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그래픽 | 뉴스

스펙터클에서 일상으로 : 만 38세의 어린이대공원

2011-05-02


1973년, ‘한국 최초’, ‘동양 최대 규모’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어린이대공원. 동양의 디즈니랜드를 꿈꿨던 이곳은 올해로 개장 38주년을 맞는다. 기억의 소멸이 미덕으로 인식된다는 도시(정기용,『서울이야기』, 2008)이자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호흡으로 변모되는 서울에서 인공물의 나이 서른여덟 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우라의 숫자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탄생의 과정만큼이나 강인한 생명력을 타고 난 것일까. 어린이대공원이라는 소박한 이름의 그곳에서는 긴 세월로 인해 희미하게 남겨진 얼룩이 있어 오히려 마음이 정다워지고, 그 자국을 지우면서 들어선 반짝이는 새것들이 있어 또 한편으로 눈이 유쾌해진다.

글 | 신서영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1. 탄생 이야기 : 180일 만에 골프장에서 공원으로

어린이대공원(현 광진구 능동 소재, 면적 59만 3036m2) 부지는 본래 순종의 비인 순명왕후 민씨의 능터였다. 순종황제가 승하하자(1926년) 합장을 위해 능이 옮겨졌고, 1929년부터는 일부 친일귀족과 고관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이 골프장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글라이더 연습장과 농경지로, 또 다시 골프장으로 쓰임새가 바뀌었다(1941년에 글라이더 습장, 농경지로 쓰이다가 50년 골프장으로 복구, 그러나 한 달여 만에 한국전쟁으로 다시 농경지화. 54년에 또 다시 골프장으로 복구되어 72년까지 유지).

70년 당시 세계 최하위 빈국이었던 한국에서 소수의 특권계층만이 누리면서, 그 모습이 쉽게 노출되었던 골프장은 대다수 서민들의 반감을 샀다. 이런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골프장을 이전하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잔디뿐이었던 공간은 단 180일 만에(72년 11월 3일 기공식, 73년 5월 5일 개장) 놀이기구와 동물원, 벚꽃으로 가득 찬 놀이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손정목,『서울도시계획이야기』, 2003). 6달 만에 21만여 평의 광대한 부지를 변모시킨 이 공사는 왜 한국의 근대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원의 기념비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는 박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졌으며, 대문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들이 전통적인 기와집 형식으로 지어졌다. 또한 모형 땅굴과 위인상도 세워졌다. 이러한 건축물, 기념비, 조각상과 땅굴 등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반공주의를 고취시키는 역할, 즉 조형과 모형을 통해 국가 이데올로기를 체감케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어린이대공원은 창경원과 더불어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봄나들이 장소로 주목 받으면서 인기에 인기를 거듭하는 꿈의 장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러 3S정책으로 각종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가 확산되고, 자연농원(1976년 개장, 현 에버랜드), 서울대공원(1984년 개장), 롯데월드(1989년 개장) 등과 같은 또 다른 개념의 어뮤즈 파크가 등장하면서 그 광채는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현재, 어린이대공원은 예전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살을 덧붙이면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2. 스펙터클의 시발점, 어린이 대공원

“마침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버스는 어린이대공원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중학생은 놀라 입을 벌렸다. 공짜 좋아하는 어린이, 아니 그 어린이를 키우는 가장들이 모두 어린이대공원 앞에 몰려나온 것 같았다. 어린이만 공짜이고 어른들은 표를 사야 했으므로 매표구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고 그 장사진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풍선과 냉차를 파는 장사치들, 아이스크림에 넋이 팔려 다른 식구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아이들, 표를 손에 들고 목청껏 식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남정네, 그 남정네를 향해 필사적으로 다가가는 식구들... 또 다른 지옥이었다.”
-성석제,『농담하는 카메라』중 ‘천국으로 가는 버스’, 2008

소설가 성석제는 중학시절 어린이대공원을 향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국을 상상했으나 막상 도달했을 땐 많은 인파로 인해 지옥처럼 느껴졌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개원 초기인 73년, 일일 입장객 수는 평균 30만 명이었는데, 이는 당시 서울 인구 약 630만 명의 1/20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렇다보니 입장이 제한되기도 하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소음과 북적거림의 지옥 같은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것은 가장의 고정된 하나의 임무가 될 지경이었다.

