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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곡창고가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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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사용의 근본적인 목적은 ‘소통’과 ‘기록’일 것이다. 그리고 문자에 ‘진심’과 ‘진실’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이해와 사실을 바탕으로 진정한 소통과 올바른 역사가 쓰여질 수 있다. 과거, 문자의 영역은 바로 이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문자는 기본 범주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우리가 논할 한글도 이러한 추세에 새로운 힘을 받고 있다.

한글을 사용해 문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주고받는 활용성은 의상, 건축, 예술 등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접근, 즉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시도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물을 낯설게 바라볼 때, 우리는 문제해결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기술과 외형, 제품과 소비자, 기업과 사회, 사회와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디자인은 이해와 결합을 기초로 한다.

한글 역시 결합의 문자다. 자음과 모음이 모이고 의미가 담겨 전해지는 것 역시 이해와 결합이다. 따라서 매거진정글은 ‘한글, 낯설게 보기’라는 주제를 통해 그 동안 일상적으로 바라 보았던 한글에 담긴 새로운 매력과 시선을 담아보고자 한다.


기획 및 취재 ㅣ 매거진정글 편집부
디자인 ㅣ 임애라
제1회 한글 감성, 어디까지 느껴봤니 (9/21/2015)
제2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한글 그리고 건축 (9/30/2015)
제3회 이방인의 시선으로 만나는 한글 (10/7/2015)
제4회 한글 일상 파헤치기 (10/19/2015)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다.”

그렇다기에 그런 줄로 알았다. 발음기관을 본뜬 형태로 누구나 배우기 쉽고, 음절 단위의 모아쓰기를 적용해 경제적이며, 거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라는 말은 초·중·고등 국어 교육 과정을 거치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고작 천만 언중을 위해 오롯한 문자 체계를 창안하다니! 신통방통한 역사 덕분에 민족 고유의 문자에 대한 자부심은 한국 정서에 한 줄기 공유감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글은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문자일까? 숨 쉬는 공기만큼이나 생활에 밀착된 모어(母語)의 완벽성을 우리 스스로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 이 사고방식도 주입교육의 소산으로 탄생한 ‘한글 지상주의’는 아닐까? 한글 낯설게 하기, 한글에 대한 불온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해 보자.

에디터 | 나태양(tyna@jungle.co.kr)

