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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공간이 있다. 바로 ‘한강’이다. 서울의 중심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가는 이 커다란 물줄기는 볼 때마다 새롭다. 명랑하고 천진한 햇살로 가득 차 일렁이기도 하고, 하루가 끝날 무렵,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짙붉은 황혼으로, 설레는 야경의 화려함으로 번갈아 가며 그 표정을 바꾼다. (2012-08-21)  
일상에서 거리 두기

어느 날 당신에게 일주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가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여행’이 아닐까? 단조로운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로망이자 판타지이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이 주는 해방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늘 비슷한 일상의 굴레가 주는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어딘가를 이상적인 도피처로 그리게 하고, 그곳으로 떠나고픈 열망을 갖게 한다. 익숙해진 환경은 ‘나’라는 인간을 내가 기뻐 택하지 않은 역할들에 묶어두고, ‘나’의 자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런 일상에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위해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여행이라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갈지, 예산을 얼마나 잡아야 할지부터 내가 떠나있는 동안 처리해야 되는 집안일과 회사일의 문제 등 준비해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준비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걱정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여행은 간절하지만 막상 떠나기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꼭 준비해서 떠나는 여행만이 여행은 아니다. 주변에서도 여행지와 같은 곳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낯선 장소와 이야기와 물건을 찾으며 살아가지 않던가? 멀리가지 않더라도 서울 안에서 여행이 주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글 | 이주연 d-페다고지 기획 & 리포터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한강을 생각하다, 뚝섬유원지의 기억

서울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공간이 있다. 바로 ‘한강’이다. 서울의 중심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가는 이 커다란 물줄기는 볼 때마다 새롭다. 명랑하고 천진한 햇살로 가득 차 일렁이기도 하고, 하루가 끝날 무렵,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짙붉은 황혼으로, 설레는 야경의 화려함으로 번갈아 가며 그 표정을 바꾼다. 그 장려한 크기로 거대하고 압도적이지만 한강은 이렇게 도시살이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친근하고 다정한 면도 가지고 있다. 그런 매력 때문인지 한강다리를 지날 때면, 창 밖으로 펼쳐진 한강을 매번 더 자세히 보려고 차창으로 자연스레 눈길이 가고는 한다. 이렇게 한강은 그 존재만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숨 쉴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현재의 잘 정비된 모습과는 달리 과거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한강은 주변의 산세와 어우러지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자연적 명소였다. 197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한강은 맑은 물과 굽이치는 천연모래사장으로 여름 유원지로 사랑 받았다. 특히 1963년 청계천 하류지역에서의 수영을 억제하고자 정부가 광나루와 뚝섬을 정비하면서 한강은 여름 유원지로서의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 중 뚝섬유원지는 버드나무 군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미루나무 유원지라고 불리기도 했다. 여름이면 버스의 배차를 늘리기도 했고, 서울에 전차가 운영되면서부터는 동대문을 출발하는 노선이 상원에서부터 뚝섬역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찾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뚝섬은 기분만으로도 한결 시원했다. 맑은 강물이 푸르게 넘실거렸고, 넓은 백사장이 눈부셨으며 강둑의 수많은 미루나무들은 무성하게 짙푸르렀고, 수영 객들의 환성이 물빛처럼 맑게 울리고 있었다. (중략) 결국 남자들은 수영을 하고 여자들은 뱃놀이를 한 다음 미루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미루나무 하나를 정했다. - 조정래, 『한강 1권』, 2001

60년대의 삶을 그린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뚝섬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맑은 강물, 넓은 백사장이라니... 서울에서, 지금은 상상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 엄마 아버지 때는 이곳에서 수영을 했단다. 어쨌거나, 주인공은 친구들과 당시 유원지로 유명했던 뚝섬을 찾는다. 이곳은 수영이 허락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이 돈 없이도 갈 수 있었던 휴양지였다.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한 시민은 뚝섬을 이렇게 회상했다.

“기동차를 타고 지나칠 때는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상쾌한 마파람을 받을 수 있었고 왕십리 벌판에 이어진 미나리 밭을 지나 뚝섬에 오면 물속이 다 들여다뵈는 정말 깨끗한 강을 볼 수 있었다.” -1979. 6. 12. 동아일보

6~70년대를 거치면서 한강은 몸살을 앓게 되었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오폐수와 개발을 위한 무분별한 골재채취로 한강은 제 모습을 잃어갔으며 그에 따라 유원지의 모습도 변해갔다. 80년대에는 자연풀장의 맥을 이어오던 뚝섬유원지도 폐쇄되었고, 한강은 한강종합개발사업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게 된다. 뚝섬의 일부분은 한강의 조류를 방해한다고 하여 잘려나갔다. 그리고 한강 주변으로는 고층의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85년부터는 콘크리트로 다진 강둑에 공원시설이 설치되었고,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한강시민공원으로 본격적으로 개장되었다. 하지만 간이 시설 위주로 구성된 시설이 강의 범람으로 떠내려가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시달리던 중 2000년대에 들어서 ‘한강 르네상스’ 정책을 통해 한강은 또 다른 변화를 겪었다. 뚝섬 한강공원은 지금은 사실상 중단된 그 말 많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재단장을 거친 후 2009년에 개장했다.


