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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생동(生動)이 그 기운을 알리기도 전, 은은한 향내로 먼저 일어나 봄을 깨우는 꽃, 매화. 매서운 바람과 눈발의 추위 속에서도 홀로 꼿꼿이 기지개를 켜고 향기를 피워내는 자태가 고고하기도, 때론 아련하기도 하다. 그런 매화의 애절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동양화가 성영록(34). 그는 그리움의 이름으로 화폭에 매화꽃을 피워낸다. (2013-08-07)  
그리움으로 피워내는 매화꽃

만물의 생동(生動)이 그 기운을 알리기도 전, 은은한 향내로 먼저 일어나 봄을 깨우는 꽃, 매화. 매서운 바람과 눈발의 추위 속에서도 홀로 꼿꼿이 기지개를 켜고 향기를 피워내는 자태가 고고하기도, 때론 아련하기도 하다. 그런 매화의 애절한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동양화가 성영록(34). 그는 그리움의 이름으로 화폭에 매화꽃을 피워낸다.

에디터 | 길영화


목원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한 성 작가가 본격적으로 매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0년. 그러나 매화에 취한 기억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3학년 때, 하동 여행 중 들른 평사리 최참판댁 옆 매화밭이 자아내던 향이 매화와의 첫 만남. 남들보다 후각이 발달했다며, 스스로 향기 나는 것들에 애착을 보인다는 그에게 진하게 베어나는 매화 냄새는 어찌 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마치 첫 눈에 반하듯 그때의 매화는 향으로 그리고 고혹적인 자태로 성 작가의 마음으로 옮겨졌고, 그저 냄새가 좋아서 바라 본 매화에 그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화는 나와 닮았어요. 늘 남들보다 한걸음 혼자 나서려 했던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고독함이나 외로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자 상황이었죠. 그러나 고독함이 슬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덤덤해지고 의연해지면 그것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의 한기 속에서 홀로 꽃을 피우는 매화는 그런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어요.”

성 작가가 고독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기다림’이다. 사람들이 봄을 느끼기도 전, 3주 남짓 자태를 뽐내고 사라지는 매화를 찾아 매년 남도 여행을 떠난다는 그. 고고한 꽃의 개화를 만나기 위한 기다림의 여정은 성 작가에게 떨림이자 간절함의 시간이다. 마치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 혹은 멀리 떠나 보낸 연인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기다림의 이유는 그리움이다. 애절한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다시 말해 성 작가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매화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을 화폭에 쌓고 있는 셈이다. 때론 그리움만큼이나 아름다운 감정은 또 없을 테니.


“앞서 말했듯이 매화는 내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좀 더 솔직하게 그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경험 속에서 일어났던 감정들이 작업을 이끌게 됩니다. 감정이 잡히지 않으면 붓을 잡지 않아요. 그럴 땐 차라리 혼자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그러면 새로운 경험의 감정이 생겨나기도 하거든요. 꽃과 가지가 매화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라면, 다른 것들은 기다림 속에서 겪은 또 다른 내 이야기인 거죠.”

기다림의 간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일까. 성 작가의 작업은 꽤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먼저 임금에게 진상을 올리는 데 쓰였던 ‘냉금지'라는 종이 뒤에 풀을 바르고 질긴 한지를 바른다. 이를 배접이라 하는데, 3번 정도 하면 종이가 두꺼워진다. 그러고 나서 종이 위에 동물성 접착제인 아교를 충분히 칠한다. 이 과정은 한지의 틈을 메워주기 위한 코팅 작업이라 보면 된다. 매화는 그 위에 그려진다. 금분에 아교를 적당히 섞어 점성이 생기면 세필붓으로 찍어 매화가지를 밑그림 없이 쳐낸다. 그리고 호분으로 흰 꽃송이를 올려 형상을 만들고, 다시 금분으로 꽃 모양과 가지를 정리하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아직은 가장 그리운 존재이기에 매화로 캔버스를 채워나간다는 젊은 동양화가, 성영록. 그는 지금 매화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행 또는 그 어떤 경험 속에서 만나게 될 캔버스의 새로운 주인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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