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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에 자리한 ‘아라리 디자인 서울 거리(이하 아라리 거리)’는 서울 시내의 '걷고 싶은 거리'들 중 한 곳으로 2009년 완공되었다. 이러한 ‘디자인 서울 거리’는 간판을 비롯한 옥외광고물에서부터 가로시설물, 보도블록, 가로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토탈 디자인으로 설계 추진되는 대표적인 도시디자인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2012-10-04)  
걷고 싶은 거리에서 초대할 수 있는 거리로

우리 두 손 마주잡고 걷던 서울 하늘 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그늘 곁에 그림들은 다시 웃어 보여줬고
하늘 가까이 오르니 그대 모습이 떠올라

_이화동 BY 에피톤 프로젝트


요즘 사람들 사이에 유령처럼 떠도는 어떤 취향이 있다. 복고다. 대중매체 전반에서 과거의 문화상을 재활용하는 작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처럼 ‘과거상을 복각해낸 작업’ 한편에서는, 개인의 내밀한 감성으로 우회하는 전략을 쓰는 작업들이 있다. 2010년 에피톤 프로젝트가 발표한 노래, 「이화동」은 복고적인 감성을 겨냥했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이화동의 풍경을 빌어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재현하기 위해, 이 노래는 이야기가 있는 무대를 만든 것이다. 꽤 흔한 방식이지만, 그만큼 매우 효과적이다. 지금 이곳 말고 다른 곳을 바라보도록 하는 미끼 역할로 활용된 감성이다. 실제 이화동은 소란스럽지 않다. 일상의 정취가 켜켜이 쌓인 풍경에는 ‘낙산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미적인 효과를 의도한 기획까지 스며들어 있다. ‘오랫동안 손이 닿지 않은 옛날 거리의 흔적을 아직도 고스란히 지니고 있고’, ‘대학로 뒷골목에서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아름다운 동네’(주1)라고 회자된다. 이곳의 풍요로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개인의 감성은 내밀한 부분에 머물러 있기에, 또한 그래야만 보존될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처럼 내밀한 미적 경험이 농담처럼 퍼져나간 예로 ‘감성폭발’ 이라는 말을 들 수 있다. 퇴근 시간의 혼잡한 지하철 속, 누군가 차창 밖으로 노을에 물든 한강과 빌딩들을 보게 되었다. 한낮의 피곤, 밤의 여흥, 내일에 대한 걱정 등이 공존하는 귀가길이다. 다른 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인 것이다. 그는 온라인 게시판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 코스를 '감성폭발구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폭발에서 나타나는 감성은 일반적인 스펙터클의 경험과 닮았지만, 더욱 자발적인 감동이 있는 경험이다.

글 | 김종혁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디자인 분야에서 감성이라는 말은 디자인 결과물의 완성도 이상으로 사용자의 느낌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흔히 쓰여진다. 디자인이 일상화된 요즘은 ‘삶의 질’을 측정하는 하나의 준거처럼 활용되는 말이 되었다. 가령, 2007년 어느 TV 방송으로 노출된 모 아파트 단지는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유비쿼터스 기술이 이제 사람의 감성을 감싸 안는 수준'으로 소개(주2)되었다. 인간공학에서 출발한 디자인과 일상성에서 출발한 디자인들 모두가 ‘감성’을 요구하는 모습은 똑같아 보이는 것이다.

감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비단 문화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것과 관련한 동시대의 사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는 「감성의 분할(2010)」이라는 화두로 미학과 정치를 접목한 사유를 보여주었다. 그는 감성적인 것, 즉 미적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 차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즉 우리가 무엇이 아름다운지 혹은 어느 정도가 아름다운지 판단할 수 있는 감성의 '분할선'은 우리 바깥에서 작용하는 힘의 영향을 받아 그려지는 것이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오롯이 머무를 수는 없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의 주장은, 우리가 미적인 것을 판단하는 공통 감각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실제적인 토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의 사유는 미적인 것의 파장을 개인의 내밀한 영역 대신에 다수의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시켜, 감성과 정치의 연결성을 회복하려는 미학적 기획의 결과물이다.