뚝섬한강공원

뚝섬은 이름과는 달리 섬이 아니다. 지도에서 찾아보면 한강과 한강공원, 아파트단지, 서울 숲, 정수사업소, 건국대학교, 어린이 대공원, 성수동 공장지대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의 지명이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이 지역은 섬이라 불린 것일까?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살곶이 다리에 얽힌 것으로 지리적 위치상 살곶이 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고 다시 한강을 건너야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뚝섬은 섬은 아니지만 섬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비가 많이 내리면 중랑천과 한강이 범람하여 이 지역을 둘러싸고는 했는데 그 모습이 섬처럼 보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가장 유력한 설은 독 또는 둑(纛)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둑(纛)이란 무신을 상징하는 치우천왕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큰 창에 소의 깃털을 꽂아 만드는 깃발이다. 매년 봄과 가을, 그리고 왕이 군대를 열무(閱武)하거나 출병을 할 때 이곳에 둑기(纛旗)를 세우고 제(纛祭)를 지냈던 곳이라 하여 독도, 둑도 등으로 불리다 현재의 지명인 뚝섬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한강 유람선을 타고 한강 나들이를 하면서 뚝섬을 지나갈 때면, 이 설명 중 마지막 것만 집어넣어서 왕의 깃발이 우뚝 서있던 곳이라고 해설해 준다.

진짜 섬은 아니지만 뚝섬이라는 지명 탓일까? 아니면 피서지로 유명했던 뚝섬유원지의 기억과 이미지 때문일까? 이곳에 붙여진 ‘수상 레저 문화 공간’이라는 테마가 어색하지 않다. 또 그에 걸맞는 수영장과 축구장, 윈드서핑장 등의 시설도 자연스럽다. 뚝섬한강공원은 청담대교를 중심으로 양 옆에 시설물이 배치되어 있다. 가로로 긴 공간에 시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규모가 크고 앞으로는 시야가 트여있기 때문에 공간 구성이 시원시원하게 느껴진다.

공원으로 통하는 진입로는 지하철역과 여러 개의 나들목이 있다. 한강변을 따라 도로가 건설되면서 한강은 마치 고립된 공간처럼 주거단지와 단절된 모습을 하고 있다. 또 강변의 경치는 병풍처럼 둘러싼 아파트 때문에 강변에 사는 선택 받은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 서울 시장은 그 지역을 시민의 공원으로 돌려준다고 했다가 치도곤을 맞았고, 지금도 그 계획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한강변의 아파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런 아파트 단지인 주거단지에서 나들목을 통해 한강공원으로 진입하면 다른 차원으로 들어온 듯 시야가 확장되면서 한강의 진면목을 마주한 듯하다. 지하철역에서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탁 트인 한강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극적인 공간의 변화는 서울이지만 처음 그곳을 간 방문객에게는 낯선 어떤 곳으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뚝섬 공원의 한강 둔치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강 건너의 빼곡한 마천루와 잠실 종합운동장이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지역은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 청담동이다.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1960년대 준 공업지대가 형성되었던 뚝섬일대와 다른 럭셔리한 청담의 지역성이 상기되며 새삼 한강이 가진 단절감이 떠오른다. 강남, 강북 이라는 단어로 간략하게 설명되는.


뚝섬의 디자인된 공간들

1. 자벌레

뚝섬에서 가장 독특한 공간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전망문화콤플렉스 ‘자벌레’이다. 이 전망대는 이름대로 ‘자벌레’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일종의 육교다. 위압적이고 복잡한 교량구조물의 특성을 순화시키기 위해서 자연물을 대상으로 유연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철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방음자재를 사용하고, 한강이 범람하는 수위를 고려하여 공중에 떠있는 형태로 구상하였다고 한다.

