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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변함에 따라 경제적 상황과 사회문화적 세태에 반응하여 독특한 인간형, 족속, 직업군, 계층이나 계급이 탄생한다. 20세기 전반기가 지성인이나 예술가들이 주도돼 이념∙이상에 기반해 사상과 사조를 내세워 사회문화 운동을 주도했던 엘리트주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기 ‘~족’의 시대가 되자 경제적∙물질적으로 윤택해지고 서로 다른 직업과 색다른 취향을 가진 대중들이 자기만의 ‘생의 방식(way of life)’을 주장하는 대중 라이프스타일의 시대가 된 것이었다. (2015-08-25)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창조계급의 진화, 그리고 미래를 지향하는 디자이너들이 갖춰야 할 자질

지난 2011년 일본에서는 갓 서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에서 일본의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를 분석하면서 30년 가까이 지속된 일본의 경제불황 끝에 자발적인 사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보다는 정체된 사회 속에서 무기력하게 안주하는 일본 젊은이들에 대해 논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사회보장제도로 부러움을 사던 유럽도 경기부진으로 전에 없이 많은 특히 젊은이들은 비정규직과 단기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일명 ‘프레카리아트’ 계급-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조어-이 급팽창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즈〉지는 최근 “노동의 신세계(The New World of Work)”라는 타이틀의 특집 연재에서 지적했다.

글 ㅣ 박진아 미술사학자, 디자인평론가 (jina@jinapark.org)


시절이 변함에 따라 경제적 상황과 사회문화적 세태에 반응하여 독특한 인간형, 족속, 직업군, 계층이나 계급이 탄생한다. 20세기 전반기가 지성인이나 예술가들이 주도돼 이념∙이상에 기반해 사상과 사조를 내세워 사회문화 운동을 주도했던 엘리트주의 시대였다면, 20세기 후반기 ‘~족’의 시대가 되자 경제적∙물질적으로 윤택해지고 서로 다른 직업과 색다른 취향을 가진 대중들이 자기만의 ‘생의 방식(way of life)’을 주장하는 대중 라이프스타일의 시대가 된 것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선 이기적이고 부유해진 기성세대에 반항하고 냉전체제에 반대하며 히피족(Hippies)이 등장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양∙풍족해진 소비주의 경제 속에서 대중 주식투자 인구가 급증하자 덩달아 많아진 뉴욕 월가의 트레이더와 다국적 대기업 소속 커리어리스트들은 스스로를 도시의 젊은 프로페셔널 혹은 여피족(Yuppies)이라 부르며 부와 윤택한 삶을 한 점 거리낌없이 누렸다.

영국에서도 빈곤, 실업, 절망에 허덕이던 하층계 젊은이들이 보수적이고 정체된 영국의 계급체제와 희망 상실감을 독특한 옷차림, 예술 취향, 라이프스타일로 돌려 표출하여 다양한 현대적 하위문화(subculture) 집단들을 만들어냈다. 글로벌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가 되자, 돈과 출세에 대한 인간 본유의 욕망은 전세계적으로 일상화 되었고, 여러 하위 문화를 만든 ~족들은 경영학이 재정의한 소비자 분류법에 따라 X세대, Y세대, 밀레이얼 세대 같은 마케팅 용어로 재분류돼 주류 소비경제와 대중문화 속으로 흡수됐다.

그 후 21세기가 된 지금도 경제환경과 사회문화의 변화에 따라 변천하는 대중문화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 현대 설치미술가 바바라 크루거가 1983년 한 작품에서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논평했던가. 오늘날 현대 대중들은 가격, 디자인, 유행, 개인취향을 반영하는 수많은 소비재들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소비 과정 일체를 생의 일부로 깊고 자연스럽게 내면화했다. 그에 따라 디자인 업계도 변했다. 1990년대 경영학계는 디자인을 기업의 수익증진과 소비자의 라이스프타일 욕구를 만족시켜 줄 ‘부가가치’로 포용했지만, 21세기가 되자 인터넷을 통한 시각환경의 민주화로 고급 대 저급, 직업 디자이너 대 구매자, 창조 대 소비 사이 개념의 벽이 허물어져 버렸고 소비자도 디자이너 못지않게 창조적이라는 권한도 부여됐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성장한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한다. 2000년대 초엽에 등장한 이래 미국에서 등장한 힙스터족(Hipster)과 유럽의 보보족(Bobos, Bourgeois Bohemian을 줄인 말)은 특히 Y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20대초~3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주를 이룬다. 교외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유복하게 성장한 후 대학교육을 받기 위해 도시로 이주해 온 이 도시 청년들은 부모의 후원 덕택에 무월급 인턴과정도 할 수 있고 고가의 희귀한 빈티지 패션,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 장인이 만든 한정 디자인 용품을 소비할 수 있다. 그러하다보니 그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하는 직업군은 대체로 문학, 미술, 수공예, 음악, 요리 등 창조와 관련된 일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힙스터들이 대거 모여 살며 창조활동을 벌여 관심을 끌고 있는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에는 힙스터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상인 부티크, 미술 화랑, 뮤직 스튜디오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들어서 있다. 그들은 겉멋만 들고 세상 어려운 줄 모르는 젊은 녀석들이라는 비난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큰돈 벌기에 연연하지 않고 창조적 열의와 정열을 생계와 비즈니스로 연결시켜 서스테너블(sustainable)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언뜻 근대기 보헤미언의 인생관과 닮았다.

