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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남긴 양승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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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가 오르면 전세민은 다른 거주지를 찾아 ‘떠나거나’ 인상된 세를 어렵사리 ‘지불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먹고 자고 쉬는 주택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 버림받았거나 발전이 미약했던 도시의 개발로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해당 지역에 터전을 마련하고 있던 이들이 임대료 상승을 감당하기 힘들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의 삶에 도드라진 현상이 됐다. 디자이너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공장 밀집지역 등에 모여 살아왔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으로 해당 지역의 분위기가 바뀌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어느 부류보다 가장 먼저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같은 예술가들의 이동성은 도시재생과 문화적 가치의 존속이라는 양 측면에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도시와 예술가의 공존이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


기획 및 취재 ㅣ 매거진정글 편집부
디자인 ㅣ 임애라
제1회 떠나지 않고 머물 권리 (11/10/2015)
제2회 예술가여, ‘멋있게’ 쫓겨나라 (11/24/2015) 



지금에 와서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홍대에도 한땐 ‘스피릿’이라는 것이 있었다. ‘드럭’에서 펑크록을 외치며 얼굴에 숯검정을 묻혀 돌아오던 ‘자유로운 영혼’들의 홈그라운드. 음악과 미술이 넘실거리던 홍대는 서브 컬처의 성지이자 급진적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토박이보다 그 문화를 소비하러 오는 관광객이 늘고, 우후죽순 들어선 힙합 클럽이 홍대를 ‘부비부비장’으로 낙인 찍을 무렵이었을까. 메뚜기 떼처럼 몰려든 자본은 순식간에 홍대의 토착 문화를 초토화했다. ‘레코드 포럼’, ‘리치몬드 제과점’, ‘(구)삼거리 포차’ 등 알 만한 랜드마크들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신속하게 치워졌다. ‘살롱 바다비’와 ‘은하수 다방’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스러졌다. ‘홍대 스타일’이 지시하던 실체는 내가 사랑했던 곳이 매일 문 닫는 낯선 거리에서 공중분해 됐다. 이제는 홍대여야만 할 이유가 없다.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많은 이가 터전을 빼앗기는 가운데 그 ‘대격변 시대’를 오롯이 버텨온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합정동에 발을 들인 이래 이곳저곳 전전하다 당인리 초입에 뿌리를 내린 김남균 대표가 그중 하나다. 그의 이력은 유별나다. 열다섯에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 일러스트 매니지먼트 회사 ‘엠큐피엠(mqpm system)’을 경영하며 사업가로 ‘끗발’을 날리다, 갤러리 및 카페를 겸한 ‘그문화갤러리·그문화다방(이하 ‘그문화’)’을 오픈하며 장삿길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문화’가 이름을 알리나 싶더니 2013년에는 돌연 임차상인협회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을 조직한다. 두 차례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법’) 개정에 공헌하며 현장에서 싸워 온 덕분에 최근에는 문화면보다도 사회면이 더 어울리는 ‘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 자신도 임차인 권익 보호 문제에 이토록 깊숙이 개입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가 ‘엠큐피엠’을 운영할 당시만 해도 ‘아동출판계 일러스트 일은 김남균이 다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사업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전화기에 불이 나고 다이어리가 터져나가도록 일하는데 안정적인 자산은 축적되지 않던 것이다. 일러스트계의 고질적 병폐로 손꼽히는 ‘매절계약’ 혹은 ‘양도계약’이 문제였다. 계약을 하면 인세가 붙어 판매 부수에 따른 차익이 생겨야 상식일진대, 일러스트레이터는 고정 원고료만 받고 용역처럼 일하거나 저작권을 출판사에 양도하기를 강요받곤 했다. 대표적 사례가 〈구름빵〉 작가 백희나와 한솔교육(한솔수북) 간의 분쟁이다. 아이 가진 부모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림책 〈구름빵〉이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상품으로 가공되면서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이 원작자가 가져간 돈은 고작 1,850만 원. 한국 일러스트 업계의 열악한 현장에서 김남균 대표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작권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 정도 환경에서밖에 일할 수 없는가? 그는 직접 저작권법을 공부하겠다고 나선다.
현직 변리사나 변호사가 정원의 90%를 차지하는 법대 대학원에서 김 대표는 유일한 파인 아트 전공자였다. 민법과 형법의 기초를 배워가며 어느 정도 법문을 읽게 되었을 즈음, 김 대표는 순전히 ‘재미로’ 상가법을 들춰보게 된다. 왜 자신이 자꾸만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는지, 왜 문화예술은 한 지역에 고착될 수 없는지 각성하듯 깨달은 하룻밤이었다. 그 이후로는 단김에 소뿔 빼듯 일사천리였다. 당인동 지역 축제 ‘썸데이 페스타’에서 일본의 차지차가법과 한국의 상가법을 비교하는 세미나를 열었고, 그때 모인 사람들이 ‘맘상모’를 결성했다. ‘맘상모’ 초기 멤버들이 상가법을 바꾸자고 나선 지 한 달 만인 7월 1일 일부 변경 사항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상인들도 하나둘 ‘맘상모’에 모이기 시작했다. 불과 2년 만에 ‘맘상모’는 600명 이상의 정회원을 보유한 시민 단체로 성장했다.
김 대표의 눈에는 임차인의 사정도 일러스트레이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한 저작권자가 ‘저작권’이라는 베네핏을 받아야 한다면, 밤낮으로 일해서 가로 활성화(상권 활성화)에 기여한 임차인도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임차인이 빈터에 고객의 발걸음을 끌어당겼으니 그 또한 그의 힘으로 일궈낸 재산인데, 임대인은 임차인이 잘된다 싶으면 ‘너 나가, 이제부터 내 아들이 할 거야’라며 임대료를 두 세배씩 올려버린다. 결국 누군가의 땅에 세 들어 사는 일이 끝이 뻔한 ‘용역질’이라면, 출판사의 부당계약에 묶여 ‘갑질’ 당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처지와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문화’가 문을 연 지 9년째, 김 대표에게 따라붙는 타이틀도 이제는 한둘이 아니다. 30년 경력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당인리 문화 공간 ‘그문화’를 지켜온 터줏대감, ‘맘상모’의 창립자이자 진성 회원, 그리고 올해 출간된 〈골목사장 생존법〉의 저자. 젠트리피케이션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그는 무엇을 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남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유령

