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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윤병주가 기존 작업과는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신작을 발표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7-03-17)  
한편의 일기 같은

 

 

사진가 윤병주가 기존 작업과는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신작을 발표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나이가 30대 중반이 되면서 내심 이 따위로 살아도 되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사진가 윤병주가 이번 신작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꺼낸 말이다. 어려서부터 이사와 이민을 거듭해 ‘지독한 역마살’이 운명인 것처럼 믿고 살았단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를 갖고 있지도 딱히 미신을 믿지도 않지만, 사나운 팔자를 고쳐보려고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약간의 ‘살풀이’ 의미가 작업에 더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작업을 통해 역마살을 풀어내겠다는 뚜렷한 목적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뿐이라고.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장 전경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장 전경


역마 그리고 작업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그의 신작을 본 순간 작업 스타일이 기존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사진을 통해 대놓고 ‘가짜’를 이야기했던, 다시 말해 ‘재현’이라는 사진 속성에 의구심을 품었던 〈화성〉 시리즈와 궤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하지만, 유독 이번 신작은 한 편의 일기를 보는 것 같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개념’ 작업과는 다른 맥락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 작업은 ‘역마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대항해시대(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던 15~17세기 유럽 상황을 반영한 게임)’와 구글 어스를 차용한 영상, 그리고 타지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등을 이용했다.

노마딕에 가까운 그의 삶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도구들이다. 먼저 ‘대항해시대’ 지도를 통해선 자신의 이동 경로를 보여주었다. 특이한 것은 서쪽으로만 이동했다는 것. “당신의 복은 서쪽에 있다.”는 무속인의 말이 조금은 반영됐다고 한다. 반면, 영상에는 이주 과정에서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지구본과 함께 오랜 시간 사용한 이민 가방, 9·11 테러 사진(미국 이민을 실패로 이끈 원인), 그리고 코리올리의 힘(남반구와 북반구의 물 회전 방향이 서로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 자료들이 함께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은 그가 아르헨티나와 미국, 인도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세 곳 모두 그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르헨티나와 미국은 실제 이민을 가려던 나라였고, 인도는 세계일주를 하다가 여행을 중단한 나라였다. 사진에 특이점이 있다면 여느 전시와 달리 그 사이즈가 작다는 것. 마치 여행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거운 카메라가 아닌 스마트폰처럼 가벼운 장비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작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 마음 가는대로 셔터를 눌렀던 사진들을 방 한쪽 벽에 붙여놓은 것처럼 말이다.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Homecoming day〉, 2017


집으로 돌아오다

아르헨티나와 미국으로의 이민은 아쉽게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적응 문제, 9·11 테러, 군대 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이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의 ‘이동’이라는 행위는 어느새 관성이 됐다. 

무엇인가 계속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반복되면 운명이 되는 것일까. 주민등록초본이 세 장이 넘어갈 정도로 국내에서도 수없이 이사를 했다. 그러나 신작을 준비하는 동안 윤병주의 역마살 기운은 잦아들었다고 한다. 작업 주제가 ‘이동’인데 집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찌됐든 지금까지는 김동리의 〈역마〉 속 운명의 사슬에 매여 있는 주인공과는 다른 결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성공인 셈이다. 운명을 뒤흔들겠다는 강력한 목적성이 없는 작업이라는데 자꾸만 신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이쯤 되니 다음 작업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지난 작업까지는 이주의 경험이 조금은 냉소적(대상을 낯설게 바라보기, 색을 단조롭게 사용하기)으로 발현됐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부터는 작업의 톤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것이 정말로 바뀐 것인지, 아니면 잠깐 억눌린 것인지는 오로지 윤병주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를 졸업했고,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화성〉 시리즈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과 송은 아트큐브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토탈 미술관에 서의 〈거짓말의 거짓말〉을 포함, 다섯 번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에디터_ 박이현

디자인_ 서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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