그 당시 왜 그토록 그곳은 갈망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 어린이대공원이 우리에게 보여 진 최초의 스펙터클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스펙터클(Spectacle)은 사전적으로 구경거리, 인상적인 광경, 기이한 모습 등으로 설명되고 있으나,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Ernest Debord, 1931~1994)가 현대 문명을 스펙터클의 속성 규정을 통해 진단하면서, 현대의 시각문명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은 단어이다. 그는 현대 시각문명이 눈의 장대함을 추구하는 스펙터클에 매몰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스펙터클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전문화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경향으로서 특권적인 인간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인 인간감각은 촉각이었다. 그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신비화되기 쉬운 감각은 오늘날 사회의 일반화된 추상에 부합한다.” -기 드보르,『스펙터클의 사회』, 1967

여러 감각 중 특히 눈에 호소하는 스펙터클은 대상의 변형, 왜곡의 과정을 통해 일상적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경험을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의 추상적 성격, 사회과정의 추상화에 부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대가 전기나 망원경, 현미경, 카메라, 인쇄술 등 시각에 호소하는 기제들의 발전을 통해 망막 자극을 통한 감각의 확대, 사물의 판단을 진행해 오면서 결국 사물과 관계의 추상화가 진행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스펙터클은 한편으로 본질이나 진실을 망각하도록 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발견되는 스펙터클의 요소 또한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놀이기구와 같은 사물들이 일상적 경험을 압도하는 초현실적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눈 깜짝할 사이 하늘과 지상을 넘나드는 청룡열차와 실제보다 스무 배쯤 큰 컵이 주는 매력, 이슬람 모스크와 한국식 팔각당의 공존은 변형과 혼용, 과장과 확대 등의 기법으로 마치 동화의 나라에 머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는 분명 동물, 자연과 인간과의 기술적 개입 없는 교감만이 이루어지던 창경원과는 다른 차원의 유희를 선사했던 것이다.

두 번째, 놀이공원은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듯한 조화로운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놀이동산에서는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 프로그램대로 환상적 경험만을 위해 순조롭게 진행된다. 어떤 돌발 상황이나 고통도 없는 이 세계의 질서를 우리는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에코는 놀이동산의 원조 디즈니랜드를 로봇들의 도시라 빗대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로봇처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방문객의 규모는 사방에서 뱀처럼 축 늘어서 있는 줄의 리듬이나 장소에 따라 정확히 맞는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꿈의 마술사를 통해 통제된다.” -움베르토 에코,『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2005

이처럼 놀이공원에서 이미 조직된 질서에 따르는 것은 한 개인이 그룹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며, 오히려 조화로운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확인시켜준다.
세 번째, 놀이공원은 상품화 된 놀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우리는 시간과 돈을 소비하면서 일상의 새로운 경험을 구입하게 된다. 입장료와는 별도로 놀이기구는 저마다 탑승비용이 매겨져 얼마나 값을 치르느냐에 따라 경험의 폭이 좌우된다. 공원을 이용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지만, 동시에 나의 경제적 지위와 소비의 특권을 증명해주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한동안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현실을 넘어서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환상의 기표들이 뿜어내는 스펙터클의 황홀경 속에 아이와 자신을 내맡겼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도 10년이 채 안되어 새로운 놀이공원에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에버랜드와 서울대공원, 롯데월드가 제공하는 보다 거대하고 화려한 최강의 스펙터클에 의해 어린이대공원의 볼거리, 경험거리의 지위는 초라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스펙터클의 실무율

2011년 3월, 다시 찾은 어린이대공원에는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산책과 조깅을 하러 나온 아주머니들,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과 데이트하는 대학생 연인들로 조용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공원을 돌아보니 분수대, 수영장, 팔각정, 놀이공원 등 주요 장소가 모습을 달리하면서 부분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어느 곳은 사라지고, 어느 곳은 그대로 유지되기도 하면서 공원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희미한 얼룩을 남기고 있다.


