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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기기의 연결성은 가상 세계와 실재계의 벽을 허물고 있다. 무엇이 실재고 가상인지가 모호한 시대, 가상과 실재의 이슈는 현 미술계와 디자인 담론에도 팽배하다. 가상의 물질은 소유의 개념을 전복했고, 작가들은 공허한 오늘을 공허의 미디어로 대응하고 있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오늘의 새로운 시각 예술가들은 최적의 형식으로 유의미하게 흘려버릴 수 있도록 제작업의 존재 형식을 재정의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2015-04-09)
오래된 것의 충격(shock of the old)

스마트 기기의 연결성은 가상 세계와 실재계의 벽을 허물고 있다. 무엇이 실재고 가상인지가 모호한 시대, 가상과 실재의 이슈는 현 미술계와 디자인 담론에도 팽배하다. 가상의 물질은 소유의 개념을 전복했고, 작가들은 공허한 오늘을 공허의 미디어로 대응하고 있다. 애써 잡아두기보다 유의미하게 흘려버리려는 움직임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오늘의 새로운 시각 예술가들은 공허로 전화하는 무시간성의 오늘을 과거의 방식으로 포착하기보다, 최적의 형식으로 유의미하게 흘려버릴 수 있도록 제작업 존재 형식을 포스트미디어로 재정의하려 애쓰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에게 현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에디터 ㅣ 박수연 (sypark@jungle.co.kr)


Jungle : 디자인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십니까?

20세기적 의미에서의 디자인은 망했습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사업가로서의 스타 디자이너 시대도 끝났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디자인 전문지에 소개되는 디자이너 가운데 제대로 큰돈 버는 이가 있습디까? 없습니다. 학교와 학과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없다면, 현재 ‘디자인 업계’라고 지칭할만한 것이 유지되고 있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과거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디자인 업계가 있긴 합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세계가 그렇죠. 이것도 극소수 엘리트의 이야기입니다만.
디자인은 기본 태생이 상업적입니다. 독립 디자인 회사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인데 발전을 모색하긴 힘들죠. 이 와중에 지난 십 년간 소규모 스튜디오나 공방이 조명받은 건, 새로운 것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대 전환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산업디자인은 끝났다는 사실을 분명한 어조로 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Jungle : 임근준 미술평론가가 말하는 좀비-모던의 시대도 같은 맥락인가요?

좀비-모던 시대는 새로워 보이지 않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대입니다. 비평 담론 차원에서 좀비-모던 시대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포스트모더니즘 문제의식이 유지된 시대가 끝나고, 이후 시대를 호명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발발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망했습니다. 모더니즘을 위반하고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판단 유예 공간을 만들어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빅토리아&앨버트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특별전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과 전복 1970~1990〉을 연 것도 2011년의 일이죠. 그 외에도 시대 결산 전시들이 2008년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만 결산 작업을 안 했을 뿐이죠.

저는 디자인이란 직능이 과거 공예가 맞은 위상 하락에 버금가는 변화를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업에서 일하는 이들은 직능의 공예화를 이미 실감하고 있다고 보고요. 가령, 책을 디자인한다고 할 때 최적의 형태로 조판해서 1000~1500부 인쇄하는 규모라면, 그게 공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방법론 차원에서 과거의 공예와 다를 뿐, 존재 양태는 예전 스튜디오 공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대량 소비되는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는 디자인계에서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인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길고 긴 하강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전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 첫 페이지에 우리가 서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입니다. 그는 ‘기대 감소의 시대’라는 표현을 썼죠. ‘포스트-어메리칸 월드’라는 수사를 앞세운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들보다 좀 더 업데이트된 이론을 낸 사람이 〈21세기 자본론(Le Capital au XXIe siècle)〉을 통해 국제적 논쟁을 촉발한 파리경제대학 교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고요. 그는 자본주의가 평범한 사람에게 부를 분배함으로써 자유가 증진한다는 기존 믿음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세습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기정사실화했죠.