이 곡선으로 된 건축물은 그 위를 지나는 원형의 고가램프와도 제법 잘 어우러진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른 유원지에서 볼 수 있는 놀이기구의 곡선을 이 시설의 곡선이 대체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건축물 외관의 매끄러운 마감은 서울랜드의 지구별 무대처럼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생경한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내부에 들어가니 동굴처럼 어두운 가운데 드문드문 불규칙적으로 뚫린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이 창문은 자벌레의 무늬를 자연스럽게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배치가 어색하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신비한 곤충의 내부를 연출하는 분위기를 줄 것 같다. 또 천장에는 곡선으로 설치된 할로겐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어 내부를 더욱 신비스런 느낌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



자벌레 내부에 있는 갤러리는 시민들이 무료로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기가 좋아 벌써 2012년의 전시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한다. 마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자벌레의 외관을 모티브로 한 전시였는데 외계인의 침공 등 지구를 벗어난 상상력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자벌레를 보고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누에고치나 애벌레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외계, 침공, 지구인 등의 상상력이 작동되는 것은 과학의 세대인 현대, 공상과학 소설이나 만화, 영화들이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선사해준 상상력이다. 자벌레의 자연스러운 탄생과 그 과정을 이야기한 그림은 없었다. 매끈한 몸통과 재질, 기하학적인 원형의 창문, 할로겐 조명 이런 것들의 조합은 이 자벌레가 지구에서 사는 동물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래적인 이미지, 외계의 이미지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 자벌레가 지금 건립된다면 아마도 친환경적인 소재와 더 유기적인 형상으로 제작될 지도 모른다. 무릇 모든 형상은 그 당시의 희망과 이상을 담고 탄생하니까.

2. 나눔장터

지하철역과 자벌레 밑으로는 광장이 있다. 자벌레에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통해 내려가면 바로 이곳과 연결되는데, 평일에는 무척이나 한산하지만 매주 토요일에는 재미난 광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아름다운 나눔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이 재미난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만들어내는 활발한 소통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여행지에서 마주했던 플리마켓을 구경하던 재미를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잘만 고르면 대박이라는 이 장터에서 특이한 점은 장사를 하는 사람은 외부 사람이 많고, 구매고객은 이 지역의 지역주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주부들이 주 고객층인데, 스타일 좋은 20대 들의 좌판이 단연 인기였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흥정이 벌어지는데 혹자는 이 흥정을 두고 ‘멘탈 붕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의 스타일을 아주 싼 값에 ‘득템’하려는 아줌마들과, 그래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물건의 가치를 올리려는, 하지만 말 빨 딸리고, 힘 딸리는 젊은 아가씨들 간의 밀당이 장난 아닌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건 값도 치루기 전에 이미 장바구니에 들어간 상품은 아줌마가 원하는 가격대로 팔려 나간다. 자신에게 쓸모 없어진 물품을 팔고 사며 이루어지는 이 일종의 순환은 커뮤니티 디자인의 현장이며, 텅 빈 콘크리트 광장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펼쳐지고 접혀진다는 의미에서 재생디자인이기도 하고 유기적인 순환의 과정이기도 하다.



3. 다목적 수영장

자벌레의 옆으로는 다목적 수영장이 있다. 이곳은 한강과 근접한 거리에 배치하여 이곳에 몸을 담그면 마치 한강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이 수영장만이 과거 한강의 자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뚝섬유원지의 상징이었던 수영공간을 유지하여 지난 세대가 물놀이를 즐기는 개구쟁이들을 보며 자신의 지난 뚝섬유원지에서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늘 막 없는 모래사장의 땡볕 속에서 한강물에 뛰어들었던 지난 세대의 여가 대신, 알록달록한 파라솔 밑의 포만감 있는 휴식, 물놀이 기구의 다이내믹한 즐거움은 한국 사회의 발전상이 선사해준 여름 여가의 모습이다.



4. 분수와 수변광장

해가지면 한강의 밤을 즐기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뚝섬의 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는 수변광장에 설치된 ‘음악분수’이다. 물이 빚어내는 움직임과 음악, 그리고 색색의 조명은 한강의 야경과 겹치며 누군가에게는 로맨틱한 데이트장소로, 어떤 이에게는 먹거리와 함께 청량감을 즐기는 디너쇼장이 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OST가 울려 퍼지며 힘찬 물줄기가 솟자 한강이 아니라 어느 공연장에 와있는 듯 했다.

이렇게 멋진 모습을 연출하는 음악분수 기술은 1986년 국내에 도입되었는데 1988년 올림픽을 맞아 올림픽공원에 대규모의 분수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각 지역의 공원이나 미술관 등지에 설치되어있다. 음악분수는 라스베이거스나 홍콩, 두바이 등 유명 관광지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많이 알려져 왔다. 그래서인지 색색의 조명과 함께 즐기는 물줄기의 향연은 어딘가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뚝섬의 음악분수는 그 규모는 유명관광지의 그것보다는 한참이나 작지만, 한강공원에 활력을 주는 요소로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음악분수가 위치한 수변광장은 한강 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그 끝에는 수변무대와 물보라 극장이 있다. 무대와 극장으로의 집중을 위해 좁아지는 형태를 구상한 것이겠지만, 반대로 강 쪽으로 넓은 부채꼴의 형태로 광장을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광장이 전부 콘크리트로 되어있는 것 또한 아쉬운 부분이었다. 인공적으로나마 모래사장과 같은 모습을 복원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의 지층과 추억은 일거에 지워버리고 새롭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공공디자인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뚝섬한강공원은 참 넓고도 넓었다. 그 넓은 잔디밭에는 이미 돗자리를 펴고 한강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준비해온 간식을 먹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흡사 캠핑장을 연상시켰다. 물가의 계단식으로 된 둔치에도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계단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여전히 시민들의 공공시설 아끼는 자세는 빵점이다. 세계 행사가 열리면, 너무도 깨끗하게 자신의 흔적을 치우는 그 시민들인데 대체 이 양면적인 습성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자아의 확립보다는 남을 의식하고 남의 시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는 근대적 주체의 한계는 여실하다.