Jungle : 우리나라에서는 임대인 소유권이 지나치게 강력하다. 이 기형적인 환경의 원인이 뭘까?

김남균 대표(이하 김): 역사적 바탕이 있다. 본래 우리나라의 땅 개념은 일본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 ‘왕’이라는 지주가 귀족에게 땅을 나눠주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 농민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강점기 조선에 동양척식주식회사1)가 들어오면서 토지 강탈을 시작한 거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친일파에게 땅을 넘기면 일제와 결탁한 지주들은 소작농을 약탈했다. 땅을 빌려줬다가 농사가 잘되면 내쫓는 식으로.

1) 동양척식주식회사: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

그때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하던 짓이 흑사병처럼 퍼져서 전 국민에 계승된 거다. 70년대 복부인들은 무식하게 사들인 땅을 비싸게 팔아서 돈을 챙겼다. 그들더러 ‘나쁜 X’라고 욕하면서 은근히 그 손가락질이 나에게도 돌아오길 바라는 거다. 국가에서는 그 심리를 이용해 국민에게 돈을 마구 꿔주기 시작했다. 대출 상한선을 올리고 이자율을 떨어뜨리면 누구나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 아파트가 1억도 안 하던 시절 어머니 세대에게 ‘사라, 지원해주겠다’ 한 거다.

