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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 리뷰

티셔츠 그 이상

무신사 | 2015-06-02


‘늘 잘 만드는’ 이란 칭호를 얻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간 신뢰가 쌓일 수 있는 행보를 이어왔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즉,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의심치 않게 할 수 있을 만큼 지난 걸음이 단단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에스피오나지(Espionage)는 그걸 해낸 브랜드다. 컬렉션마다 좋은 옷을 가득 담았고 늘 발전하는 자세를 갖추며 오늘날까지 걸음을 이어왔다. 재료, 디자인, 그리고 옷 속에 담긴 이야기들, 그 모두를 놓치지 않고자 늘 최선을 다해 온 디렉터 크리스 영을 만났다. 그와 함께 이어질 2015년 여름 티셔츠 컬렉션을 살폈다. 그리고 이번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될만한 결론을 얻었다.

기사제공 ㅣ 무신사
 

MATERIAL & PERSPECTIVE : YARN

원단을 읽을 때 보통의 경우 ‘수’, 혹은 ‘s’라 불리는 개념은 원단의 두께를 의미로 읽힌다. 다만 그 세부적인 실상은 그 이상을 담는다. ‘수’는 두께 뿐만 아니라 밀도와도 연관이 깊은 개념이다. 1파운드의 면화에서 뽑아낸 실의 길이가 768.1m일 경우 1수(s)인데, 요컨대 20배인 15362m로 뽑아낼 경우 20수(s)가 된다. 같은 양의 면화에서 길게 실을 뽑을수록 실은 가늘어지고, 가는 실로 짠 원단은 그만큼 촘촘한 밀도를 가지게 된다. 곧 그 역도 성립한다. 결국 ‘수’란 개념은 두께와 밀도 모두를 함유한다. 또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실인지에 따라 원단은 그 성질을 달리할 수 있다. 같은 20수라 하더라도 20수 2합은 곧 10수를 의미한다. 기술적인 방식이 달라지는 만큼, 밀도와 두께, 그리고 합 수가 높을수록 원단의 가격 역시 상승한다. 에스피오나지는 티셔츠의 제작에 다양한 제직 방식을 시도했고 그 다양한 시도들이 실제 출시되는 옷들로 이어져 입는 이의 취향에 따라, 그리고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적어도 에스피오나지의 티셔츠들은 디자인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서로 다양하다.

MATERIAL & PERSPECTIVE : DYEING

이번 티셔츠 컬렉션에서 시도한 기법들 중에는 피그먼트 워싱(Pigment Washing)이 있다. 가먼트 다잉(Garment Dyeing)의 한 분야며 ‘안료염색’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염색하지 않은 실로 짠 원단을 바탕으로 재봉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옷에 특수한 안료로 착색을 하는 기법이다. 원단의 단계가 아닌 옷의 단계에서 염색을 거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점이다. 에스피오나지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단순히 염색만을 하는 것이 아닌, 염색과 데미지를 함께 구현했다. 일반적인 실에 비견해 조밀한 꼬임으로 훨씬 더 단단한 내구력을 가진 링스펀(Ringspun) 10수 실로 만들어진 옷, 동시에 염색과 데미지 가공을 모두 견딜 수 있게끔 내구력을 보강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옷이 쓰였고 결국 가먼트 다잉과 데미지 가공을 모두 견디며 각별한 풍모를 가진 동시에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게끔 이끌었다.

피그먼트 워싱 티셔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신경써야 할 점은 원단의 설계에 그치지 않는다. 재봉실과 라벨의 염색여부, 워싱 과정에 발생하는 수축률을 고려한 패턴과 실루엣 설계 등도 필수적이다. 요컨대 제작과정에서 너무 많거나 적은 수축률을 보인다면 티셔츠의 큰 매력인 ‘피팅감’이 격감하기에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그 적절한 지점을 잡은 것과 같다. 그렇게 제작 공정을 ‘이해’하며 만들었다. 티셔츠는 시각적으로 단순한 옷이다. 다만 그만큼 각 요소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옷이다. 그 모든 지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MATERIAL & PERSPECTIVE : TUBE

이번 티셔츠 컬렉션은 옆선이 없는, 말 그대로 원형의 구조를 가진 튜브(Tube) 원단으로 만들어진 티셔츠도 포함한다. 제작의 관점에서 튜브 원단은 손실이 많다. 원단이 만들어지는 시간만 해도 보통의 원단에 비해 2.5배 정도 더 든다. 하지만 착용감과 활동성의 증진, 원단 밀도와 수축률, 궁극적으로 ‘입는 만족’에서 장점을 가지기에 시도했다. 같은 20수 원단이라 하더라도 원단이 짜이는 구조적 다름으로 인해 튜브 원단은 여러 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MATERIAL & PERSPECTIVE : DIFFERENT

