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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돋보기를 낀 할머니가 대바늘을 들고 자식 손자들의 겨울 내의를 만들거나, 어머니가 맵시 있는 솜씨로 코바느질(80년대 중반 엄청나게 유행했던)을 하던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의 뜨개, 혹은 니트(Knit), 니팅(Knitting)으로 더 많이 불리는 영역을 보면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어쩌면 이미 옛날사람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2014-12-09)  
올 겨울 누구를 위한 뜨개질을 하시나요?

‘뜨개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돋보기를 낀 할머니가 대바늘을 들고 자식 손자들의 겨울 내의를 만들거나, 어머니가 맵시 있는 솜씨로 코바느질(80년대 중반 엄청나게 유행했던)을 하던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의 뜨개, 혹은 니트(Knit), 니팅(Knitting)으로 더 많이 불리는 영역을 보면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어쩌면 이미 옛날사람이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글 ㅣ 윤예진 패션디자이너
에디터 ㅣ 김미주 (mjkim@jungle.co.kr)

뜨개, 또는 니트는 말 그대로 '뜨다', 또는 '짜다'라는 동사인데, 단독으로 니트라고 하면 '짜여진 물건, 짜여진 제품, 편성물(編成物)'을 의미한다. 옥스포드 영어 대사전에 'Knit'라는 단어가 1400년 이후에 추가 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엔 정확한 니트의 개념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니트와 닮은 최초의 조각은 3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뜨개 바늘을 이용한 니트가 아닌 수많은 매듭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어쨌건 처음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되는 니트는 11세기 당시 면이나 실크, 울 등이 원사의 주재료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세하고 섬세한 편성물이었다. 특히 면이나 실크는 유럽보다 중동에서 구하기가 훨씬 쉬웠는데, 때문에 유럽에서 처음 시작된 니트는 울, 또는 린넨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후 유럽에서 발견된 니트는 1275년 경 스페인의 무덤에서 나온 양말인데, 대부분 양말의 모든 조각에는 알라의 축복을 비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3세기 스페인 왕실에 고용된 이슬람교들이 니트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만든 양말이나 장갑, 쿠션, 베게 커버 등에는 축복을 의미하는 아랍어로 된 니트 장식이 빠지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런 아이디어는 이슬람의 확산을 원하였던 무리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350년 경 '니팅 마돈나(madonna knitting)'라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당시 유럽의 누군가가 뜨개질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만큼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고, 14~16 세기 동안 니트 짜는 기술을 전 유럽에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미세한 게이지를 사용한 니트는 여전히 만들기 어려웠고, 수입한 면과 실크로 만든 재료들은 매우 비쌌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몇 개의 니트 실크 스타킹을 가지고 있나에 따라 그 사람이 부자인지 아닌지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점차적으로 개인적으로 자신의 양모 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이 저렴하게 니트를 생산하는 방법을 배우고 터득하기 시작하면서 니트는 민속적인 공예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여성뿐 아니라 남성이 뜨개질 제품을 생산하였는데, 사실 당시엔 남자만 니트 공예 길드에 가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니트는 수년에 걸쳐 수요가 낮았던 민속적 공예에서 높은 수요의 대중적 항목으로 변화하였다.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니트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숄, 가방, 모자, 아기 옷 등의 모든 종류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잘 팔리는 예술품으로 거듭났다. 뜨개질은 점점 산업화되었고, 더 이상 남자들의 작업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영국의 규수들은 레이스 니트, 구슬 니트 등을 만들었으며, 그것들은 잘 배우고 자란 여성의 업적이 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뜨개질은 빅토리아 여왕을 포함한 중상류층의 여성들에게 심지어 사회적, 도덕적 의무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숙녀들을 위한 니트 공예 책이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여성들은 응접실에서 할 수 있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찾은 셈이었다. 그러나 한편, 그 시대의 손재주 없던 귀족 아가씨들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어쩌면 대리뜨개질 같은 것이 암암리에 성행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00년대 아이들 역시 니트 짜기를 배우고 즐겼는데,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군인들을 위한 니트를 짜서 전선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뜨개질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있었고, 누구나 기다란 막대기 두 개와 실만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는 실생활에 유용한 공예이자 놀이였다.

오늘날 니트는 단순히 스웨터, 목도리, 카디건 같은 의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패션 액세서리를 비롯해 가구, 인테리어 소품, 침구나 인형 등, 그 외에도 다양한 곳에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예전 남녀노소가 즐기던 것과는 달리 주로 여성들의 취미활동이나 공예 예술가(이것도 대부분 여성인 경우가 많다)들의 전문적인 작업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이전의 대중적이던 니트 짜기는 현대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을 위해 따뜻한 스웨터나 목도리를 뜨던 여성들의 이미지는 어쩌면 이제 조금은 낭만속에 사라져 버린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뜨개질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각자 사람들이 모두 조금씩은 다르겠지만(혹은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꼭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보다도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손놀림과 함께 마음의 안정과 머리의 사색을 즐길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예쁜 물들인 단풍들의 축제도 끝나고 이제 하얀 첫눈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 아주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는 니트 도구를 사용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내 자신을 위해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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