땅값이 5천 배 올랐다고 해도 놀랄 일인데, 과거 영동 신시가지 가격은 70년대에 비해 얼마나 뛰었을 것 같은가? 50만 배다. 그 50만 배의 차익은 먼저 깃발 꽂은 사람이 가져갔을 거고, 후대로 올수록 깃발 꽂을 자리는 부족해지는 형국이다. ‘수건돌리기’ 게임이 시작된 거다. 맨 마지막에 수건 잡은 사람 손에서 폭탄이 터지니까 막판에 수건을 빨리 돌리는 것처럼, 부동산의 가치라는 폭탄이 커지면서 우리 세대로 넘겨지고 있었다. 지금은 주택을 사도 조금의 차익밖에 없으니 근린상가와 주택근린상가에 돈이 몰린다. 현재로썬 상가가 수익 면에서 안전하고, 소유권도 강력하게 보장되니까. 하지만 이제는 투자 가치와 매출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상가에서도 수건돌리기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투기가 쓴 재테크라는 가면

Jungle : 최근 강제집행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외국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제도인가?

김: 있는데 방식이 전혀 다르다. 강제집행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땅은 사적 재산이다. 건물주가 흔히 사적 재산을 근거로 항의하지 않나. 왜 임차인 보호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려고 하느냐고, 임대료 상승률을 제한하는 법도 사적 재산 침해라는 거다. 그 논리에 따르면 강제집행도 임차인과 임대인이 사적으로 협의할 일이다. 법원에서 집행 승인을 받아서 현장에 집행관을 출동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흔히 ‘재테크’라고 부르는 부동산업은 투자 아니다. 투기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공유 가치를 추구하느냐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느냐에 있다. 내가 평생 살 곳으로서가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아파트를 산다면 투기다. 결국은 ‘돈 놓고 돈 먹기’다. 투기의 공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재테크라는 미명을 쓰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라고 하지, 왜 굳이 재테크라고 부르나. 사람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나쁜 것,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싸이 얘기를 들으면 싸이 편을 든다. 나도 복부인이 되고, 건물주가 되고 싶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공유의 가치를 추구하니 말이 안 되는 거다.
추억, 하지 마라

Jungle : 애초에 예술가들이 왜 홍대에 모이게 됐을까?

김: 1920년대에도 다방문화가 있었다. 시인 이상이 ‘제비다방’을 했던 것처럼 예술가라면 유토피아를 꿈꾸게 마련이다. 일반인들과는 대화가 잘 안 되니 아티스트끼리 커뮤니티를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다. 악평이든 호평이든 그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담론이 형성된다. 두 마리 물고기가 얘기하다 보니 연못이 생기고, 그 연못이 재미있으면 다른 물고기들이 들어오고, 그렇게 모이다 보면 오아시스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꿈을 꾸는 거다. 예술가는 이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실현하려고 사는 사람들이다.

홍대의 문화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예전에 존재했던 공간에 대한 감상은 이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추억은 〈응답하라〉 같은 TV 드라마 시리즈에서나 해라. ‘약탈’의 자본주의 현실은 그렇게 한가롭지 않다.’ 한국 상가법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메시지다. 매절 계약을 해 놓고 ‘내가 500만 원 줬으니 나머지는 우리가 다 먹을게’ 하는 것, 백희나 작가 경우처럼 일이 커지면 ‘네가 계약서를 잘못 썼잖아, 그때 그렇게 쓰지 말았어야지’ 하는 것. 일제가 우리를 침략하고 약탈한 바로 그 방식이다. 일제도 불법적 행동은 안 했다. 법 만들어서 법대로 했지.
공유, 하지 마라

Jungle : 예술가들의 유토피아 실현은 불가능한 꿈일까.