공공디자인에서는 감성과 정치가 물질적으로 접목된다. 디자인 서울의 프로젝트로 시내 곳곳에 만들어졌던 30여 개의 '걷고 싶은 거리'는 그러한 분할선이 어떻게 그어지고,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이 걷고 싶은 거리'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곧 공적 주체로서의 시민들이 지닌 감성을 만족시킨다는 말이다. 이 때의 감성은 개인적 차원에서 비롯된 '삶의 질'을 집단화시키는 근거이자, 사회적 차원으로 수렴되는 '공공성'의 일부분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글은 '걷고 싶은 거리' 중 하나인 '아라리 디자인 서울 거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성과 공공성이 결합되었는지, 즉 감성의 분할선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리고 그 결합이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나름의 답을 내리고자 한다.


성북동의 걷고 싶은 거리

성북구에 자리한 ‘아라리 디자인 서울 거리(이하 아라리 거리)’는 서울 시내의 '걷고 싶은 거리'들 중 한 곳으로 2009년 완공되었다. 이러한 ‘디자인 서울 거리’는 간판을 비롯한 옥외광고물에서부터 가로시설물, 보도블록, 가로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토탈 디자인으로 설계 추진되는 대표적인 도시디자인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구간은 지하철 한성대 입구 역에서 동덕여대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동소문로 사거리까지, 약 700m 길이의 상점가에 해당한다. 여기에 적용된 디자인의 역할은 도심의 거리 공간을 개선함으로써 시민-소비자의 보행 경험을 향상시키는 수단이었다. 이곳은 성북구 내에서 주요한 상권이기도 하다.

거리 공간을 기능적으로 보자면, 우선시되는 것은 원활한 순환이다. 그런데, 거리 공간의 특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하지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영역"(주3)이다. 이러한 특성이 두드러져, 즉 공간 활용에 있어 기능과 주체가 확정되지 않는 경향을 보일 경우, '역공간liminal place'이라 일컬어진다. 전 국민의 2/3 이상이 밀집해있는 서울의 거리 공간에서는 더욱 쉽게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이 역공간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거리의 풍경이 달라지고, 그 곳을 걷는 우리의 감성이 달라진다. 서울 번화가의 혼잡함에서 짜증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이 걷는 길이지만 모퉁이 수퍼에서 물건으로 점령하고, 오토바이로 점령하고, 천막과 테이블로 온통 짜증이 난 기억이 있다.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은 거리의 이런 성격을 시민-소비자라는 주된 사용자에 맞추고 재설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아라리 거리에 적용된 디자인 규칙은 성북구의 상위 행정기관이 수립한 '디자인 서울'의 도시경관 가이드라인이었다. 이 거리 공간을 사용하는 시민-소비자와 상인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결과는 디자인 서울의 가이드 라인의 적합성과 유용성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동시에 혹시 우리에게 그 가이드 라인이 감성폭발을 제공할 어떤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의 총체적 검증이기도 하다.


절제되어 안정적인 사물

이 거리의 공적 사물은 공공시설물과 옥외 광고물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거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사물들; 펜스, 볼라드, 표지판, 지하철 환기구, 분전함, 맨홀,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 등이 공공시설물에 해당된다.

지하철 한성대입구 역의 출입구 계단을 오르다 보면, 'ㄱ'자 형태의 가로등을 볼 수 있다. 동일 모델의 가로등들이 일정 구간에 걸쳐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이 거리를 식별할 수 있는 ‘디자인된 사물’로, 아라리 거리의 시작과 끝을 알려준다. 이곳의 디자인적 특성은 보행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를 최소화시킨 결과로 나타난 간결성이다. 한 예를 들어 화강판석이 촘촘하게 깔린 보도는 편평하고 넓찍하다. 상점들 진입부의 높이와 너비는 일정하게 맞춰져 있고, 진입부와 보도블럭이 만나는 부분의 마감시공까지 깔끔했다. 밤 중에 보행자의 발치를 비추는 조명장치 또한 직육면체에 저채도 색상을 사용하고, 전등 외에 기술적 장치는 외형 바깥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이곳에 놓여진 사물들은 자신들의 형상이 심미적으로 고려된 결과라는 것을 애써 부각하지 않는다. 기능성을 발휘할 때조차 조심스럽다. 이러한 디자인적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이곳의 주인공은 '걷고 싶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사물들은 배경으로 자리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을 절제된 디자인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런 확고한 질서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질서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 이곳의 사물들은 그 말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한편으로 이 태도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기능에 충실하고 인간친화적인 사물들이 적절한 자리에 자리하고 묵묵히 있는 장면들. 디자인의 기본기에 충실한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여기서 자유롭고, 더 나아가 이화동만큼의 감성폭발을 느낄 수 있는가. 깔끔하게 가다듬어진 거리에서 보행자의 운신이 보장된다고 우리의 내면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좀 더 살펴 보자.


