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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자인으로 세상 보기 (2014-12-04)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경쟁'이란 단어가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서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려 한다. 무한경쟁에 던져진 우리, 그리고 그것을 불친절하게 이용하는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경쟁, 그리고 상실의 시대

문화의 한계는 그 출발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우리네 역사가 늘 그래왔듯, 인간은 또 그 한계를 넘고자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우리 디자인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땅에 펼쳐진 디자인이란 역사의 한계는 결국 다양한 과도기의 파생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우리 디자인만의 모순이란 단어다. 지금부터 펼쳐질 내용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일상의 파생, 그리고 그 모순에 관한 디자인 담론이다. 우리도 모르는 불친절한, 그래서 더욱 역설하고픈 친절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글. 사진 ㅣ 석중휘 숭의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조교수


좀 지난 일이지만, 우연히 TV에서 '마스터 셰프코리아'란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지라 그날따라 유심히 TV를 보고 있었는데, 이전에 봤던 여타의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유난히 거친 모습(출연자를 대하는 태도)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전문가라 불리는 저 사람들은 일반인 출연자들(삶의 경쟁에 놓인)에게 저리 심한 무시와 막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과연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TV안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대개 이런 형식의 포맷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출연자들을 제압하고, 그것이 또한 당연한 과정임을 보여주는 형식들 말이다. (요즘은 더 그런 과정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바닥엔 우리가 늘 겪어왔던,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경쟁'이란 단어가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해서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 꺼내보려 한다. 무한경쟁에 던져진 우리, 그리고 그것을 불친절하게 이용하는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2011년 당시 TV에 조금은 파격적인(물론 당시에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물론 지금은 이미 사라진 ‘나는가수다(이하 나가수)’라는 이름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뜬금없이 이 예전 프로그램을 꺼낸 이유는, 그때 '나가수'에서 보여주었던 행태(이른바 프로들의 경쟁 시스템)가 지금 만연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기준을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넘어 그런 형식의 시스템이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의 경쟁을 또한 설명할 수 있는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가수'는 당시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을까?

당시 해당 예능프로그램을 기획한 방송사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예능프로그램 '일요일일요일밤에(이하 일밤)’는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이 무색해질 정도로 급격한 하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반면 시대 흐름을 발 빠르게 포착한 동 시간대 타 방송사들은 새로운 얼굴과 다양한 기획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빠르게 사로잡고 있었다. 물론 당시 해당 방송사도 이것을 타파하고자 ‘일밤’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몰래 카메라를 부활시켜 간판 진행자 ‘이경규’를 잠시 앞세우기도 했고, 착한 예능의 선구자였던 김영희 프로듀서를 복귀시켜 사회 참여형 착한 예능을 다시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 변화에서 한걸음 벋어난, 도돌이표일 뿐이었다. 결국 ‘일밤’은 그동안 추구했던 예능의 길을 접고 이른바 대대적인 개편이란 걸 시행하게 되는데, 그 개편의 간판으로 발표된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나가수’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호평, 논란, 비난, 동정,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했던 프로그램의 한계를 실감하며, 아주 짧은 기간 흥망성쇠와 함께 TV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사라진다고 흔적 마저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 프로그램 역시 이후에 생겨난, 또 그 이전 선보였던 이른바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의 기준과 방식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준과 방식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픈 현실적인 경쟁의 변질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런가? 그것을 찾기 위해 우선 '나가수'를 리뷰해보자.

첫째. ‘나가수’는 우리가 만들어오고 지켜왔던 '공정'이란 심리적 선을 미디어를 이용해 재 이동시켰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신뢰라 여겼던 내적인 의미를 스스로 조작 가능하다는 미디어 중심의 여건으로 새로이 정리했다는 뜻이다. 마치 지금의 만연한 선동형 여론의 모습처럼 말이다. 과연 무엇이 그런가?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나가수'는 첫 시작화면부터 각계각층의, 소위 음악 전문가 집단을 등장시켜 이 프로그램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나열한다. 그리고 이 전문가 집단은 가수가 노래하는 중간에도 계속 화면에 등장해 이번에 노래하는 가수가 어떤 사람이며 왜 이곳에 나와야 하는지, 마치 그들의 대변인처럼 가수들을 끊임없이 포장하고 있다. (우습게도 첫 방송 당시 시청자 불만 중 하나는 노래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앞서 정의해놓은 전문가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에게 권리를 주는 듯한 청중평가라는 방식을 통해 그 의미를 대중에게 전가시켰다. 물론 그 안에는 ‘내가 세워놓은 이런 가수들을 너희들은 그냥 인정해야 돼’라는 함의의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개인의 취향이 담론화되는 시대에 도대체 나이별 인원을 분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이러한 미디어의 규정방식은 이것을 바라보는 시청자를 위한 시스템이 아닌 매체, 그리고 미디어를 움직이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이후 지속적인 시청자들의 불만을 누른 채 ‘나가수’는 어느덧 미디어의 긍정적인 응원을 부르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게 된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의 가장 '취약점'이었던 공정성의 문제를 미디어의 포장을 통해(시청자의 감정을 배재한 채) 스스로의 신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언론들처럼 말이다.

둘째, 앞의 이야기에 덧붙일 수 있는 의미로, 모든 이에게 경쟁은 당연하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즉, 우리가 잘 아는 기성가수들 조차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선을 무너뜨림으로써, 현재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정당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심지어 전문가도 경쟁을 하는데 하물며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은? 그리고 이런 경쟁의 시스템을 우린 어느덧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바로 미디어의 자극적인 학습에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어쩌면 디자인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영향력이 너무나 과하게 무게가 실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그 덕에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전문가는, 이젠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TV를 보라. 패션프로그램 ‘도전수퍼모델코리아’, 요리서바이벌 ‘마스터셰프코리아’, 가수오디션 ‘슈퍼스타K’, ‘K-POP스타’, 창업오디션 ‘황금의 펜타곤’ 등등 거의 모든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업계의 전문가라는)은 실제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미션과 행동을 요구하며, 독설을 날리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마치 그것이 이 세상의 정답인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얼마 전 유명 패션 디자이너 사무실의 인턴 급여 관련 기사가 세상을 조금 시끄럽게 만들었다. 아마 유명한, 그리고 나름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었기에 더 그런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을 터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런 일련의 일들은 디자인계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기사와 함께 몬트리올 총영사관 무급인턴사원 모집 공고 또한 SNS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현실의 기사들과 앞의 TV프로그램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을 아주 잔인하게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경쟁은 점점 미디어와 현실을 통해 더욱 돈독한 벽을 쌓아가고 있다.

많이 돌아왔지만, 어쩌면 오늘의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을 한탄이 포함된 투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디자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길을 계속 걸어오지 않았었던가? 누군가를 위한 경쟁PT, 시안은 벌써 일상이 되었고, 늘 그것을 위해 우린 바쁜 시간을 항상 쪼개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그 경쟁을 위한 시안이 회사 임원을 넘어 부장, 과장 등을 위해서도 만들어진다. 윗 선의 관심이 무엇인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에 그래서 인지 그것을 위한 시간 낭비도 꽤 많아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우스운 건, 이들 모두가 전문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잠깐 돌이켜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장 안에서 우린 우리 스스로가 지켰던 마지노선이란 게 있었다. 바로 상도의라는 선, 기업이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두가 살기 위한 방법론이다.

하지만 그런 시장의 선, 마음의 선이 무너진 지금 과연 우린 어떤 의미를, 아니 어떤 친절함을 소비자들에게 베풀 수가 있을까? 우리조차 ‘안녕’이라 말하기 힘든, 이 팍팍한 경쟁의 삶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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