분수대

정문으로부터 2~3분쯤 걸어가면 맞이할 수 있는 분수대는 개장 초기에는 파란 시멘트 바닥 위 새하얀 모자상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고, 물줄기는 단을 따라 우아하게 흘러내렸다. 10m높이로 내뿜는 중앙의 물기둥은 밤이 되면 수중등에 의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웅장함을 드러냈다. 당시 분수대는 사람들을 빙 둘러 모으며 시선을 끌었지만, 이러한 인기는 최신식 분수시설에 밀려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설치된 월드컵 분수는 강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202m 남짓 솟아오르고, 반포대교의 분수는 교량 난간을 따라 색색의 후광을 받으며 비 오듯 낙하한다.


대공원의 분수가 하나의 조경 요소였다면, 나중의 분수는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갖가지 의미가 부여된다. 더욱이 이제는 강 전체를 하나의 세트로 빌려 이야기를 집어넣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역동적이고, 거대한 분수에 비해 공원의 분수는 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며 그 당시 볼거리로 당당하게 존재하던 스펙터클은 이제 감각의 실무율에 따라 더 이상 어떤 자극도 주지 못하고 우리의 일상 속에 조용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우리 몸에 자극이 주어질 때 역치 이상의 자극에서는 반응의 크기가 일정한데 이러한 현상을 실무율이라고 한다). 2009년, 결국 어린이대공원의 분수는 음악에 맞춰 군무하듯 하늘거리는 음악분수로 대체되었다. 모자상은 분수대 주변의 포토존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분수대를 응시하고 있지만, 정면에서 보면 마치 분수대 한 가운데 안겨있는 듯하다.


수영장


정문 옆 연못너머 위치했던 수영장은 호리병을 닮아 있었다. 호리병은 빨대처럼 나란히 꽂혀있는 8대의 미끄럼틀을 통해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내보냈다. 당시에는 실외 수영장이 흔하지 않았고 한번에 1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은 매머드풀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수영장이면서도 바다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인공 파도와 서핑존, 360도 꼬인 미끄럼틀을 갖춘 대형 워터파크가 등장하였고, 공원 내 유사한 규모의 어린이회관수영장까지 생기자 이곳 역시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수영장 부지에는 키즈센터 신축공사가 한창이며, 그 뒤편에 2009년과 10년에 신설된 키즈오토파크와 아리수 나라가 있다. 오토파크 건물은 자동차를 형상화하였고, 마당에는 도로를 축소해 놓아 어린이들이 체험운전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내부에는 교통안전과 위험에 대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 입체영상관이 있다. 다면체 물방울 모양의 아리수 나라는 정수 과정과 수력의 원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모형으로 꾸며 놓았으며, 캐릭터가 등장하는 3D애니메이션 프로그램도 상영하고 있다. 현재의 문화 공간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곳의 새로운 놀이시설도 우리 몸의 직접적 경험보다는 뇌에 자극을 전달하여 실제 이상의 체험을 하게 하는 초 증강현실 공간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팔각당


개장 초기 팔각당은 사람이 빽빽이 줄지어 기다리던 인기 있는 전망대였다. 지금은 주변에 초고층 빌딩이 많이 들어섰지만, 당시 팔각당은 언덕 위에 위치한 데다 28m의 건물높이까지 더해져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팔각당에 올라 주변 주택가와 도로를 바라다보는 것은 놀이기구 못지않은 매력이 있었고, 내부에 경양식당이 있어 그 당시 희귀했던 양식을 먹으며 경치를 즐길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이후 생겨난 전망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81년 대중에게 공개된 남산타워(현 N서울타워)는 높이가 해발 480m에 달해 서울 전역이 내려다보인다. 게다가 그곳의 레스토랑은 천천히 회전하며 유리창 너머로 서울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는다. 한편 그리 높지는 않지만, 독특한 모양새와 240m의 길이로 시선을 모으는 전망대도 있다. 뚝섬전망문화콤플렉스는 자벌레 모양으로 내부는 긴 터널과 같으며, 그 안에 카페와 전시물들을 들여 놓았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의 전망대가 속속 등장하자 팔각당은 이제 전망대로서의 기능을 멈추었다. 이곳은 현재 캐릭터 월드와 디자인서울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캐릭터 월드는 국내 유명 캐릭터 모형으로 조성한 실내 놀이터인데, 전통적 건축형식의 팔각당을 배경으로 배치된 캐릭터 모형은 색과 형태, 질감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건물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1층에 설치된 디자인서울갤러리에는 디자인 수도 서울을 홍보하는 아이템들이 벽화와 오브제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놀이동산