한글의 우수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늘 거론되는 근거들에 관해서라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과장이다. 일단 한글은 ‘많은’ 소리를 표현할 뿐, ‘모든’ 소리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중세 국어 존재했던 음가들, 순경음(ㅸ, ㆄ)과 반치음(ㅿ), 아래아(ㆍ) 등이 탈락한 현대에 와서는 더욱 그렇다. 각 언어는 저만의 음성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출내기 국어학도를 좌절시키곤 하는 음성학과 음운론은 소리의 ‘신세계’를 열어젖힌다. 국제 표준 음성 기호를 참고하면 한글 음운 체계상 유성음과 무성음이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무성 양순파열음 [p]와 유성 양순파열음 [b]을 같은 /ㅂ/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발화하는 ‘바보’는 국제 음성 기호로 /pabo/라고 표기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앞 음절의 비읍과 뒤 음절의 비읍은 영어권 화자에게 명백히 다른 소리로 인식된다. 연구개파열음 [k]와 [g]의 경우도 마찬가지(가구/kagu/, 감기/kamgi/ 등). 결국 ‘뷁’이나 ‘뚫훍’ 같은 음절 조합의 탄력성과 한글의 음성 표현 가능성은 전혀 층위의 이야기인 셈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글자는 없다. 글자는 ‘말하기’를 토대로 고안되고, 우리가 말하는 내용과 형식은 ‘쓰기’에 의해 더욱 풍부해진다. 이처럼 글의 바탕인 말인바, 한글이 익히기 쉬운 글자일지언정 한국어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언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조사의 미묘한 뉘앙스, 6단계의 존경법, 정교한 문법 체계에 교정자들조차 골머리를 썩는 띄어쓰기 규칙과 외래어표기법까지 마스터하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인생의 도전. 발음기관을 상형한 자모 형태가 직관적이라고는 하나, 실제 발화 상황에서 글자와 소리가 1:1로 대응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필자의 지인 가운데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한 영어권 화자는 한국인이 발음하는 ‘물’과 ‘불’이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교정해주기 전까지 백 번이면 백 번 신라면을 ‘shimramyun’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한글이 하찮은 문자라는 주장이 아니다. 한글은 위대한 언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다른 문자들도 저마다 사랑스럽다. 유·무성음 구별이 없는 음운 시스템은 한글의 맹점이 될 수 없다. 한글은 한국어 실정에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고안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맥도날드’를 ‘마그도나르도’라고 표기하는 난센스는 히라가나나 가타카나의 품질이 떨어지는 탓일까? 애초에 일본어의 음성 인식 체계에는 그 같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문맹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중국인은 표의문자로서의 한문이 품은 고도의 상징성과 조형성에 긍지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어권 화자에게 가장 쉬운 글자는 여전히 로마자(라틴 알파벳)일 테다. 언어 학습에 있어 사용자가 노출된 문자 환경, 그리고 그에 의해 형성되는 친숙함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극단적 상대주의로 흐를 일은 아니지만, 때로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고 싶다. 한국인이 보는 한글이 아닌, 모국어의 바운더리 밖에 사는 이방인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세계화 시대라고들 하지 않는가! 한글도 더는 우리만의 글자가 아닌바, 디자인 작업에 한글을 활용해본 경험이 있는 해외 디자이너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글은 어떤 문자일까? 해외 디자이너에게도 한글은 조형적으로 훌륭한 소스일까? 대만, 말레이시아, 미국, 영국, 멕시코 등 아시아와 서양권에 분포된 여섯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직접 들어 보자.
한글, ‘블록’이 만드는 독특한 타이포그래픽적 무게

씬 인 로
(Hsin Yin Low, be.net/hsinish)
말레이시아 출신 디자이너. 4년간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타입 디자인 등의 경력을 쌓고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현재 타이베이에서 순수 미술 석사(MFA) 과정을 밟고 있다.

Jungle :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는데.

씬 인 로(이하 로): 한예종에는 나의 모교 말레이시아 예술 대학에서 주관한 ‘아시아 예술 전공 장학(Art Major Asian Scholarship)’ 문화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입학했다. 타입 디자인이라는 전문 영역을 처음 접한 곳도 한예종이었다. 이용제 교수의 강의에서 한글 타입의 기초를 배웠는데, ‘나눌체’는 ‘한글 타입페이스의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탐구해보라’는 학기 말 과제로 작업한 프로젝트다.

Jungle : 디자인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인가? 해당 언어와 한글의 차이점이 있다면?

: 로마자. 영어뿐만 아니라 말레이어(Bahasa Malay)에서도 로마자를 사용한다. 한글을 처음 맞닥뜨렸을 땐 그 구조적 형태에 매료됐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로마자는 대시 기호(-)처럼 보이는데, 한글은 회색 조의 블록을 형성한다. 로자마의 선형적인 구조에 비해 한글의 음절은 그림문자적 형태의 블록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글자의 블록은 상반된 그레이 값을 가진다. 예를 들면, ‘홝’은 ‘이’에 비해 시각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이런 요소들로 인해 한글 텍스트는 로마자와는 상이한 리듬을 형성한다. 서로 다른 타이포그래픽적 무게를 지닌 셈이다.

읽기의 경험 역시 무척 다르다. 로마자와는 달리 한글은 세로쓰기해 상하로 읽게 해도 가독성에 문제가 없다. 또한, 로마자에서는 이탤릭체를 ‘강조’의 그래픽적 신호로 사용하는 반면, 한글 조판에서는 인위적으로 기울인 이탤릭체를 보게 된다.
Jungle : ‘나눌체’를 디자인하면서 거친 프로세스는 어땠나? 난관이 있었다면.