이런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이론을 내세운 사람이 미술계에도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관계 미학’을 주창하며 2008년까지 새로운 현대미술 실험을 이끌었던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입니다. 그는 2009년 ‘얼터모던(Altermodern)’ 개념을 제시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유효성을 상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열화복제된 버전의 모더니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좀비-모던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부리요는 주로 문화적 이종 교배와 변화하는 생산 형식으로서의 여행, 예술 형태의 확장에 초점을 둔 논지를 전개했습니다. 결국 관계 미학의 후속편을 만들고자 한 바람에 더 큰 그림을 그려낼 기회를 놓친 꼴이 됐는데요. 저는 예술계 내부의 역학 변화에 천착하기보다 시각성의 변화와 그로 인한 물신성의 저하에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Jungle : 좀비-모던의 시대가 도래하게된 연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21세기 특징은 ‘오늘’의 개념이 쪼그라든 데 있습니다. 그 시작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도래한 당대성의 시대에 잠복해 있죠. 모더니티를 대체한 당대성의 핵심은 진화적 세계관과 그에 도달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관을 기각한 데 있습니다. 세계의 미래상을 놓고 경쟁한 결과, 두 차례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그에 대한 반작용이 당대성의 시대를 낳은 겁니다. 하지만 현대성의 시공간 개념은 과거와 오늘, 우리가 도달해야 마땅한 미래로 이어지는 일안원근법적인 시각성을 전제로 합니다. 여기에서 미래만 기각해버렸으니 당연히 임시적인 체제일 수밖에 없죠. 마찬가지로 ‘오늘’의 개념이 변하자, 포스트모던의 비평 효과는 한 순간에 파괴돼 버렸습니다. 세기말 닷컴광풍을 거쳐 밀레니엄에 이르자 ‘오늘’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오늘’이 아니었죠. 미디어테크놀로지의 발달로 20세기가 더욱 생생하게 ‘오늘’에 귀환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20세기를 데이터베이스 삼아 끝없이 재구성되는 스킨의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20세기의 핵심이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가 표현한 ‘새로운 것의 충격(shock of the new)이라면, 21세기의 특징은 ‘오래된 것의 충격(shock of the old)’입니다. 지속적으로 20세기에 이뤄진 성취를 재발견, 재구성하고 그 힘에 놀라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이는 2010년대 특유의 ‘무시간성(atemporality)’을 야기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오늘’의 동적 공간이 유례없이 좁아진 거죠. 이제 대다수 사람에게 허락된 ‘오늘’은 소비 활동을 위한 시공(정크스페이스(쇼핑몰화한 공간))에 불과합니다.

Jungle : 모던-좀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젊은 세대들은 20세기와 함께 살고 있는 셈인데요. 이 세대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인가요?

21세기 젊은이들은 20세기에 성취를 이룬 선인들과 대차대조되는 운명입니다. 청년들이 록그룹을 결성해 음악을 만들면, 인터넷 검색으로 즉각 소환 가능한 과거와 비교당합니다. 데이터베이스 소비는 음악에도 적용됩니다. 이제 새로운 음원을 감상하는 일은 교묘하게 장치된 레퍼런스를 읽어내는 일처럼 돼버렸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20세기 아방가르드가 19세기와 완전히 절연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절연한다는 의식, 그게 아방가르드의 특징이죠. 그 파생물 가운데 하나가, 1차 세계대전 직후 탄생한 바우하우스였고요. 그러나 21세기는 영원히 20세기를 데이터베이스 삼는 파생물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젊은이들은 과거에 짓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망각도 힘이어서 20세기를 망각해야 21세기의 새로움을 모색할 판단 유예의 시공을 마련할 텐데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 시대의 힘은 불행히도 과거에 있습니다.