대공원에서 예외적으로 놀이동산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청룡열차나 그 외의 시설물의 구성과 세월에 바랜 색상까지도 그대로 두었다. 아마도 기구 교체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70년대 후반에 탄생한 다른 놀이공원들은 대부분 기업체가 소유하고 있어 사람들의 욕구와 유행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해갈 수 있었다. 대규모 자본으로 거대한 성벽과 궁전을 세우고, 테마에 따라 시대와 지역의 양식을 재현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온 것이다. 그곳은 마치 중세 유럽의 어느 마을을 떼어다 놓은 것처럼, 건물과 사람의 복장, 심지어 간판의 글씨체까지 완벽하게 연출되고 있다. 시간마다 펼쳐지는 퍼레이드는 마을의 축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이에 비해 어린이대공원의 놀이동산은 현재 조용하고 평범한 그야말로 동산의 수준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파스텔 톤으로 희미해진 놀이기구는 공간의 나이만큼이나 자연스럽고, 그것이 전달했던 위압감을 덜어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원 내에서 가장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던 공간이 오히려 그 모습이 변치 않은 탓에 가장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의 변화는 좀 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궁극적으로는 퇴색해 가는 공간에 새로운 숨을 불어 넣기 위한 바람에서 이루어졌다. 이 중 상당 부분은 특정 기관의 홍보를 위해 할애되기도 했다. 기상천외한 스펙터클을 가지고 밀려드는 외부의 변화에 어린이대공원이 대응하는 모양새는 서울이 표방하는 표어 다이내믹에 비해 다소 소극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여 지고 있는지, 공원의 진정한 주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친구가 수도여사대(현 세종대)를 다녀서 골프장이었을 때부터 자주 왔었어요. 골프장 주변 잔디에서 놀곤 했지. 공원이 생긴 뒤에 애들을 데려가니까 너무 좋아했어. 6-7년쯤 전에 근처로 이사 와서 운동하러 자주 와요. 여긴 도심에서 가깝잖아. 봄에는 벚꽃도 예쁘고, 여름에는 잔디밭에서 쉬기도 하고... 이만한 데가 없지.” -62세 주부

“어린이날 가족과 놀러 와서 분수대에서 물보라 맞고 놀던 기억이 있어요. 요새는 집에서 가까워 산책하러 와요. 오늘도 이 앞 냉면집에 왔다가 소화도 시킬 겸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에요. 걷는 재미가 있죠. 동물도 보고, 산책코스도 다양하고, 옛날 생각도 나고요.” -33세 주부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의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기억은 긍정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현재 그 사람들은 예전의 스펙터클이 주는 떨림의 체험보다는 휴식을 통한 편안함을 기대하고 있었다. 공원은 도심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산책 코스였고, 일상의 피곤을 덜어내는 휴식의 공간이었다. 한때 떨리는 마음과 기대로 찾았던 어린이대공원이 이제는 가장 오래 전에 만나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온 엄마의 모습처럼 근린공원(近隣公園 :지역민의 휴양과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공원)이자 내 일상의 무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졌지만 지금은 수목과 푸른 잔디, 낭만적 노스탤지어를 선사하는 과거의 사물들이 공간의 매력을 더하며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이것이 어린이대공원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일지도 모른다. 비록 과거의 명성이 아쉬울지라도 이것이야말로 본연으로의 회귀라는 것을 공원 관리과장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은 법적으로 근린공원에 해당됩니다. 개장 당시 상황으로 인해 어뮤즈 파크로 인식된 것이죠. 근린공원은 전체면적 중 60%를 녹지공간으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 비율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녹지의 질도 중요합니다. 5년 된 나무와 10년 된 나무는 다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할 경우 최대한 이식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 분수는 원래 그 자리에 모자상이라는 4개의 조각상이 있었죠. 조각상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없애지 않고 옆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팔각당과 교양관도 설립 초기의 건물인데 구조적으로 이상이 없으면 보존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대공원사업단 시설관리부 손성일 조경과장