김: 한 번 거꾸로 얘기해 보자. 상가 임차인은 법적으로 5년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는데, 이건 5년 하고 나가라는 얘기다. 문화가 한 지역에 고착되려면 수십 년이 걸리는데 고작 5년 있을 거면 그 자리서 왜 문화를 만드나. 예술가들은 네트워크 만들어서 뭘 좀 같이 해보자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함께 하면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임대료가 높아지니까.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경우 건물주가 바뀌면서 이 사달이 났다. 원래 주인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건물주가 일본 사람이라 일본식 법을 따르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건물이 붕괴의 위험에 도달하지 않고는 임차인을 내쫓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걸 한 법인 회사가 거쳐 갔다가 40억이 된 자리를 싸이가 70억 주고 샀다. 그 옆을 장동건이 샀고 그 앞을 삼성이 샀으니까, 수요∙공급 법칙과는 상관없이 그 자리를 사려고 산 거다. 덕분에 임대료가 비현실적으로 올라갔다. 지금 해당 건물 매매가가 100억 정도 된다는데, 100억이면 이자율 3%로 가늠해도 한 달 월세가 2천 800만 원이다. 도덕적으로 장사해서는 그 평수에서 그 돈 못 만든다. 하지만 애초에 건물주가 바뀌는 건 소유권자 마음이다. 그렇게 임차인의 운명은 소유권자의 운명에 달리게 된다.

공유를 외치는 예술가들은 이 구조가 잘못됐다 느낀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행위하고, 소통하고, 표현하고 있는데 왜 이곳이 한 사람만의 땅인가 싶을 거다. 소유권자가 봉건국가 수준의 권력을 가진 법 수준에서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나라 법망 내에서는 임대인이 잘못한 일 없다. 임대인들은 예술가에게 네가 좋아서 한 거 아니냐고, 그 책임을 왜 나한테 묻느냐고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서 형성된 ‘임대료’라는 지표를 맞출 수 없다면 나가라고 한다. 억울하면 당신도 땅을 사라고 한다. 이게 자본주의다.

상황이 이런데 예술가가 굳이 홍대에 있을 이유가 뭐냐는 거다. 테이크아웃드로잉도 잘못이다. 왜 자기 소유 땅도 아닌 곳에서 공유를 해서 문제를 만드는가? 예술가들은 뿔뿔이 흩어져라. 작업실도 혼자 쓰고, 도서 산간으로 가든가 다른 나라로 가라. 예술가를 공유의 메신저 삼아 지원해주는 제도들도 다 폐지되어야 한다. 우리 법이 ‘공유하지 마라’, ‘함께 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멋, 내지 마라

Jungle : 현 상태에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 같다.

김: 자본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다. 이런 세상에서 유토피아는 비현실적인 꿈이다. 고 백남준 선생이 “돈이 나를 통과한다”고 하지 않았나.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에게 돈 벌어다 주고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돈을 통과시키는 존재다. 최근에는 국가에서 예술가를 콘텐츠로 인식하고 지자체 도시계획 단계에서 그 가치를 계산하는데 무서운 일이다. 초기에 임대료를 낮춰서 예술가들을 살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예술가 마을이 사람을 끌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팔자는 거다. 대표적인 예가 도시재생사업이다.

개인적으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계획하는 마을 사업에 대해서도 좀 회의적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아무래도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젠트리’들이 마을을 디자인하는지라 너무 뽐을 내서 문제다. 외국의 상태를 보고 교육 받은 사람들, 적은 돈으로 예쁘게 꾸밀 줄 알고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젠틀 계급’들이 멋을 부리기 시작하면 소유권자가 아닌 이상 반드시 쫓겨난다. 본인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프랑스에서 배우고 온 치들이 살롱 문화를 파생시켰던 1920년대와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다만 자본이 거처할 거점이 줄었기 때문에 그 경험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을 뿐이다. 사실 소유권자도 속으로는 임차인이 잘되기를 바라고 자기 자리에서 예술 활동 한다고 하면 더 좋아한다. 뭔가가 유명해지면 그 자리를 독식하려고. 결국, 예술가들이 땅값을 올려주는 ‘젠트리파이어(Gentrifier)’ 역할을 하는 거다.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 내에서 이런 현상을 예방하려면 디자인을 좀 겸손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동네 분위기에 맞춰서 눈에 안 띄게 자리 잡고, 숨어서 1~2년 두고 보다가 좀 더 보여주는 소양도 필요하고 생각한다. 서촌이나 북촌도 인테리어를 너무 멋지게 했다. 디자이너가 능력을 발휘해서 최신 트렌드를 선보이는 것은 선의의 행동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생각해볼 때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불공정에 대처하는 자세

