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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디자인으로 세상 보기 (2014-09-22)
어느새 가을이다. 문득 이 가을의 스산한 아침을 느끼며, 가을은 어쩌면 봄과는 다른 새로운 궤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들게 한다. 흠, 시작이라!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얼마 전 거리를 지나다 본 간판에서 이 시작과 관련한, 예전 학창시절의 추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기억이 나실는지 바로 매 학기 시작과 함께 진행되었던 ‘환경미화’ 말이다. 해서 오늘은 이 추억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환경미화를 꿈꾸는 아름다운 도시 간판

문화의 한계는 그 출발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우리네 역사가 늘 그래왔듯, 인간은 또 그 한계를 넘고자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우리 디자인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땅에 펼쳐진 디자인이란 역사의 한계는 결국 다양한 과도기의 파생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우리 디자인만의 모순이란 단어다. 지금부터 펼칠 내용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일상의 파생, 그리고 그 모순에 관한 디자인적 담론이다. 우리도 모르는 불친절한, 그래서 더욱 역설하고픈 친절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글, 사진 ㅣ 석중휘 숭의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 조교수


어느새 가을이다. 문득 이 가을의 스산한 아침을 느끼며, 가을은 어쩌면 봄과는 다른 새로운 궤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들게 한다. 흠, 시작이라!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얼마 전 거리를 지나다 본 간판에서 이 시작과 관련한, 예전 학창시절의 추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기억이 나실는지 바로 매 학기 시작과 함께 진행되었던 ‘환경미화’ 말이다. 해서 오늘은 이 추억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부터, 물론 필자야 국민학교지만,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늘 이맘때면 반복되는 연례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환경미화'란 이름의 교실 꾸미기 활동이다. 뭐 이름이 좋아 꾸미기지 사실 그 시절의 환경미화란, 학생인 우리가 직접 교실을 정비하는(여기서 '정비'란 단어를 쓴 이유는 보통 이때의 환경미화는 대청소를 넘어 교실 전체에 페인트칠까지 하는 등 꽤나 수고스러운 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 일종의 학교 본연의 노동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는 일이라고, 조금은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에 우리 상황이 그랬고, 그리고 그땐 또 그런 게 나름 학창시절의 낭만이기도 했었고, 그리고 여느 해와 같이 그 해(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때 기준) 가을에도 여전히 그런 일들은 반복되려 하고 있었다.

환경미화 시즌(시즌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이 시작되면 대개 이런 패턴으로 일이 진행되곤 한다. 첫 번째 우선 반장과 부반장 중심으로 환경미화를 어떻게 진행할지 선생님과 상의(주로 지시가 대부분이지만)를 하고, 두 번째, 그 결과에 따라 각종 이름의 학급 간부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부여 받고, 세 번째 그 역할이 또 각 부원들과 개별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그리고 일정에 맞춰 각각의 일들이 진행되고, 대체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맥락과 달리 이때의 환경미화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 내용이 전개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상황을, '지나침'이란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 때 당시에는 이랬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 집에 예쁜 그림이 있는데 가져와도 될까요? 그러면 다음날 그 학생의 그림은 교실 벽에 붙게 된다. 물론 여타의 ‘환경미화’도 대부분 그런 방식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 시절 우리에겐 이렇게 벽에 걸 수 있는 그림의 수, 그리고 어떤 형식,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즉 교실 벽에 공간이 남아있는 한 우린 어떤 그림(수업에 들어오시는 많은 선생님들께서 이발소 그림이라고 했던)을 가져와도 거치가 허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어디 그림뿐이었겠는가? 화분을 비롯해 교실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주변을 점점 차지하게 되었고, 결국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환경미화 심사일이 다가올수록 교실은 이른바 도떼기시장처럼, 원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복잡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되다 보니 각 담당 교과의 핀잔과 구박은 당연한 수순이 되었고, 물론 그러는 사이 우린 담임선생님의 든든함을 업고(사실 이 모든 과정은 담임선생님의 부축임) 결국 우린 그런 일련의 일들을 즐기는 수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필자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때 그 시간이 바로 삭막한 우리의 시절 안에서 유일하게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었기 때문 아닐까.

이렇게 뜬금없이 옛 추억을 꺼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길을 지나다 문득 발견한 우리 주변의 간판들,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모습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형식의 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변에 생겨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과연 이렇게 규격화된 간판들은 광고와 홍보라는 그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우리 도시의 환경미화에 진정 걸맞은 모습일까?

1991년 실질적인 지방자치제 이후, 우리의 도시들은 각각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름 새로운 시도라는 환경미화를 끊임없이 시도해 오고 있다. 물론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자본을 수시로 동원하면서까지 말이다(‘디자인 서울’도 그런 정책 중 하나).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시작된 도시 꾸미기는 예전 우리의 교실에서 흔히 보았던, 그런 일상의 규격화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간판들 역시 그런 결과물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어폐가 담겨있는 이야기인가? 도시의 개성을 위해, 도시의 환경을 위해 오히려 규격을 맞추는 일련의 시도라니! 그래 그건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우리의 도시들은 얼마나 서로 차별화가 되었는가? 아니 어느새 이곳저곳 ‘서울’같이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그 순서에 맞춰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맞춰 실행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도 그것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듯 꼭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정답이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일 것이다. 이유는 그러지 않아도 살아지는 게 또한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우리 역시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늘 동경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와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개성 있는 인생들 말이다. ‘미화’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단순하게도 ‘아름답게 꾸민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도시는, 우리를 둘러싼 간판들은, 도시의 환경미화를 통해 정말 그렇게 아름다워졌을까?

위의 이미지는 서울의 아름다운 간판들, 그리고 기사의 첫 이미지는 뉴욕의 거리 모습이다. 지금도 우리의 도시는 이런 시도들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도들과 함께 위와 같이 규격화된 간판들 또한 우리의 주변 곳곳을 끊임없이 채워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디자인적 가치로 있는 행위로 받아들여질는지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만 말이다. 다만 지금 그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 사실만은 조금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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