그런가 하면 평생 한 직장과 한가지 직업에 종사하며 사는 시대는 갔다. 우리나라에 투잡족, 쓰리잡족이 있듯, 미국에서도 이른바 슬래시(Slashies)족이 흔하다. 슬래시란 컴퓨터 자판 기호중 사선(/) 부호로 둘 이상의 단어를 나열할 때 쓰인다. 예컨대, 내가 아는 한 친구 바바라는 본래 건축잡지 편집자로 10년 넘게 일했지만 갑작스럽게 해고된 이후로 명함에 스스로를 프리랜스 기자/환경 블로거/부동산 중개인/토마토 농부라고 소개하는 슬래시족에 합류했다. 오늘날 미국의 30대 젊은이들은 평균 9번 직장을 옮겨본 경험을 갖고 있는 다중 직업인 즉, 슬래시족이라 한다. 그들은 낮동안 본업(dayjob)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여가시간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창조활동을 추구하며 언제가 찾아올 성공을 꿈꾼다.


왜 창조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쪼들려야 하지? 이렇게 반문하는 이름하여 여키족(Yuccies, 영 어번 크리에이티브(Young Urban Creative)를 줄인 속어) 젊은이들은 빠른 시일 내에 큰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고 윤택한 인생을 사는 게 목표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인정받아 돈을 벌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는 힙스터를, 노동의 대가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1980년대의 여피족을 연상케 한다. 여키족들은 뉴욕 보다는 세속적 부와 성공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를 선호하고 주로 인터넷과 테크 분야에서 일하며 노동에 대한 높은 보수를 받아 화려한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페이스북의 창설자 마크 저커버그나 패션&뷰티 비디오 블로거 조이 서그(Zoe Sugg)가 그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꼽힌다.

오늘날 디자인을 업으로 택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인생 또한 앞서 언급된 다양한 ~족들의 생활철학이나 직업적 처지와 유사한 점이 많다. 디자인은 창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자이너 마다 성취하는 명성과 경제적 대가는 천차만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불황 때문에 고착화된 비정기 취업, 잦은 이직, 노동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이라는 악순환 고리는 오늘날 유럽, 미국, 일본, 브릭스 국가들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하이브리드형 노동현실 표준이 되었다. 〈프레카리아트 : 새로운 위험한 계급〉(한국어판 박종철 출판사 간)의 저자 가이 스탠딩은 이 같은 현상이 야기하는 큰 문제점으로 ① 단기적 임무수행에 집중하다 보니 장기적∙전략적 커리어 계획과 발전이 불가능해지고 ② 전문적인 기술∙기량(skill)을 키울 수가 없으며 ③ 따라서 전문가 정신, 일에 대한 자부심, 유사업종 동료들과의 공유의식을 상실한 공허하고 소외된 인간을 양산할 것이라 경고한다.


더 나아가서 〈MIT 테크놀로지 리뷰〉지 “어떻게 테크놀로지는 일자리를 파괴하나”라는 글에 따르면, ‘최근 기술의 발달에 따라 미국의 생산성은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실업자가 늘고 평균수입은 줄었다. 개인과 조직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개인당 노동량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기술의 발전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며 업계가 요구하는 첨단형 인재는 더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비할 방법은 있다. 지금보다 기술이 한층 더 발달하여 더 많은 일자리가 구닥다리로 전락할 가까운 미래에도 인기 높고 승승장구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갖추라고 디자인 비즈니스 전략가 마리오 갈리아르디(Mario Gagliardi)는 조언한다.

① 코딩하는 법을 마스터하라: 캐드(CAD)와 3D 모델링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이후로 대부분의 디자인 제품들은 코드화되었다.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과 더불어 코드가 디자인 그 자체가 되다시피 했다. 빅데이터가 동력이 될 산업 4.0 시대에 유저 행위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적응생산법(adaptive production method)은 개별화되고 적응적 디자인 해법은 디자인의 표준이 될 것이므로.

② 스스로 짓고 만드는 법을 연마하라: 곧 일상화될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시대에는 인터랙션 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의 경계는 녹아 사라질 것이다. 곧 디자이너란 직접 코딩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제품 안에 어플리케이션을 내장할 줄 아는 지식과 기능을 갖춘 자를 뜻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래스버리 파이(Raspberry Pi), 아두이노(Arduino), 나노드(Nanode) 같은 IoT 관련 용어들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라.

③ 현시대 특유의 복합성을 이해하라: 글로벌 시대는 서로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여러 문명과 다양한 수준의 테크놀로지가 공존하고 서로 얽혀있는 복잡다단의 시대다. 우수한 디자이너란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자이다.

④ 다문화성을 고려하라: 글로벌 시대, 한 문화권에서 창조된 디자인이 다른 문화권에서 오해되거나 무시당하면 실패한 상품이 된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감수성, 이해하려는 노력, 테크놀로지가 모두 결합해야 좋은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다.

⑤ 재활용과 순환가능한 디자인을 추구하라: 한정된 자원, 계속 증가할 인구, 환경문제가 산적해 있는 21세기, 디자인이란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제품이 해체되고 재활용되고 폐기되기까지 제품의 라이프사이클까지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즉, 자원의 활용가치를 극대화하는 순환적 경제(circular economy)에 기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미래를 대비하는 디자이너는 신소재, 자원과학, 신 환경기술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좋든 싫든 더 많은 일자리는 앞으로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가 대신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화이트칼라 책상업무는 점점 더 그 수가 줄어들어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게 미래를 내다보는 비즈니스나 테크 전문가들의 예견이다. 중산층은 사라지고,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고임금 전문가와 로봇이 채 하지 못하는 저숙련 노동자로 양극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암울한 결론이긴 하지만 경제는 분명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성장한다. 그러나 기술은 인류 모두를 구원해주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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