4. 일상의 공원에 대한 디자인의 역할 : 일상성에 대한 사랑

근린공원으로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물어본다. 입지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공원은 이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제인 제이콥스가 근린공원의 효용을 서술하며 언급한 ‘다양성’의 원리로 증명될 수 있다. 그녀는 근린공원이 외부적으로 다양한 용도의 건물에 섞여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이용자의 활동에 변형을 줄 수 있는 구조일 때 그 생명력이 유지된다고 설명한다(제인 제이콥스,『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2010). 어린이대공원은 교육, 상업, 사무, 주거 등의 건물 군에 싸여 있어, 평일에도 각기 다른 시간대에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고, 지면의 높낮이는 곡선으로 흐르며, 여러 중심점이 있어 다양한 패턴의 활동을 유도하고, 걸으면서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조건을 지니고 있는 공원에서 필요한 디자인은 거대한 구조와 볼거리와 새로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휴식과 안락을 도울 수 있는 사소한 배려이다. 그리고 사소한 배려가 요구되는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공간 주체들의 이야기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발현되는 창조적인 실천성에 주목하였던 드 세르토 또한 문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보통의 일상 영웅들의 중얼거림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했다(드 세르토,『일상생활의 실천』, 1980).

어린이대공원은 완전히 주변의 기능에 섞이거나, 전체가 새로운 표피로 씌워지지도 않은 채 도시의 얼룩처럼 남아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 탓에 그 모습이 말끔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가 오히려 공원으로 하여금 자생력을 갖도록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지금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거슬리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장자의 가죽나무를 떠올려 보라. 못생겨서 외면 받아 생명을 유지했던 고목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공원은 이제 과거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도시의 커다란 그늘막이 되어주고 있다. 내게 익숙하고, 푸근했던 것들을 없애면서 탄생하는 멋진 디자인이 가슴 뛰는 아드레날린의 생성만을 약속한다면, 38세의 어린이대공원은 세월이라는 인간 최고의 소중한 재산을 몸에 깊이 간직한 채 조용한 도파민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디자인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쉬어가는 이들의 중얼거림을 바탕으로 도시의 얼룩을 어떻게 삶에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디자인의 몫으로 남아있다.

봄이 깊어지자 어린이 대공원은 꽃의 향기와 이를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로 메워졌다. 그들의 감성을 채우는 벚꽃길은 3,40년 후에도 내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남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이대공원은 새롭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서울의 얼굴을 하고 또 한해를 보낸다.


사진출처
그림2-①,② : 사단법인 대한골프협회,『사진으로 보는 한국 골프사』, 2006
그림3-①,② / 그림4-①,② / 그림5-①,② / 그림6-① / 그림8-① / 그림9-① :
서울시 포토갤러리 wow.seoul.go.kr
그림5-③ : mbc스페셜 ‘춤추는 도시’ http://www.imbc.com
그림7-①,② : 비발디파크 오션월드 www.daemyungresort.com


공원 주체들과의 인터뷰 내용 전문
1차 interview day : 2011.03.23 (수)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추억, 현재 공원을 찾는 이유와 느낌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interviewee : 김ㅇㅇ 62세 주부
난 친구가 수도여사대를 다녀서 골프장이었을 때부터 자주 왔었어요. 골프장 주변 잔디에서 놀곤 했지요. 그 때만 해도 이 근방이 시골 같았어요. 어린이대공원이 생기고 나서 아이들을 데려가니까 너무 좋아했죠. 그런데 나중에 서울대공원이 생기니까 아이들이 더 큰 데 가자고해서 그리로 갔죠. 6-7년쯤 전에 근처로 이사 와서 요즘은 운동하러 자주 와요. 여긴 도심이잖아요. 봄에는 벚꽃도 예쁘고, 여름에는 잔디밭에서 쉬기도 하고... 이만한 데가 없죠. 좋은 건 화장실 같은 곳이 깨끗해서 좋아요. 안타까운 점이라면, 산책로 주변이나 내부에 자꾸 매점이나 건물이 들어서는 거 같아서 나무가 줄어드는 것 같아요.