앞서서 말한 그대로 2015년의 티셔츠 컬렉션에선 원단에 있어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우선 20수 코마사 2합(실질 10수) 원단과 그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워싱을 거친 긴 소매 티셔츠들, ‘밤비노’ 시리즈와 ‘ABC’ 티셔츠 등이 있다. 또 같은 20수 2합이지만 촉감을 달리 두며 디자인의 특수성을 이어간 케이스도 있다. ‘코베인 스트라이프 보트넥’과 ‘코디네이트 스트라이프 보트넥’ 같은 경우 보다 거친 촉감으로 만들어 디자인이 전하려 하는 특수성을 원단에까지 이어갔다. 앞서서 말한 링스펀 10수 원단은 피그먼트 워싱 제품군 외에도 이번 컬렉션에서 처음 시도한 천연 인디고 염색 제품군에도 쓰였다. 양쪽 모두 많은 노하우가 반영되어야만 제대로 나올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진 옷들이며 그렇기에 원단 역시 그 노하우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원단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옷 자체의 완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에스피오나지 브랜드의 정체성에도 연계된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누가 하겠는가? 에스피오나지니까 한다. 에스피오나지니까 해야 한다.

MATERIAL & PERSPECTIVE : SOLID

원단이 충분히 단단할 수 있게끔, 우븐(Woven, 직조) 원단에 데미지 워싱이 들어갔을 때의 질감 그 이상을 니팅(Knitting, 편직) 원단이 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노력했다. 또 링스펀 10수와 튜브 20수 원단 역시 기본적으로 충분한 밀도를 갖추는 동시에 철저한 방축가공을 통해 수축률 변수를 통제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노력했다. 단순히, 그리고 맹목적으로 어떤 실과 어떤 짜임, 그리고 어떤 원단이 정답이라고 믿고 노선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각각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며 각각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을 시도하고 싶었다. 요컨대 카드사를 제외한 코마사 기반 원단들의 경우 링스펀에 비견해 밀도가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고자 최종 워싱에 심혈을 기울여 링스펀에 비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단점을 억제시켰다. 링스펀 기반 원단과 함께 각각은 각각의 장점을 가지며, 동시에 에스피오나지가 추구하는 ‘단단한 원단’ 이란 명제를 서로 충실히 갖춘다. 이게 철학이다. 단순히 알거나 생각하고 그치는 것이 아닌, 분석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다.

DESIGN & BEHIND STORY : PHILOSOPHY

옷에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 철학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소재에 대한 뒷이야기부터 그것이 외형으로 전환되는 과정, 디자인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뚜렷한 이야기를 따르며 옷이 단순한 결과물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 누가 보더라도 투명하게, 그리고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디자인 속, 그리고 컬렉션 컨셉트 속에 내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옷에 담긴 이야기들이 모여 컬렉션의 주제를, 그리고 컬렉션들이 모여 에스피오나지란 브랜드를 만든다. 결국 그 말초에 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것이 결국 에스피오나지를 만들고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번 티셔츠 컬렉션에선 동시대에 한정하는 이야기가 아닌,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역사성과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옷에 담고 싶었다. 젊은이의 홍안을 갖되 그 생각과 심장은 무르익은, 말 그대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천연 인디고 염색을 통해 만든 스트라이프 티셔츠에는 과거 미해군(NAVY)들의 커피잔에 적혀 있던 앵커 그래픽을 옮겨 하단에 발염으로 담았다. 푸르른 인디고 스트라이프 원단과 앵커 그래픽은 해군이란 기의를 표출할 기호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라 생각하며 디자인에 임했다.

‘Death To Hipsters’라는 문장은 늘 머릿속에 염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 컬렉션에는 ‘Death to Hipsters Grandma’란 사진에서 문장을 뽑아내 스트라이프 원단과 조우시키며 응용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엔 은은하게 스며드는 나염 처리를 더했다.

HBO의 새로운 밀리터리 드라마 시리즈인 ‘Mighty 8TH’와 관련된 이미지들과 자료를 수집하던 중, 결국 그 인상을 이어 티셔츠까지 만들었다. 1942년 2차세계대전기에 창립된 미공군 8연대는 폭격기 비행단으로 B-17 폭격기를 타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역사적으로나 위상적으로나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실제 175 Bourne Ave, Pooler, GA 31322, U.S.에 있는 ‘Mighty 8th 공군박물관에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으며 이미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입체적인 이야기들에서 풍부한 인상을 얻었고,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속에 반영하고 싶어 이 디자인을 만들었다.

