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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08년 12월 천호사거리에서 길동사거리 방향의 530m 구간을 정비해 천호디자인거리로 조성했다. 여러 종류의 공공시설물, 즉 볼라드, 맨홀, 지하철 환기구, 휀스, 자전거보관대, 가로등, 보행자표시, 교통안내표지판 등을 통합된 디자인으로 교체하고 녹지 조성, 벤치 설치, 가판대 철거, 보도 포장, 간판 교체 등을 실시하여 거리를 깔끔하고 걷기 편한 거리로 바꾸었다. (2012-12-14)  
‘변경 후’의 모범 사례, 천호 디자인거리 비평

서울시는 2008년 12월 천호사거리에서 길동사거리 방향의 530m 구간을 정비해 천호디자인거리로 조성했다. 여러 종류의 공공시설물, 즉 볼라드, 맨홀, 지하철 환기구, 휀스, 자전거보관대, 가로등, 보행자표시, 교통안내표지판 등을 통합된 디자인으로 교체하고 녹지 조성, 벤치 설치, 가판대 철거, 보도 포장, 간판 교체 등을 실시하여 거리를 깔끔하고 걷기 편한 거리로 바꾸었다. 디자인거리는 천호대로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총 30곳이 조성되었고, 천호디자인 거리는 ‘변경 전’과 ‘변경 후’의 대비된 모습으로 이러한 사업 결과를 보여주는 첫 모범 사례였다.

글 | 이옥분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거리의 변화 : 서울 VS 한양

디자인된 거리는 확실히 걷기 편했다. 울퉁불퉁하던 노면이 개선되었고, 들쭉날쭉하던 간판도 정리되었으며, 길을 막던 가판도 가게 앞에 바짝 들여 놓여 있거나 아예 없어져 버렸다. 불가피한 구조물이 아니고서는 여러 시설물이 정리되어 길은 이전보다 훨씬 넓고 깨끗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서 아쉬움이 피어나면서, 우리나라 가로 정비의 첫 사례, 대한제국 시대 한양에서 벌어진 거리의 변화가 대비되어 떠올랐다. 대한제국 시대와 오늘날, 잣대를 댈 수 없을 만큼의 환경의 차이를 지닌 한양과 서울을 두고 도시 정책의 방향과 성과를 비교할 수 없지만, 몇 권의 책을 통해 그려본 당시의 모습은 지금의 사업보다 활기차며 역동적인 인상으로 남았었다. 한양 거리를 묘사한 서양인의 기록을 읽으며 그리고 오늘날 천호디자인 거리를 걸으며 느끼는 두 도시의 인상은 확연히 다르게 다가왔다.

* 서울

천호디자인거리를 걸으며 느낀 필자의 인상처럼 사람들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시민들은 간판, 노점상, 보도 등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말하며 덜 복잡하고 깔끔해져 좋다고 말했다. 한편 거리를 오고 가는 시민들과는 다르게 디자인거리에 자리한 상점주들은 매우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간판을 1개 밖에 걸 수 없는 것과 상점 밖으로 어떠한 홍보물도 내 놓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규정에 대해 불평했다. 가게 앞 깨끗해진 거리가 상업 활동을 규제 받는 것에 대한 보상이 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디자인거리 조성 사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점주들의 어긋난 태도를 보면서 이 사업이 과연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가로수, 의자, 간판, 녹지대 등 거리의 모든 것이 나란히 줄지어선 모습을 보면서 구획되고 틀지어진 도시의 삶을 목전에서 확인하는 것 같아 편안하지는 않았다. 어슬렁거리지 말고 쭉 뻗은 길을 따라 재빨리 움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거리의 사물들은 그렇게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였다.

* 한양

한양의 가로 정비는 개항기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에서 그 변화의 진폭을 엿볼 수 있다. 정비를 실시하기 전의 한양 거리는 매우 좁고 불규칙하며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의 선교사 알렌의 기록을 통해 보면, “시내로 통하는 길에는 인도가 따로 없고 당나귀, 황소, 마차, 전차, 그리고 사람들이 먼지나 진흙 속에 뒤범벅이 되어 있다.”(1908년 『조선견문기』)고 했다. 그리고 미국인 신학자 길모어는 “서울에는 세 개의 넓은 길 밖에 없으며, (대궐로 통하는 길 이외) 다른 길에는 노점과 가게들이 길에 내어 지어져 있기 때문에 겨우 우차가 다닐만한 좁은 길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1892년 『서울풍물지』) 라고 묘사했다.

