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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동시대 미술시장의 중심에 선 인도 변방의 시선

2014-09-04


현재 전세계 미술시장은 수보드 굽타를 ‘인도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꿔 놓은 현대미술 작가’, ‘인도의 데미안 허스트’로 부른다. 이 같은 수식어는 수보드 굽타가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임을 가리킨다. 인도인이 처한 삶과 문화, 일상을 보여주는 작가 수보드 굽타의 개인전이 상하이에 이어 한국에서도 개최된다.

에디터 | 박유리(yrpark@jungle.co.kr)
자료제공 ㅣ아라리오갤러리

중국의 미술시장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한국 갤러리 역시 앞다퉈 중국 베이징에 진출했지만,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와 중국 정부의 미술 관련 정책으로 인해 국내 대다수의 갤러리들은 전시 규모를 줄이거나, 철수를 결정했다. 베이징에 있던 아라리오갤러리 역시 2013년 초 중국 지점의 재오픈을 위해 문을 닫았고, 그 후 약 1년 반 만인 8월 29일, 상하이에 새 둥지를 텄다.
젊은 컬렉터의 증가와 아트시장의 성장에 따라 동시대 아시아 문화권 예술로 관심과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지역인 상하이에 오픈한 아라리오갤러리는 국내외에 알려져 있지 않은 해외 작가들을 소개, 초청하는 데에 중점을 둘 예정이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시키고자 아라리오갤러리는 개관전으로 수보드 굽타를 선정했다. 전시를 통해 그의 대형설치와 조각, 대형 회화 등 굵직한 역작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수보드 굽타의 작품을 한국에도 연결시켰다.

아라리오 상하이와 서울, 각각 동시에 열리는 수보드 굽타 개인전은 열리는 장소에 따라 그 특징을 달리하고 있다. 새롭게 오픈한 상하이 전시장에서는 역동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설치 작품인 ‘이것은 분수가 아니다’, 금색으로 이루어져 반짝반짝 빛나는 하트 형태의 화려한 대형 조각 ‘러브’, 3미터 크기의 대형 회화 등 수보드 굽타의 신작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서울 전시에서는 대리석으로 만든 드럼통, 물과 우유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만든 ‘두 개의 불렛(Two Bullets)’, 30여점의 음식 페인팅 등 작가의 작업맥락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을 전시한다.

9월 1일부터 열린 서울 전시에서는 인간의 음식문화에 녹아 있는 정치, 종교, 사회적 이데올로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면, 매일의 음식준비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수보드 굽타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는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음식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동하는 수단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도시락 통을 자전거에 싣고 출근하는 아버지와 갠지스 강물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오던 어머니, 우유병을 싣고 거리 위를 질주하는 릭샤꾼 등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이자 현재의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며, 이는 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브론즈 빛깔을 뿜어내는 바이크 두 대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는 영국 정통클래식 바이크사인 로얄 엔필드의 가장 오래된 제품인 불렛을 브론즈로 캐스팅한 ‘두 개의 불렛(Two Bullets)’이라는 작품으로, 자세히 보면 바이크 양 사이드에 물동이 모양의 용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매달려 있는 용기는 우유병으로 이는 크롬으로 정교하게 도금됐는데 작가는 인도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과 우유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작품의 소재로 다뤘다. 물과 우유를 가득 싣고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뒤뚱거리며 인도의 도심을 질주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세계 속에서 발전해가는 인도 경제와 대조되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다수의 인도인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에 대한 경외의 시선을 담아냈다.

지상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만든 드럼통 두 개를 볼 수 있다. 흔히 대리석은 구하기 힘든 고급소재로 꼽지만, 인도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일 뿐이다. 검정색과 흰 색으로 대조되게 진열된 이 작품은 석유파동으로 인해 더 커진 인도의 빈부격차의 심화, 계급 간의 갈등을 표현한다.

누가 먹다 남은 음식을 보고 반기는 사람이 많지 않듯, 인도에서도 ‘남은 음식’은 매우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힌두인은 생명과 관계된 것을 깨끗하고 깔끔한 것, 시체나 가죽, 분비물 등 생명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남겨진 음식은 생명을 잃은 음식, 즉 부정한 음식으로 치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남성보다 부정한 존재로 여겨지던(지금도 여전히 낮은 지위를 갖고 있는) 인도의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라온 작가는 자기가 보고, 느꼈던 기억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했다. 전시장 2층에 진열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반짝이거나 새하얀 대리석처럼 순결하고 고귀한 느낌을 주는 접시 위에 먹다 남은 음식을 그린 회화,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음식물이 말라붙은 포크, 나이프 등을 올려 놓는 등 식사가 끝난 후의 너저분한 테이블 모습을 묘사해놓은 회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금색 프레임의 고급스러운 액자 속 먹다 남은 음식 작품들은 성스러움과 너저분함을 동시에 담아내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같이 성스러움과 세속성이 엇갈리는 지점이 수보드 굽타의 작품이 위치하는 영역이 아닐까.

수보드 굽타 개인전은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와 서울에서 각각 10월 26일, 10월 5일까지 열린다. 서울에서 선보이는 그의 35개 작품을 통해, 우리는 한 사회의 가치관과 제도가 인간의 삶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에 공감하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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