야경이 어른어른 비치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참 여유로웠다. 물위에 가득한 빌딩의 불빛들이 이곳이 도시 한복판임을 상기시킨다. 개발된 도시 속에서 한강의 자연미는 강물과 함께 흘러가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이 강이 사랑 받는 것은 도시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강이라는 자연 그대로도 좋지만 이렇게 디자인된 공간들이 존재하기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어우러짐으로 다시 예전의 깨끗하고 맑은 강에서 수영하던 시절의 관계가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서울의 중심에서 나를 찾다

드라마에서 한강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절정에 달할 때 꼭 등장한다. 한강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슬픔을 달래거나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야경을 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 한강일까? 강은 감정의 해우소 같은 역할을 하며 흐르는 물에 내 마음의 짐도 함께 떠내려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인도의 갠지스 강처럼 종교적 성스러움은 아니더라도 한강은 이렇게 도시인들의 감성을 달래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다.

혹자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고립되었을 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낯선 곳에서 나는 지난날의 나를 잊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 낯선 곳에 적응하는 나를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다시 갖게 되고, 이전의 나를 지켜보는 객관적인 나를 만나게 된다. 여행은 그래서 새 삶을 솟아나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래서 잠시 떠날 필요가 있고, 떠나길 원하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불만이 많을수록 여행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환상과 기대가 쉽게 채워지지 않을 때, 한강을 가보자. 인간이 손을 댄 인공물들이 있고 그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넉넉한 강물의 흐름이 있다. 그렇기에 한강에서 우리는 모두 위안을 얻고 관계를 회복하는 짧은 여행의 경험을 한다. 이렇게 한강에 가는 일은 가장 손쉽게 떠날 수 있는 일상 속 작은 여행이다. 마음의 휴식을 찾아 떠나고픈 당신, 오늘 저녁 뚝섬한강 공원을 찾는 것은 어떨까?


에필로그

최근 때아닌 녹조로 한강이 고통 받고 있다. 뚝섬일대에도 녹조수치가 높아졌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녹조의 양이 급증하면 빛이 차단되고 산소도 투과되지 못해 강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물에서는 썩은 내가 난다고 한다. 사대강 사업 때문인지, 이상 고온 탓인지 공방이 시끄러웠지만 비만 오면 해결된다고 공무원은 대답을 했고, 많은 비가 내린 후 녹조에 대한 논란은 사라진 듯 보인다. 한강은 다시 제 모습으로 흐른다. 말없는 자연. 하지만 생태가 틀어지면 어떤 방법을 쓰든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는 위대한 힘. 이런 자연을 앞에 두고는 디자인에서 인공시설물이 시각적으로 좋다, 나쁘다는 평가, 기능이 좋다 안 좋다는 평가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단지 자연의 흐름을 읽는 마음으로, 좀 더 겸손하게 인공물을 설치하는 마음을 명심하라는 메시지를 이번 녹조 사건에서 받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자료
조경비평 봄, 『공원을 읽다』, 나무도시, 2010
서울학연구소, 『한강의 섬』, 마티, 2009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도서출판 이레, 2004
롤프 포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넥서스북스, 2004
조정래, 『한강 1』, 해냄출판사, 2001
한강사업본부 한강르네상스 홍보자료
뚝섬한강공원 홈페이지 ( hangang.seoul.go.kr/park_dooksum )
아름다운 나눔장터 홈페이지 ( www.flea1004.com )
뚝섬전망문화콤플렉스 홈페이지 ( www.j-bug.co.kr )
광진구청 홈페이지 ( www.gwangjin.go.kr )
네이버 백과사전, 뉴스라이브러리
김우상, 도시의 경계에 위치한 infrastructure를 활용하는 공공 공간계획 : 한강르네상스계획에 따른 뚝섬유원지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뚝섬은 섬이 아니다?’, 2007. 9. 21. 아시아 경제신문
‘뚝섬수영장에도 오염적신호’, 1979. 6. 12. 동아일보
‘초여름의 일요일’, 1970. 5. 18. 경향신문
‘더위를 피해 물을 찾는 시민들’, 1969. 6. 30.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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