이처럼 비좁은 도로는 고종의 ‘대한제국의 선포’와 함께 추진된 도시개조사업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고종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한성부윤 이채연은 1896년 종로와 남대문로의 가가(假家)를 철거하고 도로 정비를 추진하였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용산 등 도성 밖의 상공업지대로 연결해 나가, 한양 거리를 넓고 깨끗하게 정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바뀐 모습은 영국인 학자 비숍의 글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비숍의 기록은 이 사업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함께 한양의 모습을 바꾼 역동적인 인상을 남겼다.



“방치된 쓰레기 더미, 불결, 악취와 같은 과거 서울의 특징은 다시 느낄 수 없었고--- 도로들은 최소한 17미터 폭으로 넓어졌으며, 그 양족에는 돌로 만들어진 깊은 경계가 있으며, 그 중앙은 돌로 된 두꺼운 판지로 메워졌다.-- 넓고 평탄한 도로 위로 자전거가 질주하고 있었다.”

“개조사업이 넓은 간선도로의 조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좁은 길을 확장한 것도 허다하다. 노면을 완만하게 깍거나 자갈로 메우고 노견에는 경계석이 설치되었는데, 주민 스스로 시행한 경우도 있다.” (1897년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두 도시의 차이

100여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한양과 서울시의 가로 정비사업은 도로를 넓혀 편리하고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과 지역의 이미지를 새롭게 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사업을 추동하는 힘, 그리고 시민들의 참여 태도에서는 확연히 다른 차이가 느껴졌다. 이러한 차이는 공공의 합의와 가로 정비의 본질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 사회적인 합의

장사에 대한 상인들의 욕심은 예전에는 가가(假家)를 지었고, 오늘날에도 가판대와 노점을 차리는 모습에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개입하여 공공 도로의 무단 침입을 억제하고 공공성을 유지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공성의 유지는 정부의 일방적인 지시나 규제만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사전적 의미에서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을 말하는데, 이 말에는 ‘공동성’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깔려 있다. 즉 정부가 주도적으로 공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이루어내는 공적 특질이라는 뜻이다. 거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지는 규제나 규칙은 공공성을 전제로 하는, 다시 말해서 공동생활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합의에 기초할 때에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틀로 자리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합의의 도출’은 가로정비사업에서 한양과 서울의 차이를 가져오는 주된 원인인 것 같다.

거리 정비를 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사용하는 여러 이해 관계자들간의 합의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양의 경우, 가가가 불법 가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일정부분 정부가 권리를 인정해 준 조치에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왕이 성 밖으로 거둥을 나설 때면 가가를 철거해 길을 넓혔고, 거둥이 끝나면 다시 짓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비용을 정부에서 보조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채연의 가가정리는 도로 폭을 정해 놓고 도로 양쪽의 토지를 10년 시한으로 상인에게 가가를 짓도록 허락하되 그 형태와 재료를 일정한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이러한 조치들은 가가의 철거를 강제하기 보다는 오랜 세월 점유해 온 권리를 일정부분 인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이들을 공통의 목표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며, 이를 통해 가가철거의 추진력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업은 자연스레 도로를 사용하는 공공의 표본이 되어 정부 손이 미치지 못한 곳으로도 확산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집 앞을 치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소로들이 정비되었으며, 이것은 비숍이 기록했듯이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는 감동스러운 변화를 가져왔다. 이처럼 비숍은 시민들의 자발성을 높이 평가하며 한양의 변화를 기록했다. 한양의 가로정비 사업은 근대화로의 여정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정부와 시민들이 하나의 지향점을 공유하여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디자인거리사업은 좋은 모델이 되어 다른 거리로 확산되는 움직임을 일으킬만한 뚜렷한 계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거리를 디자인한다는 것이 자발적으로 생업 활동의 일부분을 포기할 만큼의 명분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상인들은 단속을 피해 가판대나 영업 홍보물을 밖에 내어 놓았고, 건물 외벽에 걸 수 있는 간판이 제한되자 유리창 안쪽에 더 크게 빛나는 글씨로 또 하나의 간판을 만들어 놓았다. 시민들은 깨끗해져서 좋기는 하지만, 업종의 특색이 살지 못하는 똑같은 간판으로 가게 찾기가 힘들며, 일부는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하기도 하였다. 그 많은 돈을 들여 바닥을 다시 깔고 여러 널려진 기물들을 유사한 색채와 형태로 통일하여 새로 설치하였으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좀 정리되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말 속에서 ‘디자인가이드라인’이 규칙으로서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 가로 정비의 본질

