」오미환,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9
「장소성과 연계된 환경 시설물 계획에 관한 연구」 조성빈, 성균관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열려라! 광화문 광장」발제문 중 우리에게 광장은 무엇인가(임동근,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광화문광장 조례가 기획하는 광화문 광장 (박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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