: 버내큘러(Vernacular) 스텐실 레터링이 한국 거리에서 그토록 흔히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스텐실 한글 타입페이스는 드물다는 사실이 동기가 됐다. 이로부터 레트로 레터링 방법론을 디지털 타입페이스로 재해석해보자는 접근이 나왔다. 그 기저에는 새로운 인쇄 기술을 이용하면 스텐실 레터링도 복제 가능한 실용적 타입페이스로 만들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눌체’를 제작하면서 가독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디를 ‘나누는가’였다. 예를 들면, ‘나눌체’에는 ‘ㅁ’과 ‘ㅂ’처럼 비슷한 자음을 쉽게 분간할 수 있도록 글자마다 고유의 절단선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 절단선은 자칫 잘못 사용하면 기존 글자의 성질을 완전히 해치게 될 것이었다. ‘나눌체’라는 이름은 이 같은 나눔(divide)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한 세트의 한글 타입페이스를 완성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글자를 그려내야 했다는 점 역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스텐실 타입페이스의 확장 가능성을 본 이용제 교수가 당시 감독하던 스튜디오 ‘활자공간’에 2달간 수습으로 합류할 기회를 줬다. 덕분에 선배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기술적 제약을 해결하고, 나눌체를 온전한 폰트로 완성할 수 있었다.
Jungle : 디자이너로서 향후 계획이 있다면? 디자인에 한글을 다시 써볼 계획이 있나?

: 스스로 아직은 성숙한 타입페이스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연구와 탐구를 지속해갈 예정이다. 최근에는 서양 캘리그라피를 독학하면서 글자 형태가 역사적, 지역적, 기술적 조건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펜을 잡은 각도, 힘, 속도, 움직임은 물론이고, 도구 자체도 글자 형태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서양 캘리그라피 도구를 이용해 한글을 써보고 있는데,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다. 한글은 내가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얻은 가장 가치 있는 문화적 지식이다. 이후에도 디자인 작업에서 한글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한글, 타입 디자인에 대한 단순하지만 새로운 접근

조 버크
(Joe Burke, behance.net/joeburkecreative)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지난해 샐퍼드 대학(Salford University)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학사 과정을 졸업한 후 소규모 스튜디오, 스타트 업, 인하우스 디자인 팀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런던의 Six:Thirty Studio에서 인턴 디자이너로 재직 중이다.

Jungle : ‘바우리안(Baurean)체’를 작업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 버크(이하 버크): ‘바우리안’ 타입페이스는 내가 처음으로 한글을 적용한 작업이다. 나는 언제나 비-로마계 언어에 관심이 있었다. 전 세계에 이토록 다양한 스타일의 글자가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공동의 의미에 임의로 소리를 덧붙였고, 언어는 모양(형태)의 집합일 뿐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러시아어나 아랍어보다도 한글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여자친구가 한국인이라 디자인 프로세스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본래 한국 영화나 한국 음식 등을 즐기는 탓도 있었다.

Jungle : 본인에게 가장 편한 언어와 한글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면?

버크: 대부분의 영국인이 외국어 습득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95% 이상의 디자인 작업에 영어를 사용한다. 영어와 한글의 차이점은 대단히 크다. 블록을 조합한 형태의 단어와 문장은 타입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 하지만 만다린이나 일본어과 비교하면 한글은 나 같은 초심자도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때로는 한글이 로마자보다 더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Jungle : 볼프강 슈미텔의 ‘브라운(Braun)체’에서 ‘바우리안체’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바우리안체’를 디자인하며 거친 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해 달라.

버크: 한글의 형태에 익숙해지고, 읽는 방식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정보 조사에서 출발했다. 비-한국어 사용자의 첫 한글 디자인이니만큼 초기 조사 단계에서 알게 된 거의 모든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다. 형태와 자간 실험뿐만 아니라, 철자를 제대로 쓰는 연습을 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를 통해 비슷한 골조의 자음 각각을 독특하게 드러낼 방법을 찾고자 했다.