Jungle : 예술계 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 테이크아웃드로잉 뿐이다. 사실 예술계가 전부 일어나야 할 만큼 오랫동안 당해왔는데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알만한 갤러리도 여러 군데 만나봤지만, 움직이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예술의 가치가 지대에 복무했을 때 벌어지는 아이러니와 불합리를 짚어나가고 있는 유일한 예술 집단이다. ‘맘상모’와 결이 달라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다. ‘맘상모’가 전통적이고 나이브한 투쟁방식을 취한다면,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전시나 포럼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고 개념을 이식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신선함이 그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Jungle : 불합리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안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김: 아직 살만해서 그렇다. 가족 부양이나 기타 의무도 없고, 돈을 못 벌어도 한 달 30만 원으로도 살 만하니까. 괜찮다. 시사성만 남기고 떠나는 게 예술가일 수도 있다. 그 굼뜬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겠나. 일어나는 시간도 다 다른데.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SNS로 얘기 좀 하고 누가 ‘좋아요’ 눌러주면 기분 좋은 정도지.

한편에선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비난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당신들 정도면 살 만한데 굳이 도움이 필요하냐면서, 커피 팔려고 갤러리 하던 곳 아니냐면서, 너희 예전에 나한테 서운하게 한 적이 있다면서. 다 누워서 침 뱉기다.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떨어지는데 누구는 이래서 도와줄 수 없다고 재단하고 있는 거다. 불순하다. 그 안에서 편 가르기를 할 바에야 안 돕는 게 낫다.

내 작업하기에도 바쁜데 그걸 어떻게 돕느냐 싶으면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다. 굳이 투쟁에 끼어들어 똥물 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이크 들어야 하고 소리 질러야 하고, 시각적으로 예쁘지도 않은데. 솔직히 고백하면 내게도 아직 그런 기질이 남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예술가들은 계속 도망자가 돼라. 플라톤이 얘기한 ‘이데아의 침대’를 베껴내는 일만 하는 대신 억울함은 입 밖에 내지 마라. 예술가여, 심미적으로 쫓겨나라. 디자이너여, 멋있게 쫓겨나라. 쫓겨나 주는 것이 당신들이 만들고 있는 운명이다. 사회에 한마디도 하지 아니하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당신이 쫓겨날 때 역시 누군가가 당신을 관람하고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젠트리파이어가 돼서 손가락질을 좀 당해 봐야 한다. 어차피 당신들이 피해자는 아닐 지어다. 지은 죄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거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Jungle : ‘젠트리파이어’라 하면 예술가가 기존 상인을 쫓아내고, 자본가가 예술가를 다시 쫓아내는 구도로 볼 수 있을까.

김: 그렇다. 어떤 예술가가 수를 써서 월세를 좀 더 얹어주는 순간 정육점, 구멍가게, 최초의 상권이 다 쫓겨난다. 예술가는 자신이 찌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영세한 상인들을 찌르겠지만, 그 뒤에는 재벌 3세들이 하는 프랜차이즈가 칼 들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예술가들은 다시 칼 들고 다른 곳 찾아가는 거다. 먹이사슬이다.

Jungle : 보통 예술가들은 낙후된 지역을 우리가 좋게 만들었고 생각하지 않나.