매력적이나 평면적인 광고

걷고 싶은 거리의 또 하나의 공공 디자인 영역인 옥외 광고물을 보자. 옥외광고물에는 이 거리 양편에 자리한 건물과 상점의 간판들이 해당된다. 디자인 서울의 가이드라인에는 간판에 관련된 규정이 있다. 이 가이드라인이 엄격히 적용된다면,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기존의 간판을 교체하거나 철수해야 할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간판은 정보뿐만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윤리가 공개적으로 결합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아라리 거리의 공사가 시작되었던 2007년, 마침 보도사진작가 그룹으로 명망 높은 매그넘의 내한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 몇몇 사진은 당시 우리나라의 간판을 주제로 삼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을 처음 찾아온 최고의 전문인들, 피사체만으로 대상을 보는 그들에게 간판은 당연히 인기 피사체였다. 이들이 찍은 간판에서는 그들은 비록 다이내믹과 카오스의 미학으로 간판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 한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간판은 우리 사회가 지난 50년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한 생존의 몸부림 이외에는 어떠한 공동체의 논리도, 감수성도, 이웃에 대한 배려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디자인 평론가 최범의 진단이 느껴지는 전시들이었다.

그러한 '생존의 몸부림'을 교정한 결과를 아라리 거리의 옥외광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곳 건물들의 파사드는 동일한 템플릿이 정렬된 2차원의 그래픽적 결과물처럼 보인다. 잘 정렬된 간판이나 깔끔한 건물의 외양이 모여있는 이 거리를 따라 걸어가 보자. 각 상점들의 특수성은 디자인적 질서에 의해 다듬어진다. 마치 같은 높이와 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나열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걷고 있는 사람'은 동일한 시점으로 촬영된 영화필름 속에 있는 셈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서체, 동일한 칼라 배합으로 이루어진 이 거리의 간판은 마치 잘 찍어낸 공장의 부품들 같지, "간판의 본질은 꽃집은 꽃집답게, 약국은 약국답게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또 다른 평론가 조현신의 주장에는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곳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관람객이든 피사체든 다른 각도로 쳐다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처럼 각기 다른 것들을 동일화시키는 이 경관은 수 차례 반복을 통해 질서를 강요하면서 집단의 군사적, 획일적 미학을 창출하는 마스게임과 닮았다

이 즈음에서 공공디자인은 사람들의 불규칙한 욕망에 질서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는 것이며, 각기 다른 욕망의 발산을 자유롭게 포용할 여지가 전혀 없는 획일화된 정비로 결론지어지는 것 같다. 도시경관 디자인이 아닌 가로 정비로 여겨지고, 산업의 시녀로 대우받는 등 디자인에 대한 낡은 인식의 잔재 아닐까. 이 과정에서 사적 차원의 감성은 분할되어 공적 차원의 감성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적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적용되었다고 해도, 우리의 내밀한 영역에 있는 안정과 매혹에 대한 지향은 변치 않아 보인다.


초대할 수 있는 거리

2005년 성북구청은 「성북비전 2010」을 발간하여,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그려냈다. 그 책자에서 아라리 거리 일대는 '접근성이 우수하고 공공업무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서비스 기능이 조화되는 활동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지방 자치체 나름의 청사진이 한 곳에 모일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디자인 서울의 열기를 타고, 서울 시내 곳곳에 ‘걷고 싶은 거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동일성은 '디자인 서울'이라는 거대 프로젝트의 비전의 일부가 되었다. ‘디자인 서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디자인'이 삶의 질이라는 가치와 연결되는 동시에,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맞닿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실제로 그 여파는 현재의 '복지'라는 화두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아라리 거리의 공공성은 안정적인 사물들이 배치된 공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공공성을 지키기 위하여 불안정한 요소라 판단되는 것들의 배제를 필요로 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완공 이후에도, '불법간판이나 불법주차 그리고 노점상 등 거리의 미관과 보행자의 편의에 방해되는 요소를 예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배타성과 배제는 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 감각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으며, 결국 불필요한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논리가 되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공간은 발전된 미래의 청사진을 시민들에게 약속하는 광고처럼 보였다.