블록 기반의 타입 페이스라는 아이디어는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에 개념적인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미스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채택하고자 ‘브라운체’를 참고한 것이다. 사각형과 곡선, 두 가지 블록 형태만을 활용해 디자인된 ‘브라운체’는 ‘직지’의 초기 인쇄물적 감각을 환기하기에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볼프강 슈미텔의 사려 깊은 미니멀리즘이 내 작업 전반에 큰 영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브라운(Braun)’과 ‘코리안(Korean)’을 합성해 ‘바우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 스타일에 정착한 뒤의 과정은 제법 수월했다. 글자 배치 등과 관련해 아무런 이슈가 없었던 이유는 한글의 단순성 덕분이었을까. 미세한 실수를 잡아내기엔 내 식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는지도!
Jungle : 향후 디자이너로서 계획이 있다면.

버크: 다양한 문화들을 경험하면서 전 세계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 한글을 공부하고 있는 만큼, 한글 활용은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가 되리라 본다. 한국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한글에 대해 배우고, 나 또한 그들과 영어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지점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커리어에 관해서라면 개인 스튜디오를 여는 것(누가 아니겠는가?). 단순히 클라이언트에게 수익을 내는 디자인이 아닌, 사회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한글, 독자를 책 속 세계로 초대하는 시각적 경험의 안내자

왕즈홍
(Wang Zhi Hong, wangzhihong.com)
1975년 대만 타이베이 출생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1998년부터 디자인 작업을 해왔으며, 그중에서도 에디토리얼 디자인 작업의 비중이 상당하다. 시판 출판자와 협력하여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아라키 노부요시(Nobuyoshi Araki), 나키히라 타쿠마(Takuma Nakahira) 등 일본 아티스트의 도서 출간 프로젝트에 관여하기도 했다. 제6회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황금나비상 금상, 홍콩 HKDA 글로벌 어워드 카사이 카오루(Kaoru Kasai) 평가심사상과 은상, 파주북어워드 2014 출판미술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TDC(Tokyo Type Directors Club)에서 여러 번 입상했다.

Jungle :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들을 조합하는 감각이 눈에 띈다.

왕즈홍(이하 왕): 책의 내용과 함께 본토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의도적으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문자는 단순한 독서의 매개체를 넘어 해당 언어가 출발한 지역의 소리, 환경, 분위기가 담긴 매체다. 설사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글자가 지닌 시각적인 경험 자체만으로 독자를 책 속 세계에 더 쉬이 진입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
Jungle : 다양한 국적의 글자를 배치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 각국 언어의 조화를 통해 언급했던 ‘독서의 효과’를 끌어내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 멀티-랭귀지적 조합은 출판사가 제안하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찾아내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Jungle : 중국어 사용자로서 보기에 한글의 인상은 어떤가? 한글을 사용할 때 산세리프보다 세리프를 선호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한국어의 경우 사용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느낌상으로는 중국어와 일본어의 중간쯤이랄까. 세리프 한글 폰트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내 개인적인 성향 혹은 취향이라 하겠는데, 어찌 보면 편견일 지도 모르겠다. 내게 산세리프는 한글뿐만 아니라 한자 디자인을 하는 경우에도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고 산세리프에 도전해보고 싶다.
Jungle : 작업에서 북한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띈다. 북한에 특별히 국가적인 관심이 있는지.

: 아마 내가 대만에서 가장 북한 관련 서적을 많이 작업한 디자이너일 것이다. 특별히 북한의 정치나 기타 상황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대략 5권의 관련 서적을 디자인했다. 첫 시작은 〈세상에 부럼 없어라(Nothing to Envy: Ordinary Lives in North Korea)〉였다. 이 작업은 내가 처음으로 한국어를 활용한 디자인이기도 했는데, 대만에서 상당히 높은 판매율을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를 기점으로 북한 관련 서적 디자인 제의가 끊임없이 들어왔으니 아마 이(판매율)게 이유인 듯하다. 바이어들은 내가 이런 유형의 서적에 굉장히 능하다고 생각하는 모양.
한글, 논리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모던함

켈빈 코트케
(Kelvin Kottke, www.kelvinkottke.com)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최근 칼리지(college)를 졸업하고 허쉬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Jungle : ‘인천!’ 타입페이스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설명해 달라.