김: 예술가가 뭔데 지역을 좋게 만들고 말고 하나? 그들도 형편이 안 돼서 낙후된 곳에 들어간 거고, 들어간 김에 의미를 붙였을 뿐이다. 지역 주민이 된 김에 대표적인 목소리를 내는 척하지만, 제도의 불합리성에 맞서 실질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가? 노동운동 단체 엠블럼 정도 만들어주고 뭐라도 하는 양 느낀다면 사치다. 그러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비난하는 것은 이중성이고.
자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Jungle : 상수동은 그래도 합정동이나 서교동보다 좀 낫지 않나.

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상수도 유동인구가 적고 매출도 높지 않은 데 비해 임대료 올라가는 속도는 엄청나다. 기획 부동산인 OOO공인중개사사무소가 들어와서 ‘낚시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임대료 백만 원짜리 자리에 이백만 원을 던져 놓고 급한 사람이 잡게 하는 거다. 그럼 그 옆집도 임대료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으로 올린다. 이런 방식으로 경쟁 구도를 만든다. 이 낚시질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 건물주도 피해를 보게 될 텐데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다.

Jungle : 홍대 부근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김: 서교동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연남동과 당인리로 갈렸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자본이 밀려들고 있는 연남동은 임대료 상승이 더 빠르다. 당인리의 경우 핵폭탄이 터지기 직전이라 하겠다. 2019년 당인리발전소가 공원화되고 거대 부지에 시설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아직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나중에는 당인리 작가들이 신수동이나 이대 앞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유령 도시가 돼버렸던 이대 앞에는 벌써 공간들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대 같은 경우 임대차 협의체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Jungle : 이대의 경우 좋았던 상권이 죽은 케이스다. 최근에는 강남 로데오거리도 심각하다고 들었다. 홍대도 이 속도로 지대가 오르다 보면 이대나 로데오거리처럼 되진 않을까.

김: 행정 실수가 낳은 대표적인 계획 거리가 로데오거리다. 문래동 로데오거리, 목동 로데오거리, 강남 로데오거리, 다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이 공과를 가져가려다 보니 5년 앞조차 보지 못한 거다. 주변 상권은 무시하고 브랜드면 된다는 생각으로 옷 가게를 유치하다 망해버린 케이스다.

홍대는 명동처럼 될 거다. ‘홍대스럽던’ 사람들은 연남동으로 떠났고, 거리는 프랜차이즈로 가득 찼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20평에 이백만 원 하던 걸 10평당 이백만 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게들이 쪼개진다. 그 10평짜리에 옷 가게를 열고, 자릿값이 오백으로 오르면 면적당 효율이 더 높은 화장품 가게가 들어선다. 음식점도 안 된다. 고객이 매장에 머무르면 안 되고 한 사람당 최소 오천 원에서 만 원은 받아야 하니, 요만한 먹거리 하나 사고 바로 가게 밖으로 나가게 해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화장품, 신발, 옷 가게로 획일화되는 거다. 그게 명동이다.
‘그문화’ 9년, 일러스트레이터가 상가법을 바꾸기까지

Jungle : 상가법 개정 과정은 어땠나.

김: 2013년 아무도 발의를 안 해주던 걸 민주당의 장하나 의원이 도와줬다. 당시 상황 자체는 통과를 안 시키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남양유업 ‘갑을’ 논란으로 시끄럽기도 했고, 일부러 리쌍 건물 세입자 이슈를 터뜨렸던 것도 있다. 나는 회사 경영 경험도 있고 마케팅 지식이 좀 있는 사람이라 일부러 메이킹을 한 셈인데 완전히 난리가 났다. 그때 가장 불합리한 악법 중 하나인 재건축 사전고지 관련 예외조항을 ‘맘상모’가 나서서 고쳤다.

그리고 올해 5월 13일 좀 더 바뀌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같은 경우인데, 환산보증금2)이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임차인은 임대인이 교체될 경우 대항력을 발휘할 권리가 없었다. 건물주가 바뀌면 계약도 파기되는 거다. 그걸 조건과 관계없이 모두가 대항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바꾸고, 권리금도 법제화시켰다. 그 외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임대인이 별다른 사유 없이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없는 5년의 보호 기간을 무기한은 아니더라도 10년까지는 늘려보려 한다.