interviewee : 이ㅇㅇ 33세 주부
어린이날 가족과 놀러 와서 분수대에서 물보라 맞고 놀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좀 바뀐 것 같은데 겨울이라 운영을 안 하나 보네요. 집에서 가까워 산책하러 자주 와요. 오늘도 이 앞 냉면집에 왔다가 소화도 시킬 겸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에요. 집에서 서울숲하고 어린이대공원하고 비슷한 거리에 있는데, 여기가 더 재미있어요. 걷는 재미가 있죠. 동물도 보고, 산책코스도 다양하고... 물론 서울숲에서도 사슴을 볼 수 있지만, 여기는 평소 못 보던 동물이 많으니깐... 돌아다니다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요.

interviewee : 박ㅇㅇ 57세 간이판매점주
올해 38년째 여기서 장사하고 있어요. 공원 개장할 때부터 있었죠. 개장 초기에는 장사가 잘 되었는데 요즘은 그 1/3도 안 팔립니다. 공원 앞이 디자인 서울거리로 조성되어 깨끗해진 것은 물론 좋지만, 예전에는 정문 입구를 중심으로 가판대들이 줄지어 서 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가장자리로만 세우게 되어 있어서 입구와 거리가 멀어졌어요.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도 줄고, 장사하는 가판대 수도 줄었습니다.


2차 interview day : 2011.04.08 (금)
interviewee : 손성일 어린이대공원사업단 시설관리부 조경과장

90년대 재정악화로 어린이대공원 민영화가 논의되었다는데, 그러한 위기는 어떠한 이유 때문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린이대공원은 법적으로 보라매, 월드컵 공원과 같은 근린공원에 해당합니다. 다른 근린공원을 보면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곳은 어뮤즈 파크로 인식되었습니다. 물론 초기에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80년대 초까지 인기가 있었으나 이후 대형 놀이공원이 생기자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시설도 노후화 되었구요.

최근에 입장객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작년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1200만 명 정도. 어린이날은 하루 50만 명, 4~5월 벚꽃이 피는 주말에는 하루 10만 명 이상 옵니다. 2005년경에 약 500만 명에 그쳤던 것을 보면 지금은 거의 두 배가 넘죠. 2006년 10월부터 입장료를 폐지했는데, 무료개방이 가장 큰 원인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가선용에 대한 관심과 시설개선도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시설개선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2006년도에 어린이대공원 재조성 기본계획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1단계는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의 개선과 낡은 산책로 같은 내부 인프라 교체, 2단계는 동물원, 음악분수, 축구장 등 관람시설과 볼거리 위주로 시행했습니다. 매점, 카페테리아도 개선했구요.

시민 인터뷰를 해보면 건축물이 들어서고 공사가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 수목이 훼손될까 우려하는데, 녹지에 관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근린공원은 법적으로 전체면적 중 60%를 녹지공간으로 확보해야 하고, 나머지 40%만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최근 개선된 편의시설도 예전에 흩어져 있던 매점, 화장실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여 배치를 다시 한 것으로, 녹지량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녹지의 질도 중요합니다. 수목도 있고 잡목도 있으니까. 어찌됐든 5년 된 나무와 10년 된 나무가 다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할 경우 가급적 이식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요구사항이 실질적으로 반영이 되는 경우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인터넷, 전화, 우편 등으로 접수되는 민원이 일 년에 몇 백건 정도인데, 즉시 필요한 것, 상황에 맞는 것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조성 계획을 수립할 때 공청회를 통하여 전체적인 의견을 수렴한 바 있구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화문 광장 같이 서울시가 최근 개선한 공간의 경우 전면적인 변화를 겪는 반면 어린이대공원은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곳의 중요한 특성이 추억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와 봤고, 지금도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세대별로 같이 와서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음악분수만 하더라도 원래는 모자상 조각 4개가 있었는데 그것을 추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없애지 않고 옆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팔각당과 교양관도 설립 초기의 건물인데 구조적으로 이상이 없으면 보존하려고 합니다.

facebook twitter

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