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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일상 속에 스며든 공예 공간의 고요함

2014-08-08


나날이 발전해가는 기술과 함께 도래한 산업화로, 패스트패션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빠름을 토대로 한 문화가 사회의 트렌드 전반에 자리잡은 지 오래다. 가속의 일상화와 동시에 느림의 미학이 중요시 여겨지고 있는 이 시점, 온화함과 소박함,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생활 곳곳에 자리하며, 우리의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했던 공예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KCDF) 측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 공예를 생활 공간 안에서 재현해 우리 삶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
‘2014 KCDF 기획전시 공예, 공간에 스며들다’ 展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콘셉트의 공간 속에서 공예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에디터 ㅣ박유리(yrpark@jungle.co.kr)
사진제공 ㅣKCDF갤러리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트렌디한 제품들, 그리고 그 속에 피어나는 빠른 생산문화와 넘쳐나는 정보의 물결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공예의 진정한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이 전시에서는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을 갖춘 공예품들이 일상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전시장은 ‘정중동(靜中動),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는 부제 아래 ‘공예, 공간에 스며들다’, ‘공예, 일상에 스며들다’, ‘공예, 생각에 스며들다’라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수많은 켜들이 중첩을 만들고, 이불과 같은 소재로 포근히 덮어 볼륨감을 형성한 ‘공예, 공간에 스며들다’ 테마에는 백자를 영상화해 공간의 한쪽 면을 비추고, 정갈하게 놓여진 반상기, 은은한 색감의 꽃병, 질그릇 옹기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화려함을 내뿜지 않지만, 각자만의 존재감으로 공간을 채우고 어우러짐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군데군데 잘라놓은, 하늘하늘 거리는 얇은 막으로 전시관 전체를 한 가득 채워놓은 ‘공예, 일상에 스며들다’ 테마에는 우리네 조상들이 사용했음직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막을 걷고 전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보면, 한 켠에 다소곳이 걸려있는 매화연암 김씨의 저고리와 둥근 곡선을 자랑하는 자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디자인된 가구 등이 전시돼 있다. 은은한 조명 빛이 막을 투과해 나타내는 불규칙적인 음영과 막 사이로 공예품이 보이도록 배치해 몽환적이면서도 오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예, 생각에 스며들다’ 테마는 비물질적인 채움을 통해 공예품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낮이가 다르게 매달린 낮게 드리워진 천막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 천장에서부터 중간까지, 무수히 많은 가느다란 실 끝에 매달린 거대한 천막의 틈 사이로 들어가 보면, 전시장 전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옆으로 줄줄이 매달려 진열된 반상기부터, 나란히 진열된 공예품까지,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장과 천막 가운데서 보는 전시장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빈 공간을 두지 않고 차경으로 공예를 바라보고, 관람객이 스스로 시선을 열어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공예, 3D프린팅, 영상 등 공예 작품 100여점이 진열된 이번 전시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빛깔이나 멋, 파격적인 디자인을 엿볼 순 없지만,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세가지 전시관 아래 한국 공예 특유의 단아함을 느낌과 동시에 공간 안에 살아 숨쉬는 공예의 소박함을 만나 볼 수 있다. ‘공예, 공간에 스며들다 展’은 KCDF갤러리에서 오는 2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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