2) 환산보증금: 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을 합한 금액이다. 보증금+(월세×100)으로 계산하면 환산보증금이 산출된다.

Jungle : 소수로 시작한 ‘맘상모’가 이렇게 큰 조직이 됐다.

김: 카톡방에만 120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와 있다. ‘맘상모’ 카페는 회원을 걸러 받아서 가입자가 1천 500명, 그중 실제로 회비를 내는 정회원은 600명가량 된다. 아직 덜 알려졌고 지부를 낸 것도 아닌데 시민 단체 중에서도 큰 규모에 속한다. 강제집행이 있겠다 싶으면 대기조를 짜서 10분 만에 15명, 30분 이내에 40명은 현장에 보낼 수 있다. 이렇게 인원이 모이면 강제집행이 이뤄지기 힘들다. 사람이 다치고 연행되면 경찰서 앞에 중대가 모이고, 한두 군데만 연락해도 기자 이삼십 명이 나오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거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주요 인물에게 정보과 형사가 붙는다. 나한테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안부 전화가 온다.

Jungle : ‘그문화’는 꾸려나갈 만한지.

김: 주로 카페 수익이다. 좀만 더 벌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약간씩 모자라다. 마이너스와 흑자를 합치면 거의 본전이다. 그래도 살롱으로서 ‘그문화’에는 ‘엠큐피엠’만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여러 가지가 있어서 계속 유지하고 싶다. 갤러리 전시의 경우 ‘맘상모’ 활동이랑 병행할 여력이 안 돼서 1년째 쉬고 있는데, 내년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맘상모’ 활동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맘상모’는 당장 내일이라도 강제집행이 들어올 수 있는 곳들이 실려 오는 응급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몇 군데에서 일이 터졌는지도 모르겠다. 강력계 형사처럼 늘 긴장 상태에 있다(웃음).

Jungle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맘상모’를 놓기가 어렵겠다.

김: 먹고 살려면 놓을 수 있다(웃음). 내가 가장 오래 해온 일이 일러스트다. 네트워크가 있으니 일을 받으려면 받겠지만, 아무리 쉬운 그림이라도 일러스트는 너무 힘들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다시 해보자는 생각이 든다.

임대차 문제에는 소유권보다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해보려 준비 중이다. 사실 임차인과 임대인의 소유권 분쟁으로 비치기 시작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공감하기가 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자신이 찾는 공간도 일종의 공유 재산일 수 있는 거다. 공동 재산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소비자 권리를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보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는 자영업자에게 필요한 법률 지식을 사례 중심으로 풀어쓴 공저 〈골목사장 생존법〉을 선물로 건네며 빈 페이지에 “백년가게 백년손님을 꿈꾸며”라고 적었다. 책을 선물할 때마다 같은 메시지를 적어주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이야말로 정말로 본인이 소망하는 바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골목사장 생존법〉이 발간된 지 두 달 만인 올해 5월 상가법이 개정되는 바람에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바빠 죽겠는데 자꾸 고쳐야 해서 귀찮다”라며 웃지만, 그 귀찮은 일이 좀 더 많이 생기길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는 그일 테다.

그사이 또 하나의 커다란 진통이 홍대 앞을 할퀴고 지나갔다. 철거 위기에 놓인 ‘삼통치킨’과 임대인의 분쟁이었다. ‘삼통치킨’의 갈등은 불법 용역 동원, 폭력적 강제집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고조되더니 지난주에는 기어이 용역들이 철문을 용접하고 건물 전기를 끊어가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듯했다. 다행히도 일요일에는 건물주와 임차인의 극적인 협상 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새민주정치연합 우원식 의원과 정청래 의원이 중재에 나선 덕도 컸다. 그러나 가까스로 값진 성과를 이뤄낸 ‘삼통치킨’의 싸움 후에도 홍대에는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을 것만 같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늪에 빠진 이들의 길고 힘겨운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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