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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디자인과 함께 한다. 포근하게 만들어진 이불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예쁜 그릇을 골라 아침을 먹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을 한다. 수많은 제품들 속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의 ‘선택’의 기로에 서는 우리는 무엇에 의해, 어떠한 기준으로 한 가지를 고르게 될까. 그저 마음에 끌리는 것. 눈이 가고 손이 가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는 것에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2015-10-30)
따뜻한 행복감 선사하는 멘디니의 감성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디자인과 함께 한다. 포근하게 만들어진 이불 속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예쁜 그릇을 골라 아침을 먹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을 한다. 수많은 제품들 속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의 ‘선택’의 기로에 서는 우리는 무엇에 의해, 어떠한 기준으로 한 가지를 고르게 될까. 그저 마음에 끌리는 것. 눈이 가고 손이 가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는 것에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 | 멘디니전 제공

그렇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선택하도록 하는 것. 사물은 제 기능을 잘 해내는 기능성도 갖춰야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 하나만으로 제품을 고르지 않는다. 물건과 마주할 때의 기분도 중요하고 물건에서 느껴지는 감수성도 중요하다. 멘디니는 이러한 감성을 다루는 디자이너다. 그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것도, 그의 디자인이 ‘예술’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의 주제는 ‘디자인으로 쓴 시(The Poetry of Design)’다. 그의 디자인은 ‘상품’과 ‘산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우리가 잘 몰랐던 멘디니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단독 전시로 생활용품, 가구, 드로잉, 건축물 모형 등 자그마치 6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수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가 해온 작업의 다양성과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장에서는 그가 선보였던 수많은 디자인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그의 생각과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나타내는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바. 디자인과 순수예술이 같을 수 없지만 이번 전시는 엄연히 그의 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순수 디자인’전으로 멘디니의 일관되지만 다양한 디자인과 개성 있고 독특한 정신세계를 함께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은 특별히 전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작품 선정에서부터 비대칭형 곡면이라는 DDP의 공간적 특성을 활용해 예술적인 것과 산업적인 것, 역사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등으로 작품을 구분하는 등, 전시장 디자인에 멘디니가 직접 참여했다는 것은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회고전의 성격을 띠는 전시는 모두 11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섹션 1은 ‘The Hall’. 화사한 색채와 동심을 자극하는 디자인이 특징인 전시장 입구로 멘디니의 디자인 세계로의 입장을 안내한다. 섹션 2 ‘어린이 눈으로 본 세상’은 다소 반항적이지만 동심을 자극하는 천진난만함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그의 디자인들을 보여주는데 이탈리아 주방용품 업체 알레시 제품들을 모아 회전목마처럼 제작한 〈지오스트리나〉 등이 전시된다. 섹션 3의 주제는 ‘기능주의를 부정하다’로 기능주의 디자인을 비판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열었던 멘디니의 정신을 확인시켜준다.


섹션 4는 멘디니의 디자인이 어떠한 근거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하는 작품들이 전시되는 ‘전통에 대한 사랑’이다. 이탈리아의 전통적 디자인부터 그의 창조적 에너지까지, 여러 근원들을 볼 수 있다. 섹션 5는 ‘내면세계 들여다보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멘디니의 작품세계는 여느 예술가 못지않다. 트리엔날레 밀라노 디자인 뮤지엄에서 대여한 150점의 드로잉과 소품들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천 도예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108개의 세라믹 청자 미니어처 ‘프루스트 의자’도 전시된다.


섹션 6 ‘점과 색으로 디자인하다’는 그를 대표하는 〈프루스트 의자〉가 전시된다. 그의 디자인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점묘적 표현으로 완성된 ‘프루스트 의자’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문다. 섹션 7 ‘Too Big / Too Small 크기로 상식을 뛰어넘다’에서는 말 그대로 상식 밖의 크기로 아주 크거나 작게 제작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크기의 변화를 통해 기존의 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다가오는 오브제들은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각을 선사한다. ‘디자인 예술의 영역을 넘보다’를 주제로 하는 섹션 8에서는 기능주의의 디자인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정서를 중요시했던 그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히트작 〈안나 G〉, 태양, 달, 지구를 형상화시킨, 손자를 위해 디자인한 행운의 램프 〈아물레또〉, 손자의 공간을 지켜주는 수호물로 만든 캔들라이트 〈깜빠넬로〉 등이 전시된다.