켈빈 코트케(이하 코트케): 이전에도 한글을 자주 접했지만, 읽을 줄은 몰랐다. ‘인천!’의 디자인 영감은 지난여름 서울 방문을 방문하면서 얻게 됐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은 나 같은 서양 여행객들이 처음으로 한글의 인사를 받게 되는 장소다. 그런 상징적 의미에서 ‘인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귀국 후 바로 ‘인천!’ 작업에 돌입했는데, ‘인천!’의 초기 디자인은 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에 얇은 스트로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한글의 복잡성과 뉘앙스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배포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몇 가지 수정을 가했다. 한글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엣지에 미묘한 커브를 첨가했고, 각 글자는 자립적이기보다 다른 글자들과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디자인에는 서울의 사이니지와 몇몇 한글 산세리프 폰트를 참고했다.
Jungle :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개인적으로 편하게 느끼는 언어는 무엇인가? 한글과 해당 언어를 비교한다면.

코트케: 아무래도 영어가 편하다. 영어는 많은 타 언어의 요소들을 흡수하며 진화해 왔고, 심지어 로마자 자체도 고대 그리스어에서 빌려온 글자다. 반면 한글은 디자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 의해 대체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해 왔다. 그 역사를 볼 때 상대적으로 ‘영’한 언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한글에 논리적이고, 실용적이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모던함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Jungle : 앞으로도 한글을 디자인 작업에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

코트케: ‘인천!’에 새로운 굵기를 추가해 타입페이스를 확장해볼까 생각 중이다. 개인적으로 외국 타이포그래피에 도전하고, 연구를 통해 지식을 얻는 일련의 과정들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인천!’이 한글을 사용한 마지막 디자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한글, 영리한 미학과 스토리

사만다 존스
(Samantha Jones, www.sjdesignco.com)
워싱턴 D.C.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셰퍼드(Shepherd)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 경영을 공부하기도 했다. 펜실베니아의 웍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브랜딩, 인쇄 및 콘셉트 디자인 경력을 쌓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Jungle : ‘가자 컴퍼니(KAJA co.)’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사만다 존스(이하 존스): ‘가자 컴퍼니’는 한국 여행 플랫폼을 제공하는 여행사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로, 학사 졸업 과제를 위해 제작했다. 특별히 여행사 아이덴티티를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콘셉트 개발, 브랜딩, 웹 레이아웃, 편집 인쇄 등 다양한 스킬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행 물품이나 패키지 상품뿐만 아니라 여행자 커뮤니티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제안했다. 초보자 키트는 포스터, 티셔츠, 수하물 태그, 포켓 노트북, 한국 여행안내 책자 〈왕복(Roundtrip)〉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외에도 문규류, 명함, 오피셜 웹사이트 등을 포함한다. 5개월에 걸친 한국 여행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기본적으로는 창의적이고, 명랑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젊은 여행자들을 유도하고자 했다. 시간적, 금전적, 심리적 문제로 모국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해 보자!(Go for it!)’는 느낌을 주는 ‘가자’라는 이름으로 동기를 부여했다. 로고에는 일본이나 중국에 가려져 간과되곤 하는 한국을 ‘동아시아의 숨겨진 보물’로 표현하기 위해 보석을 삽입하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원형을 활용했다. 빨강과 파랑은 미국적인 동시에 한국 역사에서도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컬러 조합이다. ‘SK 블루’와 ‘SK 레드’라고 이름 붙인 생기 넘치는 컬러를 활용해 현대 미국과 한국의 스타일을 한 데 담고자 했다.
Jungle : 디자인에서 한글을 사용할 때 어떤 측면에 주안점을 뒀나?