‘ARMY BASEBALL CLUB’ 이란 가상의 집단을 머릿속에 그리고 타이포그라피 나염으로 그것을 시각화시켰다. 더블라벨 트릭을 쓰는 등의 시도를 통해 과거 베이스볼 티셔츠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동시에 디자인적 완성도를 갖췄다.

밀리터리 장르 중 대표문구로 자주 쓰이는 ARMY, NAVY, USAF, 그리고 그 여하 3군 사관학교의 약자인 AFA, MA, NA, MC를 근간에 두고, 실질적인 자료와 그들의 역사와 관습 등을 탐구하며 ‘대표문구’ 그 이상으로 디자인의 특수성을 개발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지난 시즌 컬렉션에선 AFA와 AAF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에서 받은 영감을 디자인에 담았었고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도 당대의 P.T 스웨트셔츠들에서 얻은 영감을 재해석한 이야기를 담았다.

OG로고를 다양하게 분화시키는 시도를 했다. 박스 로고 타입, 가로 배열, 주머니의 밀스팩 마킹 등이 있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다시,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게끔 만드는 장치가 되게 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서울의 중심을 의미하는 N37’ 56’의 위/경도 좌표는 2011년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늘 디자인에 담고 있다. 이번 컬렉션에선 기호의 심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을 담아 새로운 디자인의 틀 안에서 기존의 좌표 타이포그라피를 재해석했다.

S/S 2015 시즌의 테마인 ‘SMOKE, DRY, TEENAGER’가 등장하게끔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변인은 1990년대를 풍미한 시애틀 그런지 밴드 너바나(NIRVANA)였다. 특히 리더인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자주 입던 스트라이프와 그래픽 티셔츠들에 큰 인상을 받았고, 그것을 토대로 보트넥 티셔츠를 만드는 동시에 그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선 기호인 코카콜라 브랜드의 타이포그라피를 디자인에 섞었다. 이 다층적인 기호들 속에서 그는 다시 읽힌다.

티셔츠 디자인을 하던 중 ‘여름전쟁(Summmer Wars)’ 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2차세계대전 중 과달카날섬 전투가 자연히 연결되었다. 전장들 중에서도 특히 피폐한 풍경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 자료들을 살피다 보면 얼마나 큰 전투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야자수 나무들 사이로 좌초된 함선이 보이는 풍경이란 각별하고 절묘하다. 보통 여름이라면 떠오르는 휴양지의 인상과는 사뭇 인상을 얻게 된다. 그 인상을 토대로 그래픽을 만들어 옷에 담았다.

COLLECTION & VISION : WHY WE WORK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옷이 있고 역시 너무나도 많은 의류 브랜드가 있다. 다만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브랜드가 흔한 편은 아니다. 그리고 에스피오나지는 그 점에 집중한다. 억지로 끼워 맞춘 이야기가 아닌, 기획과 제작 과정에서 자연히 담긴 이야기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옷의 특수성을 만드는 중요한 축이다. 경영자를 포함한 에스피오나지의 모든 스텝이 단순한 옷 그 이상을 원하기에 이야기의 부여, 그리고 그것까지 충실히 갖춰진 브랜드, 기획, 그리고 제품은 당연하고 자연한 일이다.

COLLECTION & VISION : LET THERE BE

에스피오나지의 옷을 접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저 외모가 좋아서, 혹은 그저 소재의 특수성만이 좋아서 선택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실상 그 모두 유의미하다. 그 역시 분명 옳은 접근법이며 도덕적인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까지 염두하며 대응한다. 서로 다양한 특수성을 갖춘 옷들을 만들고 개개마다 충실히 완성도가 실릴 수 있게끔 노력한다. 소재에 대해 집착하고 만듦새에 대해서도 소재가 가진 강점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티셔츠 역시 재킷이나 아우터 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그만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에스피오나지는 ‘객관적인’ 브랜드가 되길 목표로 둔다. 세밀한 눈으로 스스로를 살피며 몰개성이 아닌 그 모든 개성을 포함할 수 있는 브랜드를 지향한다. 이어질 옷들에 대해서도 기대해주길 바란다.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옷들이 이어질 것이며 그 모두에는 에스피오나지 특유의 자세가 담겨있을 것이다. 충실히 만드는, 충분한 이야기를 담는, 그리고 모두를 향하는 자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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