좀비-모던 시대에 생존을 모색하려면 이러한 상황에 비평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제 새로움은 문화 콘텐츠의 외형이나 구성 요소에 있지 않습니다. 새로움은 요소를 짜깁기하고 비평적 스킨을 도출하는 데이터 호출 방식, 요소들을 연결하는 유기적 메타-프로토콜에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좀비-모던의 게슈탈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좀비-모던의 시대를 진단하는 과정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가 ‘오늘의 나’를 가능케 하는 비평적 동적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는 청자들이 일명 오타쿠와 후죠시입니다. 그들은 이미 데이터베이스와 스킨 사이의 눈에 뵈지 않는 프로토콜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고,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MoMA에서 개막한 기획전 <영원한 현재: 무시간적 세상의 당대회화(The Forever Now: Contemporary Painting in an Atemporal World)>가 오타쿠처럼 연성하는 방법으로 20세기 모더니즘 회화 문법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2010년 뉴뮤지엄에서 모마로 자리를 옮긴 큐레이터 로라 홉트먼(Laura Hoptman)이 기획한 이 전시는, 무시간성(atemporality)을 주제로 새로운 추상회화 경향을 추적한 야심찬 전시였습니다.

Jungle : 현재 주요한 디자인 담론은 무엇입니까?

현재 디자인 담론 차원에서 가장 주된 과제는 디자인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일입니다. 역사를 재해석하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세기를 지속적으로 재호출해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이해 방식을 일신하지 않으면, 현재의 공회전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탓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급한 과제는 포스트모더니즘 결산입니다.

안타깝게도 디자인계는 비평을 두려워하는 의식이 없습니다. 원로들이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죠. 한국현대디자인 유산을 역사화하지 않으면, 발전을 모색하기 어렵습니다. 디자인뮤지엄에 유산을 아카이브해 연구하고 그 역사를 전시로 가시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대가 그를 자산 삼아 새로운 디자인 프로토콜을 시도해볼 수 있거든요. 일단 원로들의 자료 정리부터 해야 합니다. 국립현대디자인뮤지엄을 설립해 아카이브 사업을 벌이고 큐레이터를 양성해야 합니다. 원로의 회고전을 한 번 치르면, 그것이 역할 모델이 되어 이후엔 작업이 수월할 겁니다. 대대적인 회고전 없이 한국현대디자인 거장들을 떠나 보내는 비극적인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Jungle : 미술평론가로서 현시점을 평가한다면?

이미 한국에도 새로운 시각성에 부합하는 젊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작년이 전환점이었는데, ‘교역소’, ‘반지하’, ‘구탁소’, ‘727나우’, 강재원과 밈미우 듀오 등을 보면 활동 양태만 봐도 기존 미술가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성의 시각에서 이들은 완전한 무명이지만, 전대에 볼 수 없는 시간 특정성, 기회 특정성을 추구하며 새로운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현시대에 중요한 것은 타임라인 형식으로 공유되는 어떤 감각이죠. 아마 당분간 ‘작품 전시’라는 기존의 형태로는 그 누구도 미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없을 겁니다.

제가 현재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활동 형태/플랫폼 가운데 하나는 ‘빈자의 부티크’입니다. 굿즈 형태로 파편화한 작업들을 제작, 전시하고 판매하는 비전형적 부티크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포용할 수 있는 미적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형태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실험 공간으로써 부티크들을 묶어낼 축제 형태의 연례행사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뮤지엄 전시나 아트 페어가 아닌, 예술 생산자 페어 형식이 좋으리라 봅니다. 그런 형식이라면 미술가, 디자이너, 공예가 모두를 포괄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전까지는 담론적 장소성이나 사회적 접면에 특정성을 부여한 관계성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지만, 이젠 아닙니다. 장소성의 효력이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그러나 주류미술가 다수는 그런 변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건 디자인계도 마찬가지죠. 디자인과 미술계 사이에 새로운 교집합이 형성된 때는 1997년 얀반에이크아카데미에서 열린 심포지엄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 시대가 열린 때는 대략 2005년경이죠. 그런 맥락에서 지금이 과거 성과를 한데 모아 역사적으로 평가할 시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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