섹션 9는 ‘인간의 형상을 한 디자인’에서는 〈12개의 기둥〉, 〈네오 말레비치〉 등 자신의 디자인에 인격성을 부여한 작업물들이 전시된다. 섹션 10 ‘건축디자인’에서는 건축분야의 결과물이 전시된다. 그의 대표적 건축물인 네덜란드 그로닝겐 미술관, 알레시 본사의 이노베이션 프로젝트, 독일 하노버의 버스정류장 등의 모형이 전시된다. 섹션 11에서는 ‘디자인 영적인 세계를 만나다’에서는 숭고한 오브제적 디자인을 선보이는 비사짜의 유리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미니어처 빌딩 〈작은 성당〉, 까르디에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보석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한 기념비 〈까르띠에 조형물〉, 이집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도자기병에 전세계 100명의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 뮤지션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프로젝트 〈100% 메이크 업〉 등이 전시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알레시는 상품을 예술품으로 대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기도 했다.


“좋은 디자인은 시와 같고 미소와 로맨스를 건넨다”
똑같은 기능의 제품이 있을 때 우리는 유머가 있고 디자인이 있는 것을 택한다. 작은 사물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한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멘디니가 말하는 디자인 정신도 바로 이것이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기지개를 켜는 여자 친구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고, 그로닝거 미술관의 오프닝 기자간담회 선물로 제작된 〈안나 G〉가 1분에 하나 꼴로 판매될 만큼 큰 사랑을 받은 것은 디자인에 유머와 스토리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미소와 로맨스를 건네고자 시와 같은 디자인을 했다.


누구나가 다 아는 이렇게 유명한 디자인을 선보인 그가 모더니즘 디자인을 비판했다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다. 어차피 디자인은 생산과 소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그이기에 그 말에 대한 진실성이 어느 정도일지 내심 궁금했다. 그러나 전시는 그의 디자인이 무엇인지, 어떠한 예술관과 사물에 대한 철학을 지녔는지, 그리고 그의 디자인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무엇보다 그가 왜 시를 운운하고 로맨스를 말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그는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중 하나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디자이너로서 그가 얼마나 겸손한 태도를 가졌는지를 말해준다.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유럽의 기능주의를 비판한 ‘디자인계의 급진주의자’ 멘디니가 주창한 ‘리디자인(Re-Design)’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프루스트 의자>는 이러한 그의 생각을 반영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고가구점에서 구입한 바로크 스타일의 소파에 수많은 점을 찍은 이 의자를 통해 ‘독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성인도 쉽게 올라가지 못할 만큼 거대한 크기의 프루스트 의자는 매번 새롭게 디자인을 대하는 그의 모습을 추측케 한다.

그도 비주류일 때가 있었고 그의 디자인이 ‘반 디자인’적이라 평가받던 때가 있었다. 1970~80년대 기능주의가 디자인계의 주류를 이룰 때 그의 디자인은 ‘너무 낭만적이고 장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강한 원색이 지닌 화려함과 강한 에너지를 통해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강하게, 묵묵히 자신의 철학을 지키면서도 그는 까르띠에, 에르메스, 스와로브스키, 알레시, 스와치 등 세계적인 기업과 협업했고 삼성전자, LG전자, 롯데카드, LG, 한샘, SPC 등 많은 국내 기업과도 협업을 진행했다. 순수예술작가도 트렌드와 유행을 따르는 마당에 디자이너 멘디니는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가면서 부드러운 타협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색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렇게 그는 디자인과 예술의 담을 허물었다.

“유토피아적 건축물과 디자인”을 통해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행복감”을 선사하고자 하는 알렉산드로 멘디니.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고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지고자 했다. 멘디니가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것도 유쾌하고 발랄한 인생을 위한 삶의 태도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성을 전하고자 했던 진중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따뜻한 감성을 지닌 멘디니의 디자인은 2016년 2월 28일까지 DDP 디자인전시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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