두 사업간의 또 다른 차이는 가로 정비의 본질적인 차원에 있다. 한양의 가로정비 사업은 통행의 편리함과 안전을 위해 가가(假家)라는 구조물을 철거해 넓고 다니기 편한 도로로 개선한 적극적인 조치였고, 이는 수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지켜오던 한양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반면 디자인 거리는 상인들의 영업행위를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작은 이점, 다니는데 불편함을 조금 덜었다는 것뿐이었다. 도로에 설치된 각종 기물들을 관장하는 연관 부서와 협력하여 지하에 매설하거나 통합화하는 등의 아이디어로 인도의 폭을 넓히고 보행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풀었다면, 이것이 디자인거리 사업이 추구하는 통합 디자인이었을 테지만, 실제 이 사업은 간판과 보도블록 공사 등 시설물의 색채와 형태를 시각적으로 통합하는데 그쳤다. 결과적으로 보행자의 안전과 편리함은 도로 폭이 확장된 것이 아닌 상인의 양보와 정리정돈의 시각적인 질서가 가져오는 데서 얻어지는 피상적인 수준이었다. 이러한 피상적 측면이 시민과 상인들의 동참을 불러올 만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일이다. ‘도시 미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기사, "디자인서울거리'는 거리 자체가 디자인 전시장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행정가의 인터뷰 기사 등은 디자인거리 사업이 시각적이고 표피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음을 밝히고 있다.



서울 디자인 거리의 미래

디자인거리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상인들의 목소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울시의 비젼을 함께 공유하지 않는다는 인상과 가로의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정비로 거리를 넓히는 것이 아닌 시설물의 교체 수준에서 거리 환경의 개선을 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는 또한 거리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이 건물, 간판, 각종 사인물, 보도 같은 시설물의 조형적 수준만이 아니라 가로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활동과 그 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이미지 등 물리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역이 함께 만들어내는 고유한 풍경이라는 측면을 지나쳤다는 점도 자리한다. 예를 들어, 빵집이나 악세사리 가게 앞의 가판대,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 화분 등 이러한 기물들이 가게 주인의 욕심으로 도로를 침범했을지라도, 그래서 복잡한 길을 더욱 비좁게 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한편 이것들은 거리에 재미를 주는 요소라는 측면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점주가 정성스럽게 가꾼 작은 화단, 가게의 성격이 드러나는 서체의 간판, 그리고 재미있게 꾸민 진열대가 있는 상점 앞을 지나며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러한 사물들이 지닌 친근함이나 독특함에 이끌리는 것이며, 그리고 그렇게 꾸민 점주의 솜씨와 정성에 매료되는 것이다. 거리는 이러한 점주의 개성을 입은 작은 꾸밈으로 인해 매력을 더해가는 것이다.

덴마크 건축가 얀겔은 가판대와 같은 공간을 ‘접촉’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가판대는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도 멈추어 서게 하는 흥밋거리를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타인과의 접촉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사람간의 교류와 다양한 경험이 존재하는 공간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접촉 공간은 거리와 사람들을 이어주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간지대라는 말이다. 이러한 공간은 상업과 공공영역의 경계를 유연하게 하여 차갑고 폐쇄적인 도심 공간에 따스한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본질에 대해 얀겔은 “사람은 사람에게 흥미를 느낀다”는 말로 설명한다. 거리의 매력은 건물과 보도가 만드는 것이 아닌 거리의 사람들이 만든다는 말이다.



디자인서울 거리의 시범 구간 설정은 서울 거리 전체가 디자인거리처럼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범’이라는 말을 쓴 것은 아닐는지. 천호디자인거리는 그러한 바람의 첫 모델이었다. 그러나 시각적인 측면에만 몰두해 많은 강제 조항으로 묶인 획일적인 외관과 거리의 활기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거리를 무료하고 단조롭게 만들어 디자인사업이 ‘변경전’, ‘변경후’로 대비되는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이미지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는 결과로 보인다. 미래의 디자인은 질서 있는 도시의 모습을 만드는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을 넘어서 사람들의 삶의 차원에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를 그려내는 디자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길』, 2009년
서울학 연구소, 『종로; 시간, 장소, 사람』, 2002년
얀겔,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 푸른솔, 2003년
한경석, 도시브렌드 제고를 위한 디자인거리 조성 방안에 관한 연구: 서울시 성동구 사례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석사논문, 2010년
염철호외, 건축 도시 공간의 현대적 공공성에 관한 기초 연구,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08.8
네이버뉴스, <서울 지도가 바뀐다> ⑦서울 거리 디자인이 바뀐다…걷고싶은 거리로, 2009.08.10.
헤럴드경제, <천호대로 사람중심 디자인거리로 새단장>, 2008.12.11.
http://design.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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