그런데 '공공성'이 구입을 기다리는 상품처럼 교환 가능한 가치일까? 만일 그렇다면, 공공성이라는 수식어의 효과는 옛날의 새마을운동과 다를 게 없다. 혹은 국가로부터 강제되는 이념의 포장지이거나 국가로부터 제공되는 서비스의 효과인가? 모두 아니다. 공공성은 화수분처럼 무한정한 가치가 아니다. 시민의 참여를 통하여 지속성을 지니는 가치이다. 그런데, ‘공리적인 이상’에 따른 '감성의 분할선'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컨베이어벨트를 지나온 광고의 무대로 나타났다. 필자는 이 거리에서 그저 잘 정돈되었음, 잘 정비되었음을 느꼈을 뿐, 감성이 공공의 영역과 조응하면서 확대되는 분할선의 작동을 느낄 수 없었다. 이곳에서 감성은 공적인 영역에 도달하기 전에 납치당한 모양새이다. 이곳에서 미적인 것은 그저 행정적인 것으로서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라는 내밀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복고적 감성이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미적인 것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미끼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이 보여주는 미래지향적인 감성은 결국 ‘지금 이곳’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들의 눈을 겨냥했을 뿐이지,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겨냥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공성을 사유한 현대 철학자로 한나 아렌트가 있다. 그가 묘사한 공적 공간은 다음과 같다.“우리가 함께 먹는 식사 때마다 자유도 합석하도록 초대를 받는다. 비록 그의 의자는 빈 채로 있지만 자리만큼은 마련되어 있다.”(주4) 아렌트는 빈 의자에 앉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유와 동격으로서’ 그 누군가를 존중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의 자유는 시민적 자연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는 곧 '배제에 대한 거부’를 실천하는 수단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를 실천하면서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우리가 서로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지금 이곳의 토대를 지키는 수단’이다. 그리고 타인의 참여를 통하여 우리가 함께 먹는 식사를, 곧 ‘지금 이곳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라, ‘초대할 수 있는 거리’의 모델이다. 다시 말해, ‘시민-소비자’가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닌, ‘시민-생활인’을 자유롭게 초대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그 모델에도 ‘디자인’은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물의 질서에 충실한 결과물이나 개인적 감각을 적용한 스타일링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런 수준은, 납치당하기 너무나 쉬운 상태로, 하나의 고립된 점에 머물 것이다. 두 점이 연결되어야 선분이 만들어진다. 아라리 디자인 거리에서 만난 디자인과 공공성이 결합되는 결과물의 빈곤함, 즉 공공의 이름으로 절제를 지향했으나 획일화된 거리 시설물, 다양함을 지향했으나 평면화된 간판들은 결국 개인의 내밀한 감성폭발을 일으킬만한 감성의 분할선에 대한 고려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절제와 평면성이라는 미덕을 지닌 아라리 거리 이후, 우리는 디자인으로 무엇을 더 상상해야만 할까? 사회적인 영역에서 살아 움직이는 디자인 결과물을 바란다면, 즉 개인적 감각과 사회적인 감각을 연결시키려면, 문화적이고 다각적인 일상의 공통분모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일 것이다.


(주1) 티스토리 SSeok의 사진 블로그 http://pyxis.tistory.com/162
(주2) SBS뉴스 2007-10-13 유비쿼터스 기술로 만드는 나만의 감성 아파트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322802
(주3) 곽노완, <글로벌폴리스와 희망의 시공간>, 사회이론 2008 봄/여름 호, p62. (cfile227.uf.daum.net/attach/193B81204A30FF423EAE8B)
(주4) 한나 아렌트, 서유경 옮김, <과거와 미래 사이>, 푸른숲, 2005,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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