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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많은 전시에서 디자인을 다뤘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전시는 많지 않았다.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정면으로 돌파해 다른 대안으로 발전시킨 사례 역시 드물었다. 지난해 첫 전시를 선보였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디자인 상설 전시실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 <사물학-디자인과 예술>(이하, 사물학)은 디자인과 예술의 미묘한 관계와 그 사이를 사물로 재조명한다. (2014-07-08)
사물의 눈으로 디자인과 예술을 말하다

이제까지 많은 전시에서 디자인을 다뤘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는 전시는 많지 않았다.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정면으로 돌파해 다른 대안으로 발전시킨 사례 역시 드물었다. 지난해 첫 전시를 선보였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디자인 상설 전시실에서 열리는 두 번째 전시 '사물학-디자인과 예술'(이하, 사물학)은 디자인과 예술의 미묘한 관계와 그 사이를 사물로 재조명한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하면서, 지난해 과천관에는 공예, 디자인, 건축 등 특정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는 상설 전시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그중 디자인 상설 전시관의 첫 번째 전시 ‘디자인, 또 다른 언어’는 디자인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현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디자인 소장품이 다른 장르의 작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과 첫 전시가 외부 큐레이터의 협력 전시의 형태로 시작된 만큼 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전시인 '사물학'은 이에 대한 해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디자인 전시관이 나아갈 방향을 그려볼 수 있게 했다. 디자인의 역사를 훑어가거나 이미 만들어진 디자인 작품을 배치하기보다 “디자인적인 것”의 가치를 찾아내려고 했다. 즉, 미술관 안에서 디자인과 다른 예술 영역들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전시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도 그 범주에 포함되었다. 작품의 분류보다 사물을 표현한 방법론으로 작품을 해석하려 함으로써 회화, 조각, 미디어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자인 제품들을 쉽게 만날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이 디자인인가, 예술인가 하는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애써 이 두 부분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두 개의 틀을 벗어나 사물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보는 시각 자체를 제안하는 것이 전시의 접근 방법이다.


전시를 여는 메티유 메르시에의 <드럼과 베이스>는 마트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종이컵과 손전등, 수납함 등을 선반 위에 배치하고 이를 재 맥락화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디자인을 통해 사물의 의미가 전유되고, 이것이 다시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은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딱딱한 경계를 뛰어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여지를 주는 작업이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과 현대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디자인 언어의 특성을 ‘유토이파와 디스토피아’로 풀어낸 <미지에서 온 소식>을 만날 수 있다. 문경원과 전준호 작가가 삼 년여에 걸쳐 완성한 이 프로젝트는 영상, 오브젝트, 도큐멘트 등으로 스펙트럼이 넓은 작품이다. 이미 카셀 도큐멘트와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이지만 디자인의 맥락에서 작품을 재조명한다.



기능과 용도를 중심으로 디자인 영역의 한계를 두려는 것은 오래 전 일이다. 날이 갈수록 작가와 디자이너의 작업은 유사해지면서 그 차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다른 의미에서의 보기를 제안하는 ‘기능적으로 변모하는 조각과 미술로 변모하는 가구’에서 만날 수 있는 양혜규의 <비非-접할 수 없는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빨래 건조대를 천으로 덧입힘으로써 사물이 갖고 있는 본래의 기능이 아닌 새로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이 밖에도 제품과 작품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사물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 ‘사물의 언어로 말하기’, 사물이 가진 기호와 개념을 통해 사물이 가진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섹션 ‘조망하는 사물들’, 3D 프린팅 기술이 가져온 작업의 혁명과 사물의 만남을 보여주는 ‘신세기 가내공업사’ 등으로 나뉜다.


디자인과 예술의 유연한 연결성을 고려한 것이 이번 전시 디자인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안에서의 전시가 작품의 영역과 위치를 규정하는 일이었다면, ‘사물학’ 전에서는 작품들 사이에 느슨한 연결지점을 만들어뒀다. 이 부분을 잘 반영한 것이 바로 전시장을 관통하는 벽이다. 이는 전체 전시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의 연결 지점을 관람객들이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물학’ 展은 10월 5일까지 이어지며, 11월에는 동시대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사물학-디자인과 예술’ 2부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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