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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위의 아스피린
미술

무료

마감

2012-02-15 ~ 2012-02-21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topohaus.com

머리위의 아스피린

통증은 싸움의 증거다. 몸이 질병의 침입을 알리고 그것과 맞서 싸우면서 통증은 더욱 격렬해진다. 이때 통증은 저항과 투쟁의 언어이자 몸짓이 된다. 성장도 통증을 수반한다. 그 뿐인가. 일상의 무수한 선택들도 크고 작은 고통을 대가로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참의미를 드러낸다.

● ' 머리 위의 아스피린' 전은 통증의 본질을 찾아가는 전시다. 통증에서 벗어나고자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기 전에 통증의 원인을 찾아나서 보기를, 통증으로 인한 고통의 실체가 기실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아스피린으로 손쉽게 없애버릴 수 있는 통증이 아니라, 설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통증의 내면의 발원지를 찾아 떠나는 탐구의 원동력으로서의 존재로 마주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권량지는 기억 속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록을 일기 형식의 텍스트로 제시한다. 일기를 개방된 공간에 기록함으로써 시각적 물질의 대상으로 치환시켰다. 이 과정은 자신의 수치심까지도 드러내야 하는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구속하던 것들로부터 비로소 스스로를 놓아주는 치유의 순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수개월에 걸쳐 기록한 일기를 관람객들에게 개방한 후 현장에서 말끔히 지우는 행위로 작품을 완결시켰다. 일상을 기록하고, 그리고 그것을 삭제함으로써 다시 새롭게 꿈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고자 하는 시도에서다. 무언가를 없애기 위해 지우는 행위 뒤에 잔여물로 남겨지는 지우개밥 또한 권량지에게는 하찮은 폐기물이 아닌, 또 다른 창작의 에너지가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김선열에게 몸은 모순이 부딪치는 전쟁터다. 당당한 자신감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외모를 바꾸는 온갖 시술이 권장되는 이 시대에, 나의 실제 이미지는 철저히 거부되고 심지어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규정된 미의 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집단적 광기에 휩쓸려 가다보면, 그렇다면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묻게 되는 순간이 날카로운 통증처럼 찾아온다. 자신이 스스로를 대상으로 소비하고, 욕망과 집착이 서로를 복제하는, 거품의 세계에 사로잡힌 자화상을 김선열은 제시한다. 버블이라는 또 다른 폭력의 상징적 무게에 함몰되어가는 자신을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통스럽다.

백병기는 나와 사물과의 관계를 감각과 사유, 혹은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상적 세계로 확장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물들에 대한 스쳐가는 단상들, 상상의 부스러기들, 무의식 속에 부유하는 모호한 정의들, 손 뻗어도 닿지 않는 개념들을 손가락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시켜 일정형식의 질서로 집적해 내고 있다.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사물의 감각들과 찰나의 순간들, 때로는 원인 모를 고통의 기억들을 담고 있는 손가락 형상들은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탑으로 형상화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는 서글프다. 아니 차라리 무섭다. 이세희는 실재보다 더 생생한 인공적 대체물들에 도리어 익숙해진 우리의 감각을 더욱 극단적으로 끌고 가는 시도를 보여준다. 표본 상자 속에 나열되어 있는 곤충들은 가상생명체 표본들이다. 언뜻 곤충표본 같아 보이지만 형태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제작한 것들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생명체를 표본 상자 속에 진지하게 담아 놓은 것은, 그것들 또한 인간에 의해 나름대로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전략에서다. 가상과 실재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시대에 이런 상황은,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혹여나 진짜로 무너질지도 모르는 갖가지 경계와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섬뜩한 상상을 유발시킨다.

수행적 의미로서 신체적 드로잉을 실천해온 이종균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기존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새로이 만들어 가는 작업으로 노동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확인시킨다. 목적지를 향한 일직선의 길을 내기 위해 갖가지 장애물들을 타고 넘는 계단과 위태로운 길을 현장에서 각목으로 만들어 가는 힘겹고 고단한 과정은 앞으로만 진행해 나가야 하는, 일방통행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 전시참가자들은 각각의 삶들 속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자신만의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유하는 여정을 자전적인 이미지들로 변주해 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아프다는 것은 성장에 대한 반증임을,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들여다보는 시도가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아름답고 치열한 탐구의 시간이었음을 작업으로 고백하고 있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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