존스: 언제나 그렇듯 스토리와 디자인의 균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나는 두터운 세리프(Slab serif)나 매끈한 산세리프(Sleek sanserif) 등 모던하고 깔끔한 서체를 선호하지만, 이 같은 취향이 고대 유물 전시 작업에서는 답이 못 되는 것과도 같다. 언어를 불문하고 모든 타이포그래피는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과 실험의 양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가자 컴퍼니’에서는 독특한 디자인을 위해 현대 한글의 가로쓰기 방식 대신 볼드한 수직적 형태의 레이아웃을 적용해 봤다.

Jungle : 모국어와 한글의 차이점이 있다면?

존스: 한글과 영어는 구조, 형태, 소리, 유전적 요인의 상이함으로 인해 쌍방의 사용자에게 모두 이질적(foreign)으로 느껴질 언어다. 가장 큰 차이는 문법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와는 반대로 한국어에서는 목적어 뒤에 동사가 오지 않나. 또한, 일반적인 수준의 예절을 요구하는 영어와는 달리 한국어에서는 존경법이 고도로 발달했다. 마지막으론 흐름과 리듬이다. 영어에서는 강세를, 한국어에서는 음절을 기준으로 리듬을 형성한다. 하지만 한글 읽기와 쓰기 자체는 로마자보다 훨씬 단순하게 느껴진다.

단순하면서도 영리한 한글의 미학과 스토리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그 형태는 소리가 표현하는 특징과 관계있으며, 대부분 가로선과 세로선으로 구성된다. 완벽하게 창안된 글자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Jungle : 디자이너로서 향후 계획이 있다면 알려 달라.

존스: 최근 인터랙티브 디자인, 패션, 에디토리얼, 포토 저널리즘으로 관심사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꿈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내게 가장 본질적인 분야는 브랜딩이다. 앞으로도 계속 여행과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모험적이고 대담한 성격인 만큼 국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겠다. 나에게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모험하고, 새롭고 놀라운 무언가를 창조할 기회가 생긴다면 기꺼이 잡을 것이다.
한글, 편안함을 탈피한 새로운 아름다움에의 도전

베니스 아벳
(Venise Abed, www.behance.net/venise-abed)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멕시코 출신 프리랜서 디자이너.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광고 디자인을 전공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사진을 공부한 후 프랑스 툴루즈에서 아트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8년간 로고, 브랜딩, 사진, 이벤트 커뮤니케이션 등의 프로젝트를 작업해 온 ‘멀티 태스커’. 1년 전부터는 저널에서 모형 제작자로 근무하고 있다.

Jungle : ‘Le Dispensaire’는 전통 한방 테라피 센터다. 디자인을 담당하게 된 계기는?

베니스 아벳(이하 아벳):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이언트 기욤 드베즈(Guillaume Deveze)를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그는 한방 연구를 마치고 툴루즈에 센터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 경우 한방 테라피 센터 아이덴티티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다. 하지만 디자인은 나에게 편안한 것들로부터 탈피해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에 기꺼이 도전했다.

Jungle : 디자인 작업에서 가장 편한 언어는 무엇인가? 그와 비교해 한글에 받은 인상이 있다면?

아벳: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영어와 프랑스어도 사용하지만 모두 로마자를 사용하는 언어다. 한글은 로마자와 비교하면 좀 덜 편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좀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검색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적이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글자라는 인상을 받았다(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Jungle :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아벳: 한글이나 테라피 센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한국 테라피 센터를 조사했다. 본래 인간 형상을 로고의 주된 이미지로 사용하고자 했는데, 한글 형태를 활용하면 사람들이 더 빨리 특징을 인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순전히 본능에 의존했다. 글자의 의미를 모른다는 사실은 오히려 한글을 더 신선한 관점에서 바라보게끔 했다. 인간의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글자의 다양한 특징을 유희하고, 이미지가 인간으로 보이는 동시에 한글로도 보일 때까지 실험을 반복했다. 그 결과에 실제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연하게도 로고의 모양이 ‘웃다’의 어간이 되는 ‘웃’과 일치하더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Jungle : 디자이너로서 향후 계획이 있다면?

아벳: 프리랜서로 작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한글을 다시 사용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를 통해 내가 다른 언어와 문화를 모험하는 데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고, 이러한 방향이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데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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