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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시사철 맥주를 마시고, 김호는 봄여름가을겨울 맥주를 그리고. (2017-09-12)
맥주를 그리는 김호

 


 

‘한여름 밤의 맥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어디 맥주가 여름에만 마시는 술이던가. 봄엔 나른해서 마시고, 여름엔 목이 말라 마시고, 가을엔 바람이 좋아 마시고, 겨울엔 따뜻한 히터 앞에서 마시고. 나는 사시사철 맥주를 마시고, 김호는 봄여름가을겨울 맥주를 그리고.

 

 


 

맥주를 탐구하기 시작한 건

일러스트레이터 김호는 좀 특이하다. 맥주를 좋아해서 하나, 둘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한데 모아 책을 출간했다. 뭐 여기까지는 누구나 납득이 가능한 스토리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의 책이 단순한 일러스트북이 아니라는 거다. 무려 맥주 입문서다. 그림은 물론, 글까지 김호가 직접 썼다. 제목은 정직하게도 <맥주탐구생활>. 

 

<맥주탐구생활>, 김호 지음, 21세기북스, 136쪽, 19,800원 (사진제공: 21세기북스)

<맥주탐구생활>, 김호 지음, 21세기북스, 136쪽, 19,800원 (사진제공: 21세기북스)


 

“샛노란 라벨에 우유곽이 그려져 있는 ‘미켈러 크림 에일’이라는 맥주를 골랐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맛에 놀랐던 적이 있어요. 그 이후 맥주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저처럼 맥주 라벨만 보고 고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써보면 어떨까 했죠. 그런데 일러스트로 맥주 라벨을 이야기하는 책은 기존에 많더라고요. 저는 책장에 꽂혀만 있는 책보다는 활용도가 높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맥주도감

<맥주도감>


 

맥주 일러스트레이터의 삶

<맥주탐구생활>이 세상에 나오기 전 <맥주도감>이 있었다. 2015년 독립출판으로 발행한 맥주 가이드북으로, 2,000부가 약 2개월 만에 완판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김호는 책 외에도 다양한 맥주 관련 그래픽 작업을 해왔다. 20대 중반부터. ‘맥주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Brown Beer Pub

<Brown Beer Pub>

 

Beer Playground

<Beer Playground>


 

“제가 진행하는 맥주 작업은 개인 작업과 상업 작업으로 나뉘어요. 개인 작업으로는 아이소메트릭으로 작업했던 ‘Brown Beer Pub’, ‘Beer Playground’, 맥주의 다양한 스타일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Beer Style Map’ 등이 있고요. 테이스팅 노트북 ‘Remembeer’는 망원동 맥주 보틀샵 위트위트의 의뢰를 받아 작업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은 타입과 일러스트가 잘 어우러진 ‘All You Need Is Beer’예요.”

 

Beer Style Map

<Beer Style Map>

 

Remember

<Remembeer>

 

All You Need Is Beer

<All You Need Is Beer>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맥주

문득 궁금해 진 건, ‘어떤 맥주를 마셨을 때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였다. 맨 처음 그렸던 맥주는 한정판 맥주 위주였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마실 수 없는 맥주인만큼 일러스트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두던 것이 시작이었다는 것. 또한 맥주의 맛이 일러스트로 잘 구현된 맥주들도 자주 그렸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맥주 라벨은 스타일이 다양해서 작업이 재미있어요. 역사가 깊은 클래식한 맥주에서는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서체와 로고, 세밀한 일러스트를 엿볼 수 있고, 최신의 양조 기법을 활용한 트렌디한 맥주에서는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 흥미로워요. 요즘의 크래프트 맥주 라벨은 캔의 표면에 음각으로 라벨을 새기기도 하고, 오돌토돌한 후가공을 넣기도 하더라고요.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셈이죠.”

 

맥주 일러스트레이터 김호는 벌써 다음 맥주 책 구상에 들어갔다. 맥주를 보통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맥주탐구생활>도 기대만큼 예뻤고 놀라웠고 실용적이었는데, 다음 책은 얼마나 더 대단할까. 그의 어깨에 부담감을 살포시 얹으며, 나는 오늘도 맥주를 마시러 가련다. 총총. 

 

 

호가 뽑은 ‘맛과 라벨이 잘 어울리는 맥주 3’

(좌측부터) 빅웨이브, 슈나이더 Tap5 호펜바이세, 올드 라스푸틴

(좌측부터) 빅웨이브, 슈나이더 Tap5 호펜바이세, 올드 라스푸틴


 

빅웨이브

은은하면서도 매력적인 향과 부담스럽지 않은 맛이 특징인 하와이 맥주. 라벨만 봐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고, 대화하면서 마시기 좋아 여름에 자주 생각난다고.

 

슈나이더 Tap5 호펜바이세

IPA의 씁쓸하고 화려한 향과 밀맥주 특유의 바나나, 정향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러한 특징을 살리고자 (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라벨에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삐죽삐죽한 녹색 별이 그려져 있다.

 

올드 라스푸틴

흑맥주 중에서도 높은 도수와 진한 맛을 자랑하는 임페리얼 스타우트 스타일의 맥주. 영국에서 러시아로 맥주를 보낼 때 맥주가 얼지 않도록 홉을 잔뜩 넣고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이 기원이다. 라벨에는 제정 러시아 마지막 왕조를 파탄시켰던 괴승, 라스푸틴이 그려져 있는데, 맥주의 강렬한 맛과 탄생 기원을 잘 표현했다.

 

에디터_ 추은희(ehchu@jungle.co.kr) 

사진제공_ 김호(www.studio-black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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